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싸이월드 게시판에 2008년 6월 25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1. 스톡데일(Stockdale)이란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물론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잘 알고 있으시죠.  이번엔 이 두 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전에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 다시 이들의 이야기가 머리에 자주 떠오르네요.  


2.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힐턴 전쟁포로수용소에 갇힌 미군 중 최고위 장교였습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20여 차례의 고문을 당하면서, 전쟁포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정해진 석방일자도 없이, 심지어 살아남아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태로 8년을 견뎌냈습니다.  그는 수용소 내의 통솔 책임을 떠맡아, 자신을 체포한 사람들과 포로들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맞서 싸우며, 가능한 한 많은 포로들이 큰 부상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습니다.  한 번은 자신이 '훌륭한 대우를 받는 포로'의 사례로 비디오 테이프에 찍히는 걸 피하기 위해 의자로 자신을 내리치고 면도날로 자신을 베는 등 고의로 자해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그들을 체포한 사람들이 애써 조성하려고 하는 고립감을 줄이기 위해 정교한 내부 통신체계도 마련했습니다. (톡-톡은 a, 톡-쉬고-톡-톡은 b, 톡-톡-쉬고-톡은 f 하는 식으로 알파벳 문자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고 하지요)  한 번은 깊은 침묵 속에 포로들이 모여들더니 사람들이 박자를 맞춰 일제히 두드리는 통신부호 소리가 운동장을 휩쓸었는데, 이는 스톡데일에게 보내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소리였다는군요.  바로 그날이 그가 총에 맞아 쓰러진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지요.  냉혹한 포로수용소의 현실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결국 많은 미군 포로들과 함께 수용소에서 풀려나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국민적 영웅이 되고, 해군 역사상 조종사 기장과 의회 명예 훈장을 동시에 다는 최초의 3성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는 불확실한 운명, 체포한 사람들의 냉혹한 행동, 황량하고 침통한 포로수용소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이러한 질문에 그의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야기의 끝에 대한 믿음을 잃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거기서 풀려날 거라는 희망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거니와, 한걸음 더 나아가 결국에는 성공하여 그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바꾸지 않을 내 생애의 전기로 전환시키고 말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3. 그런데 여기까지는 감동적이긴 하지만 종종 들을 수 있는 ‘인간승리’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스톡데일의 그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그러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는 "아, 그건 간단하지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라고 답했고, "낙관주의자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방금 희망과 믿음 덕분에 견뎌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라고 되묻는 질문에, 그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다시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감사절, 그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상심해서 죽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스톡데일 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짐 콜린스(Jim Collins)가 지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스톡데일 장군이 수용소의 황량한 환경을 이겨내고 다른 포로들까지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는 규율“을 혼동하지 않은 덕분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지요.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들에서 비슷한 특징을 찾아냈습니다.  즉,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커나간 회사는 다른 기업과 비슷한 역경에 처했지만 이에 정면으로 대응해 더 강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조만간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낙관한 회사들은 주저앉고 말았다는 분석입니다.  짐 콜린스는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명명했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자. 그러나 믿음은 잃지 말라." 얼핏 상반되는 두 측면을 두루 살핀 회사가 위대한 기업이 되었다는 결론입니다.

오늘, 낙관주의자들에게 타이르듯 이야기하는 스톡데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우린 이번 크리스마스 때도 나가지 못할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4. 스티브 잡스(Steve Jobs).  잘 알다시피 그는 나이 오십에 이미 컴퓨터 산업(Apple, NeXt), 영화 산업(Pixar Studio, Toy Story, Bug's Life), 음악 산업(iPod, iTunes)에서 말 그대로 "아이콘"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 중퇴자로서 스무 살에 애플 컴퓨터를 창업했다가 서른 살에 이사회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는데, NeXt와 Pixar라는 회사를 성공적으로 창업하여 다시 애플의 회장으로 당당하게 복귀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측은 스티브 잡스를 초청하여 졸업식 축사를 들었는데, 이 연설에 담긴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 후 여러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연설문 원문은 이 게시판에 제가 쓴 글, "Stay hungry. Stay foolish-Steve Jobs Stanford 졸업식 연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5. 그는 이 연설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하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자신이 입양된 집안은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양부모가 자기에게 대학교육을 시키려고 했지만, 그런 양부모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한 학기만 마치고 대학을 그만 둔 이야기, 그렇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이 애플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즉, 자신이 만약에 넉넉한 집안에 태어나 대학을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면 애플 컴퓨터 창업에 그렇게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이죠.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 결정은 내가 지금까지 내린 결정 중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과목들을 듣지 않아도 되고, 그 대신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만 해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어땠을까요?  “나는 운이 나쁘게도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불우하게 자랐고, 마침내 돈이 없어 대학을 마치지도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난 것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나서 처음엔 정말 막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도리어 애플에 계속 있었다면 이제는 불가능했을 법한 일들, 즉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NeXt와 Pixar를 창업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NeXt는 후에 애플 컴퓨터의 부활에 요긴하게 쓰일 핵심 기술을 개발하였고, Pixar는 최초의 컴퓨터 애니매이션 영화인 Toy Story를 만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매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애플로부터 해고된 것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에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성공했다’는 무거운 짐에서부터 해방되어 다시 ‘초심자’로 돌아갈 수 있다는 편안함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5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세상에! 애플에서 해고된 것이 가장 잘된 일이었다니...

마지막 이야기는 그의 췌장암 극복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이제는 생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정말 운이 좋게도 그의 췌장암은 수술을 통해 치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췌장암이 가져다 준 죽음에서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다시 한 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는 불안해하고,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살 수 있을까에 모든 신경을 쓸 텐데,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즉 오늘이 만약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당신의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의견 따위에 매달리지 말고, 당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당신의 가슴과 직관은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탠포드 졸업생들에게 인생을 사는 자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면서 자신의 연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6. 저는 Stockdale의 이야기를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면, 잡스의 이야기야말로 Jobs Paradox라고 불러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중퇴한 것을 가장 옳은 의사결정이었고, 자신이 창업하여 크게 성공한 회사에서 쫓겨 난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으며, 죽음을 앞두고는 삶 자체에 연연하느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옳듯이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나이 오십이 되기 전에 컴퓨터, 영화, 음악, 이제는 휴대폰 산업까지를 넘나들면서 해당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남들이 가장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도리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그렇기에 그 상황을 딛고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갈 힘을 만들어 내는 자세.  이건 스티브 잡스에게나 가능한 일일까요?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