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경제체제 논쟁에서 자본주의가 열위에 있다고 이야기할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끌고 가는 핵심 주체인 기업과 기업가(또는 자본가)를 좋게 이야기할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업들은 탐욕스럽게 오로지 이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거나, 사회 전체의 희생을 발판으로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산다고, 그리고 기업들이 환경오염, 산업재해, 소비자 피해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등의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이처럼 반기업 정서가 크게 확산되면서 기업이 이윤 극대화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정치권과 정부도 이에 발맞춰 여러 가지 환경 및 사회규제를 도입하였다.

그런데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이런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예컨대 탄소배출,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투자를 한다거나, 고용안정을 위해 더 많은 비용 지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기업의 목적=이윤(기업가치) 극대화는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이고, 이 명제는 학계뿐 아니라 경제, 언론 등 사회 전반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비용 지출이 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겠지만, 특히 단기적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시장 풍토에서는 경영자가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최소한의 필요한 지출은 어쩔 수 없이 집행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행동을 예쁘게 포장하고 립 서비스로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 기업은 사회적 가치 구현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조화로운 양립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등등

경제학자들이 기업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 극대화지!”라고 고집스럽게 주장을 꺾지 않아서 경영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반면에, 경영학자들은 역시 발 빠르게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손을 내민다. 경영학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CSR 활동을 하면 당연히 이윤이 줄어들지만, ‘전략적’ CSR 활동을 하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이윤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블로그 (4)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CSR을 바라보는 경제학의 시각, 그리고 경영학의 시각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 논의를 통해 CSRESG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찾아본다. 사회적 책임이 기업의 주된 목적이고 이윤은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사회적 가치와 이윤(경제적 가치)을 함께 추구해보자는 지향점은 CSRESG가 같다. 그러나 CSRESG를 촉발하는(triggering) 지점이 다르고, 지속가능성, 즉 인센티브 합치성 면에서 두 접근 방법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 CSR 개관

 

먼저 CSR 활동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자. EC(European Commission)CSR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CSR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업들의 책임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1) 기업 전략과 경영에 사회, 환경, 윤리, 소비자, 인권 문제를 하께 고려하며, (2) 관련 법령을 준수한다는 의미이다.” CSR이란 용어는 1953년에 미국 경제학자 Howard Bowen에 의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고 하나, 1970년대 이후에야 이 개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CSR의 몇 가지 특징을 짚는다면, 첫째, CSR은 투자자가 아닌 기업의 행동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 투자자들이 기업에게 CSR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단체, 소비자 단체,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인격체로서의 기업을 설정하고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였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기업이 선량한 기업시민이 되기를 원하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동,” 자선적 활동으로서의 CSR이 강조되었다. 이처럼 CSR은 자본시장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고, “착한 기업으로의 재탄생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기업을 바라보다 보니, 기업의 탐욕을 욕하면서도 기업이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낸다거나 연탄 배달 같은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 그것을 미담으로 여기는 그런 낭만적인 시절도 있었다.)

CSRESG와 비교한 [그림]을 보면 그 차이가 보다 더 분명해진다. 첫 번째 그림은 블로그 (2)에 이미 소개된 바 있는데, 투자자들은 그들의 장기적인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서 기업들의 ESG 활동을 장려한다. 그에 비해 두 번째 그림에서는 투자자의 역할이 없다. , 투자자들은 CSR 활동이 자신의 이익에 합치하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고 (또는 못 했고) 따라서 이에 대한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업들이 외부 압력과 기대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그림] ESG 투자와 CSR 활동의 차이점

 

 

 

