조선일보 2014년 10월 31일

 

지난 10월 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발효된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말기 지원금이 훨씬 줄어들었다' '단말기 거래가 급감해서 대리점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등 비판이 쏟아졌다. 늘 그렇듯이 정치권과 정부, 여론은 이런 논란에 대해 참을성이 없는 편이다. 성급한 결론과 설익은 대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차분한 논의는 별로 안 보인다.

먼저 단통법과 관련된 사실관계부터 정리해보자. 단통법 시행에 따라 신규 가입자 간 보조금 차별이 없어졌다. 그리고 기존 가입자가 단말기를 교체할 때도 이제는 똑같은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 가입자가 중고 단말기를 가져오면 보조금 대신 요금을 12% 할인해준다. 이통사가 보조금 총 지급액을 늘리지 않는 한 가입자 1명당 보조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의 버라이즌은 월 60달러 요금제로 2년 약정을 하면 갤럭시노트4를 32만원에 살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소 65만원 이상 주어야 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이는 두 나라의 요금제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다. 예컨대 KT의 6만7000원 요금제를 2년 약정하면 단말기 보조금에 더하여 월 1만6000원 요금 할인을 받는데, 버라이즌에는 이런 요금 할인이 없다. 2년간 40만원 가까운 요금 할인을 받으니, 이는 그만큼 보조금을 더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처럼 단통법의 적용 범위나 외국과의 요금 구조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과거 시장이 과열되었을 때 엄청난 보조금을 받았던 일부 고객을 기준으로 보조금 수준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단통법은 보조금 관련 제도를 완전히 바꿨다. 이처럼 외부 요인이 바뀌면 시장은 여기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다. 이통사들도 새 제도하에서 적정 보조금 수준이 얼마일지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이 보조금 지급을 위축시킨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통사들은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면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고, 경쟁에 도움이 안 되면 정부가 압력을 가해도 보조금이 늘지 않을 것이다. 즉 보조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경쟁이지, 단통법이나 행정 지도가 아니다.
단통법의 주된 취지는 '불법적'인 보조금으로 인한 가입자 간 차별을 막는 데 있다. 단통법은 이런 불법 보조금을 막기 위한 장치들을 촘촘히 만들어 놓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통사와 유통망은 가입자 증대를 위해 음성적인 보조금을 지급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걱정해야 할 점은 보조금 수준이 아니라, 음성적 보조금이 부활하여 단통법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단통법에서 보조금 상한 규제는 3년 후에 일몰(日沒·사라짐)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도 보조금 규제 완화의 필요성은 인정한 것이다. 단통법이 과도한 규제라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갓 만든 제도를 흔들면 시장에 또다시 혼란이 생기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 지금은 시장 참여자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정치권과 정부가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줄 시점이다. 시간이 지나 단통법의 성과와 한계가 뚜렷해질 때쯤 본격적으로 대안을 논의하는 것이 맞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