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이슈를 둘러싼 ESG 생태계

 

오늘날 ESG가 주목받게 된 가장 직접적 계기는 지구온난화 문제다. 물론 진작부터 자본시장에는 사회책임투자(SRI), 기업 경영엔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흐름이 있었지만, 이들은 작은 흐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대되었고, 이것이 환경·사회 문제를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도 함께 고민하면서, ESG 투자·경영이 큰 흐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 투자자, 그리고 기업들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분야도 탄소감축* 문제다. ESG에 소극적인 보수 진영도 지구온난화에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경 문제는 전형적인 외부효과 이슈로, 기업들은 탄소배출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감축 노력을 할 유인도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탄소배출권, 탄소세 등을 통해 탄소배출 비용을 기업 의사결정에 반영하도록 정책을 펴고 있다.

한편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전 세계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한 것은 2015년 파리협정이 처음이다. 그리고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우여곡절 끝에 탄소중립 목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는 국가간 약속도 실제로는 취약하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를 보고 절감하게 되었다. 미국 같은 주요국이 이탈하면 언제든지 이탈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멋진 약속보다는 좀 더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고, 여기에 자본시장의 역할이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ESG 투자의 역할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서 대부분 산업은 비용 증가, 수익 감소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수십 년씩 연금·보험을 지급해야 하는 장기투자자들은 투자수익 확보에 위기를 느끼고 기업들에게 탄소감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소감축은 투자자와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맥킨지에 따르면 탄소중립을 위해 2050년까지 매년 3.5조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곧 거대한 새 시장이 열린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탄소중립적인 제품과 공정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윤을 창출하고, 투자자들은 여기에 투자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거둘 기회가 생긴다.

ESG 투자라는 맥락에서 볼 때, 탄소중립은 선의의 약속이나 정부규제에 의존하지 않고, 투자자와 기업들이 인센티브와 합치된 행동을 통해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정부규제는 대개 그 취지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을 규율하는 데 있다. 이에 비해 투자자의 관여는 정부보다 훨씬 집요하고 효율적이다. , 투자자는 정부와 달리 개별 기업의 탄소감축 활동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토록 유도할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들의 활동이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경영진을 해임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탄소감축이 선의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투자자와 기업들에게 이롭다는 증거들은 많다. 예컨대 지속가능성 우수 기업들은 더 낮은 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탄소배출 성과가 이미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으며, 따라서 당연히 지속가능성 리더들이 주주 수익률도 높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였던 ESG 투자자의 수익률이 더 나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교란 요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무엇보다도 ESG가 경영활동의 핵심 요소로 녹아들면서 ESG와 재무성과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쟁은 진부해졌다. 이제는 다른 모든 경영활동처럼 어떻게 하면 ESG 경영을 잘 실행하여 기업성과를 올릴 것인가에 초점이 모이고 있다.

 

2050 탄소중립, 제 궤도로 가고 있는가

 

2021년 글래스고 회의에서 120여 개 국가들이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하고, 여기에 맞춰 파리협정에서 약속했던 2030년 탄소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상향하였다. 이처럼 전체 방향성은 2050 탄소중립으로 잡긴 했으나, 개도국 반발도 만만치 않아 탄소배출 1위인 중국은 2060, 3위 인도는 2070년으로 목표 시점을 늦춰 잡았다. 한편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배출량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그런데 유엔환경계획(UNEP) 평가에 따르면 각국의 NDC 목표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데 크게 부족하다. 각국이 2030 NDC 목표를 달성한다면 현재 정책이 계속될 경우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5~1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구온도 상승 1.5도 시나리오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현재 정책 대비 45%를 줄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탄소중립 약속들이 신뢰성이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그나마 2030년까지 감축 경로가 2050 탄소중립을 향해 가고 있지만,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은 2030년 목표가 도리어 현재 탄소 배출량보다 많은 형편이다. 이 세 나라의 탄소 배출량이 45%에 달하는데, 이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2050 탄소중립 달성 가능성이 요원하다.

그럼 각국의 NDC 목표 달성 노력은 어느 정도인가? 상향된 NDC 목표를 제시한 시점이 2021년 말이기 때문에 평가하기에 아직 이르지만, 현재 정책만으로 NDC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없는 건 분명하다. 비교적 모범생EU, 미국, 일본도 목표 달성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컨대 EU1990년 대비 55% 감축 목표인데, 2021년까지 32%를 감축했으며 앞으로 9년 동안 무려 23%를 줄여야 한다. 미국, 일본은 각각의 기준연도 2005, 2013년 대비 50-52%, 48% 감축 목표인데, 2021년까지 20%, 18.4% 줄이는 데 그쳤다.

한국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2030 NDC는 총배출량(=순배출량+흡수원+국제감축+탄소포집·활용 및 저장(CCUS)) 기준으로 20187.27억톤에서 5.12억톤으로 29.6% 감축을 의미한다. 만약 감축이 선형경로를 따른다면 2022년 목표는 6.55억톤인데, 2022년 실제 총배출량은 6.54억톤으로 거의 선형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얼핏 보면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인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작년에 전 세계의 수요감소로 석유화학, 철강 산업 배출량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2030년 국제감축(37.5백만톤), CCUS(11.2백만톤) 목표가 매우 도전적이어서 순배출량 목표 달성은 훨씬 어렵다.

 

탄소중립 달성, 결국엔 건강한 ESG 생태계에 달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도처에서 일어나는데, 1.5도 목표 달성은 극히 어려워 보인다. 개도국은 말할 것 없고 선진국들도 탄소중립을 달성할 정책이 충분하지 못하다. 국제적으로는, 개도국 자금지원이라는 당근과 국제협약, 탄소국경세 등 채찍이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측면에서는, 기술혁신 단계 투자는 비교적 넉넉하지만 대규모 상용화 단계 투자는 매우 부족하다.

상용화 단계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기술혁신과 함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탄소감축 비용이 크게 줄 수 있다. 그러면 선진국부터 탄소감축이 가속화되고, 개도국에 대한 투자도 탄력을 받아서 국제규범(채찍)과 국제지원(당근)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투자자는 수익률 대비 리스크가 줄어들어야 투자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각 단계에서 투자 리스크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공적 기금의 선제적 투자, 정보의 원활한 흐름,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탄소중립뿐 아니라 모든 ESG 문제 해결에 필요한 요소들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