둘째, CSR 활동을 수행하면 일반적으로 비용이 증가하고, 그에 상응하는 이윤 감소를 수반한다. 물론 뒤에서 언급하듯이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CSR 활동을 잘 한다면 단기적 이윤이 증가할 여지도 있지만, 이는 공부를 잘 하면 성적이 좋다.”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CSR 활동의 목표가 장기적인 수익성 또는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당장에는 이윤이 줄어들어도 이해관계자들을 잘 챙기다보면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윤 증가를 가져올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ESG에서는 ESG 투자가 장기적 수익률 상승을 가져온다고 투자자들이 믿고 기업의 ESG 활동을 의도적으로 장려하는데 비해, CSR에서는 CSR 활동 관련자들이 - 이해관계자, 정부, 기업 - 장기적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단기적 이윤 감소를 무릅쓰고 CSR 활동을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경영인, 정부 관계자나 학자들,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들까지도 “CSR 활동이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지속가능한 경영 환경을 만들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CSR 활동은 목표, 참여자의 이해관계, 프로세스, 인센티브 시스템 등 전반적인 메커니즘이 장기적 수익성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넷째, 최근에 기업들이 CSR보다 지속가능 경영(corporate sustainability management)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이러한 활동을 정리한 지속가능 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를 발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CSR에서 지속가능 경영으로의 변화가 단순히 용어 변화인지 아니면 본질적인 기업 활동의 변화인지는,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고 쉽게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만약 단순한 용어 변화라면 아직은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이런 상황이라고 판단하지만 이는 CSR과 같은 것이고, 만약 본질적 변화라면 지속가능 경영=ESG 활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는 블로그 (2)에서 ESG 투자를 지속가능 투자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섯째, 사회학자들은 CSR을 사회적 경제의 한 범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블로그 (3)에서 보듯이, 사회학 관점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경제체제로서 시장과 정부가 아닌 제3섹터로서의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에게 사회적 가치는 시장경제 체제가 소홀히 한, 또는 파괴한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시장이 사회적 가치 달성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들이 지금까지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착하게 살아라.”고 주문하는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공헌, 지속가능 활동을 강조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본연적 활동이 아니라 죄에 대한 보속 활동일 뿐이다. ,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CSR 활동은 기업의 본질적 활동 영역이 아닌 비시장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사회적 경제의 定義이다.

 

 

3. Friedman과 경제학자들의 시각

          -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3.1 신고전파 경제학의 입장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산업안전, 장애인 고용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할 의무는 기업에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본다. 이윤 극대화를 하고 있는 기업에게 제약 조건을 추가하는 것은 곧 비용 증가=이윤 감소를 의미한다. 한편 외부효과도 기업에게 제약 조건을 부과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외부효과는 한 사람의 행동이 시장 기구를 통하지 않고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부정적 외부효과의 예로는 공장 매연, 한밤 중 아파트 위층의 소음 등을 들 수 있다. 공장은 매연을 내뿜지만 기업이 시장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연을 자발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러면 기업의 경제적 가치는 극대화될지라도 환경이라는 사회적 가치는 훼손된다. 공장 매연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 피해를 시장을 통해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해당 기업과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가 만족할만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정적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정부가 개입하여 외부효과를 발생한 주체에 규제를 가하거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생산 과정에 사회적 가치를 내부화할 수 있다. 그런데, 물론 공장 매연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이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밖에서 제약 조건이 추가된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학에서 쓰는 간단한 수식을 사용하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함수는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참고로 식 (1)에서 Profit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 이윤의 현재가치의 합이다. , 기업이 단기 이윤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미래 이윤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의 할인율은 경제주체마다 차이가 나겠지만.) 기업의 이윤 극대화 행동은 합리성의 가정(rationality assumption)에 기초한다. “모든 경제주체는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합리성의 가정은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 가정이다. 그리고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때 이는 인센티브에 합치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에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maximize Profit(Neoclassical)                                                                                    (1)

                        subject to      E(탄소배출, 오염물질...)

                                             S(산업안전, 최저임금, 장애인 고용....)

                                         G(지배구조 규제, 대리인 비용)

 

, ESG 관련 규제를 충족시키면서 신고전파 경제학이 상정한 이윤함수 값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다. E 관련 규제는 탄소배출량을 규제하고 탄소세를 부과한다거나, 특정 오염물질 배출을 금지하는 것 등이 있고, S 규제 또한 소비자 보호, 산업안전, 최저임금, 장애인 고용 관련 의무 부과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G 영역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 정부가 부과하는 규제들로 이사회 다양성, 대주주 투표권 제한, 주식거래나 M&A 관련 제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정부규제와는 관계가 없지만 중요한 G 관련 비용으로 대리인 비용이 포함된다. 대리인 비용은 경영자 및 직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회사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윤 감소를 일컫는다.

