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9월 27일

 

이달 들어 스마트폰 시장에 굵직한 일이 잇따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노키아를 인수하였고, 애플은 마침내 중가(中價)형 아이폰 모델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스마트폰 시장에 다시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도리어 스마트폰 시장은 수많은 변화를 겪은 끝에 이제 안정된 구조에 접어들고 있다.


먼저 애플을 보자. 경영 이론에 따르면, 변화가 많은 초기 시장에서는 애플처럼 직접 모든 걸 다 하는 통합형 기업이 유리하다. 그렇지만 산업이 성숙하면서 가치 사슬별로 경쟁력이 뛰어난 전문 기업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과 제휴해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모듈형 기업의 경쟁력이 앞서게 된다. 통합형 구조는 각 구성 요소가 밀접하게 결합하여 최고 성능을 내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소수 기종을 잘 만드는 데 적합하다.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니 기종을 늘려 대응하겠다는 건 곧 모듈화한 시장에서 전면전을 의미하는데, 이 싸움에서 애플이 모듈형 기업을 이기긴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애플이 구형 모델을 활용하여 중저가 시장에 대응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신형 중저가 모델을 출시했다고 해서 시장점유율이 올라갈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이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역할과 위치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들어와 있다.
MS의 스마트폰 제조업 진출은 진작부터 예견되어 오던 일이다. MS의 CEO인 스티브 발머는 작년에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MS는 더 이상 단지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디바이스와 서비스 회사'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노키아가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MS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도리어 앞으로 두 회사는 수많은 조율 과정을 거치면서 생기는 이견과 갈등으로 더 빨리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힘이 꺾이기 시작한 MS의 운영체제는 다른 제조업체들로부터 외면당해 더욱 빠르게 힘을 잃을 것이다. 

모토롤라를 인수한 구글도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 모토롤라를 적극 돕자니 다른 제조업체들이 반발할 것이고, 방치하자니 모토롤라가 회생하지 못할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가치 사슬의 한 부분에서 독점적 위치를 가진 기업이 가치 사슬 내에서 사업 확장을 할 때 생기는 문제를 구글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종합하면, 애플이 지금까지는 통합형 기업으로 아주 예외적인 성과를 보여 왔지만 시장점유율과 수익률의 점진적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애플을 모방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뒤늦게 통합형 기업 대열에 합류한 구글-모토롤라, MS-노키아 또한 의미 있는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 또 다른 통합형 기업인 블랙베리는 불과 1년 사이에 3분의 2 가까운 직원을 내보낼 정도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삼성과 중국 기업들 간의 일전이다. 삼성은 뛰어난 제조 역량, 부품 경쟁력, 브랜드 등을 바탕으로 당분간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내수 시장,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기업의 약진은 이미 시작되었다. 특히 화웨이, ZTE 등은 중·고가 시장으로 입지를 넓혀 나가고 있으며, 핵심 역량을 차근차근 내부화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삼성이 아이폰과 같은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러한 혁신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성이 주도하는 혁신이 없다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범용화의 물결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