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싸이월드 게시판에 2005년 10월 17일 작성한 글입니다.
  이젠 장영희씨의 따뜻하고 가슴을 울리는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프네요.

1. 오
랜만에 “soft"한 책을 읽었다.  서강
대 교수인 영문학자 장영희씨가 조선일보에 오래 연재해
왔던 문학에세이를 엮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인데, 잘 아는 기자 한 분이 저자의 서명까지 받아 선물한 책을 ”쳐 박아 놓았다가“ 얼마 전에 꺼내들었다.  아마도 가을이라는 계절이 낙엽, 숲, 그리고 문학을 연상케 하는데 기여했나 보다.

저자는 시, 소설, 수필 등 모든 장르에 걸쳐 동서고금의 책 50여권을 자신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서 잔잔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조선일보 연재 시절에 많은 글들을 읽었지만 이렇게 묶어서 다시 한 번 차분히 읽으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사실 이 글들은 책을 자세히 소개하거나 그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보다는 여기에 소개된 책을 읽으며 장영희씨가 어떤 느낌을 가졌으며, 또 그 책들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함께 느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저자의 글은 참 감미롭고 아름다우며, “감성”이 가득 차 있다.  가을 단풍이 가득 찬 숲 속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함께 걸으며, 인생, 사랑, 우정 등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기분이 드는 글들이다.  내게는 참으로 생소한 그런 기분들 말이다...


2. 사실 난 의도적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살아 왔던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수강했던 역사철학 과목에서 헤겔의 유명한 말,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말에 크게 감명 받아서 현실이 나가야 할 당위성에 대해 목청 높여 이야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나아가 “인간적”이라는 말이 감성적, 감상적, 특히 본능적이라는 말로 쓰이는 경향을 경계했다.  흔히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말 속에는 무책임하게 본능에 끌려 행동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헤겔의 말을 사회공간에서 개인공간으로 변형시켜 “인간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은 인간적이다.”라는 내 나름대로의 새로운 인간형을 즐겨 설파하기도 했다.


3. 이처럼 늘상 “이성”을 앞세우다 보니, 아주 가끔 “감성”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나를 지배하려는 상황이 전개되면 나는 당혹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익숙치도 않거니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머리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이 때 십중팔구 나는 그 "감성"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과 내 스스로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대학 이후 30년 가까운 시절, 이성과 감성의 조화는 내게 하나의 숙제였지만, 이제 새삼스레 그 둘 간의 조화를 찾아나갈 방도를 찾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4. 이 책을 읽으며 눈에 띄었던 몇 구절들을 함께 나눠 본다.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해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제대로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 생 텍쥐베리, "어린 왕자"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께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가장 악한 자는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자."

- 호손, "주홍글씨"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 논어

"사람이 발명한 것은 사람이 풀어 해결할 수 있다."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이제껏 내 길을 밝혀주고 내가 계속해서 삶을 기쁘게 대면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준 세 가지 이상은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였다.” - 아인쉬타인

 

“인간의 마음이란 악마와 신이 서로 싸우고 있는 싸움터”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평화없는 사랑, 사랑없는 평화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 보마르셰, “세빌리아의 이발사”  

 

“당신이 1분 후에 죽어야 하고 꼭 한 사람에게 전화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겠습니까?”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내내 행복을 추구하지만, 막상 우리가 원하던 행복을 획득하면 그 행복을 느끼는 것은 한순간이다." - 장영희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