이 수식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가치 추구는 즉각적인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따라서 법·제도로 정한 수준 이상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기업에게 기대하는 것은 합리성의 가정, 즉 기업의 인센티브에 합치하는 제도가 아니므로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가치 창출이 이윤 증대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ESG 투자가 대상으로 삼는 사회적 가치가 단기적 비용 지출을 통해 장기적 수익성 확보에 기여하리라 기대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는 미래 이윤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할인율을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기업들이 매 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자본시장에서는 거기에 따라 주가가 출렁거리는 한, 불확실한 먼 미래를 위해 지금 적지 않은 비용을 흔쾌히 지출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나중에 별도의 블로그에서 논의하겠지만, ESG 투자의 성공은 할인율이 얼마나 낮아질 것인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CSR 활동이 이윤 극대화와 충돌하다보니, CSR은 외부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쓰고 나머지는 착한 기업으로 포장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활동을 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을 잘 엮어서 연말에 멋진 표지의 CSR 보고서로 출간한다. 그러나 사업부서 직원들은 대부분 그런 활동이 있었는지, 그런 보고서가 나왔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흔히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 (물론 시장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정부가 그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그런데 외부효과 말고도 독과점, 불완전한 정보 등 다양한 상황에서도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합의 절차를 거쳐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예컨대, 고용에서의 다양성 확보 - 기업에게 규제를 가하는 것도 정당화된다. (역시 이 사회적 가치와 기업 규제에 따른 비용 중 어떤 것이 더 크냐, 또는 더 나은 방법은 없느냐 등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정치적인 절차를 거친 시장 개입 자체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3.2 Milton Friedman

 

신고전파 경제학은 여러 경제학자들의 기여를 통해 오랜 기간 확립된 이론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의 목적에 관한 연구나 실제 기업 경영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글은 Milton Friedman1970The New York Times Magazine에 기고한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고 생각한다.

글의 제목만 보면 기업은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이윤 증대만 하면 된다는 주장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고 시카고 학파를 이끈 대학자가 그렇게 단선적인 주장을 했을 리 만무이다. (그런데 프리드먼의 주장을 인용한 글을 보다 보면 실제로는 프리드먼의 기고문을 읽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글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기고문은 6페이지에 불과하고 글도 어렵지 않으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주장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첫째, 기업들은 법률에 규정되고 윤리적 관습으로 체화된 사회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합의 절차를 거쳐서 도입된 정부 규제는 당연히 지키는 범위 내에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상정하였다.

둘째, 프리드먼은 허위, 사기가 없는 자유경쟁 시장을 전제하고 있다. 이 전제에 대해 좀 더 보충하면, 프리드먼은 그의 유명한 저서 Capitalism and Freedom(1962)에서 완전경쟁 시장 참여자들은 거래조건을 바꿀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도 없지만, 독점 기업들은 독점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 힘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독과점 기업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 The existence of monopoly raises the issue of the ”social responsibility,“ as it has come to be called, of the monopolist. The participant in a competitive market has no appreciable power to alter terms of exchange; he is hardly visible as a separate entity; hence it is hard to argue that he has any ”social responsibility“ except that which is shared by all citizens to obey the law of the land and to live according to his lights. The monopolist is visible and has power. It is easy to argue that he should discharge his power not solely to further his own interests but to further socially desirable ends.”

                            - M. Friedman, Capitalism and Freedom(1962), p. 120

 

셋째, 프리드먼은 기업이란 참여자들 간에 자발적으로 맺어진 계약의 결합체(nexus of contracts)”라는 일반적인 기업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편의 상 법인격을 부여받지만, 기업 자체가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는 아니며, 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주체는 경영자(CEO)이다.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프리드먼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경영자는 주주들에 의해 임명된 사람으로서 주주 이익을 위해서 행동해야 하는 대리인(agent)이다. 그런데 그가 법에서 정한 수준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활동한다면, 이는 자신을 고용한 주주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인플레이션을 줄이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가격인상을 억제한다거나, 법에서 정한 수준 이상으로 오염을 막기 위해 지출한 것, 빈곤 퇴치에 기여하기 위해 적임자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실업자를 고용하는 것, 이 모든 행동들은 경영자가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돈을 쓰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서 그 누군가는 반드시 주주가 아닐 수도 있다. 비용 증가로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의 돈을 쓰는 셈이며, 경영자 행동이 몇몇 노동자들의 급여를 낮춘 결과가 되었다면 그는 그 노동자들의 돈을 쓴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돈을 활용해서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원래 정부가 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실 이 경우의 경영자는 세금을 걷어 자신이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정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앞의 전제에서 언급하였듯이, 프리드먼은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이처럼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이 정치적 의사결정화 하면, 시장경제 체제가 갖는 장점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경제적 가치(이윤)를 열심히 추구하다보면, 소비자, 노동자, 납품 기업의 후생 같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저절로 기여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밖의 사회적 목표는 기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정부가 별도의 정치적 프로세스를 통해서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만약 기업 의사결정이 정치적 프로세스를 따르게 되면, 이는 곧 시장기구가 아니라 정치적 메커니즘이 자원배분을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사회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시장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을 구분하려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일반적 특성이지만, 프리드먼에서 이런 특성의 강력한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프리드먼의 주장은, 경영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기업 자원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지출하는 것은 전형적인 대리인 비용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프리드먼은 CSR이 실제로는 기업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포장하는 용어로 쓰일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인정한다. 예컨대 조그마한 지역사회에 큰 대기업이 존재하는 경우에, 그 지역사회에 여러 가지 기여를 하는 것이 좋은 노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파업이나 태업 등 행동을 줄일 수 있는 등 바람직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예외적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경영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발언을 남발하는 것은, 이윤추구가 사악하고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외부의 힘에 의해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널리 퍼트리고 기정사실화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프리드먼은 경고한다.

기업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시작한 CSR이 그 반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경고.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4. 경영학적 관점: “전략적” CSR

 

경영학자들은 전공의 특성 상 투자자들보다는 기업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경영학자들이 보는 현 상황은 대충 이렇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을 받는 세상이 왔는데, 기업들은 이윤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사회적 책임을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기에 어찌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렇다면 CSR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윤을 늘릴 수 있는 전략이 있지 않을까? 원래 전략이란 게 경영 환경이 바뀌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경영활동을 찾아내 이윤을 늘리는 걸 목표로 하는 것이니까.”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영학에서는 전략적’ CSR 활동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앞에서 보았듯이, 경제학에서는 CSR을 비용 증가 요인으로 보고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CSR을 자선활동이나 사회공헌 활동과 동일시하여, 이미 창출된 이익을 이해관계자와 나누는 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기업의 지나친이윤추구를 비도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그 이익을 널리 나눌수록 바람직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CSR을 연구하는 경영학자들은 이러한 시각들이 CSR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CSR 학자들과 실무가들은 사회적 책임만을 강조하는 CSR은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며, 공유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 CSR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다.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경영학에서는 전략적 CSR의 개념은 1984Freeman의 이해관계자 이론에서 시작되어서 최근까지 다양한 이론으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본다. Freeman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부의 재분배보다는 부의 창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따라서 이해관계자 관리에 있어서 전략적 접근을 강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후에도 이익, 사람, 지구에 관련된 성과를 강조하는 TBL(triple bottom line) 이론(1997),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해야 한다는 Blended Value 이론(2006), Sustainable Value 이론(2005) 등이 전략적 CSR 이론의 계보를 잇는다.

전략적 CSR 이론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함수는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maximize (Profit(CSR), Social Value)                                                                           (2)

 

참고로 앞에서 설명한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함수는 다음과 같았다.

 

           maximize Profit(Neoclassical)                                                                                   (1)

                        subject to      E(탄소배출, 오염물질...)

                                             S(산업안전, 최저임금, 장애인 고용...)

                                             G(지배구조 규제, 대리인 비용)

 

(1)에 비해 식 (2)의 중요한 변화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기업에게 사회적 가치는 규제를 피하는 선에서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할 제약 조건이었는데 비해, 전략적 CSR 관점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비용 또는 제약 조건이 아니라 이윤과 함께 극대화를 추구할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식으로만 보면 기업들은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목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다음과 같은 제약 조건이 있다.

 

          subject to Profit(CSR) Profit(Neoclassical)                                                                   (3)

 

, CSR 활동을 하는 경우의 이윤이 CSR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 이윤보다 크거나 적어도 같아야만 한다. (주주들이 CSR 때문에 낮아진 이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야, 모든 기업 경영자들이 서로 앞 다투어 CSR 활동에 뛰어들 것이다. 내가 이런 좋은 방법을 왜 지금까지 몰랐던 말인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경영학자들은 전략적 CSR 활동을 통해 이러한 목표가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들을 보면, 예외적이고 일화적(anecdotal)으로 이윤도 늘리고 사회적 가치도 창출한 몇몇 사례가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는,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CSR 활동이 높은 이윤을 창출했다는 실증분석 결과는 없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다. 전략적으로 CSR 활동을 한다는 것은 남들과는 다르게 잘 CSR을 한다는 뜻인데, 이처럼 남들과는 차별화된 전략과 행동만이 초과이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기업들이 똑같은 CSR 전략과 행동을 따라하면, 그 전략은 모든 기업들의 일상적인 경영활동이 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초과이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CSR 활동은, 예외적으로 특출한 사례를 제외하면, 단기적 이윤의 감소를 가져올 뿐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느끼기에 전략적 CSR기업을 잘 운영하면 뭐든지 잘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내가 전략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사실은 나도 주로 전략을 하면서 내 career를 보냈다. 지금도 ICT 경영전략, 디지털 전환 전략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니, 속된 말로 전략으로 평생 밥을 먹고 산 셈이다.) ,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략은 특정 기업에게 하는 조언이어야지,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조언일 수 없다. , 몇몇 기업들은 뛰어난 전략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초과이윤을 올릴 수 있으므로, 개별 기업들에게 어떻게 하면 초과이윤을 올릴지 조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러 기업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평균적인 기업은 초과이윤을 올릴 수 없다. 즉 경쟁 시장에서 모든 기업이 초과이윤을 올릴 수 있는 그런 전략은 없다. 한두 명의 학생에게 우등생이 될 비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모든 학생이 우등생이 될 비법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세상에 쓸모없는 것 같지만, 시장 전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경제학이 필요하다.)

제약 조건 (3)이 던지는 더 중요한 질문은 기업들이 왜 CSR 활동을 할 인센티브가 있냐는 것이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몇몇 경영자들이 CSR을 통해 이윤도 늘리고 사회적으로도 칭찬을 받는 경우가 나타나긴 하겠지만, 모든 경영자들이 두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려고 노력할 인센티브를 발견하기 힘들다. 경영자의 갑, 즉 투자자가 착해지거나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주가 극대화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 않는 한. 그러나 착한 투자자를 전제로 하면 이는 사회적 경제와 비슷해지는 것이고, 블로그 (3)에서 소개한 꽃들에게 희망을스토리처럼 투자자 하나하나를 착한 투자자로 만들어 모든 투자자를 다 착하게 만들어야 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된다. 결국 대안은 투자자 입장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가 자신에게 높은 주가를 가져다준다는 인식 또는 상황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것이 ESG 투자의 지향점이다.

 

 

5. 에필로그: CSR이 진화한다고 ESG가 되는 건 아니다

 

CSR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도 다하라고 시작했으며, 그러다보니 CSR 때문에 기업 이윤이 줄어드는지 여부는 이해관계자들에게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기업이 줄어들수록 이해관계자들의 몫이 늘어나기 때문에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적인 시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CSR 대신에 지속가능 활동이란 표현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CSR 또는 지속가능 활동이 기업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한다. 그리고 경영학에서도 win-win이 가능한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CSR이 능동적, 적극적인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CSR 활동이 곧 ESG 투자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적 가치와 이윤(경제적 가치)을 함께 추구해보자는 지향점은 CSRESG가 같은 건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측면에서 둘은 다르다.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얘기 아니냐.”라면서 퉁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면 둘이 어떻게 다른지는 따져야 한다.

우선, 연원이 다르다 보니 단어가 다르다. CSR에서 R은 단어 자체가 의무이다. , CSR은 의무이지 이익이 되어서 하는 활동은 아닌 것이다. 물론 개념이 진화한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용어가 상징하는 각각의 개념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단계쯤 진화했다면 R이 들어가지 않는 새로운 용어를 써야할 때다.

CSR 활동은 예외적인 기업에게는 축복이 될지 모르지만, 대다수 기업에게는 비용증가, 이윤감소라는 부담을 줄 뿐이다. CSR을 촉발하는 지점이 자본시장(투자자)이 아니라 외부 이해관계자와 정부이기 때문에, 기업 경영자들이 이러한 이윤 감소를 감당할 힘도 없고, 감당할 인센티브도 없다. CSR 활동이 시장을, 경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못되는 이유다.

물론 CSR 활동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 특히 ESG 투자가 활성화되려면 결국 기업들의 ESG 활동이 성공적으로 진전되어야 하는데, 전략적 CSR 이론은 기업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 CSR이나 ESG가 다 그게 그거고, 비슷한 것이라는 말은 안하면 좋겠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