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싸이월드 게시판에 2005년 9월 24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그 때  Jeffrey Young & William Simon이 쓴 "Icon: Steve Jobs"을  읽으며 든 생각들을 창의성과 연계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최근 출판된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고 비교해 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스티브 잡스와 창의성
내가 스티브 잡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행한 연설문을 읽고 나서였다. (게시판 "Stay Hungry, Stay Foolish" 참조)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의 연설에서 그의 삶이 가진 녹록치 않은 무게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최근에 "Icon: Steve Jobs"라는 일종의 스티브 잡스 평전이 출판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바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Steve Jobs.  이 책의 저자 말대로 그는 나이 오십에 컴퓨터(Apple, NeXt), 영화(Pixar, Toy Story, Bug's Life), 음악산업(iPod, iTunes)에서 "아이콘"이 되었다.  잡스가 이처럼 세 가지 산업 분야를 일신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그의 창의성에서 있다는 것은, 그가 "미국 경영자들이 뽑은 가장 창의적인 CEO"라는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다.
잡스 스스로도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내가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을 옹호하면서, "맥킨토시가 위대한 상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우리다.  시장조사는 하지 않는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조사를 했는가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맥킨토시는 시장에서 환대를 받지 못하였다...)
세계 최초의 PC를 생산하였고, 그 이후에 생산된 모든 PC에서도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애플은 iPod에서 그 전통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는데, 잡스가 디자인을 강조하였다는 점은 이 책의 곳곳에 기록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디자인이 순전히 어떻게 보이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디자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제품의 디자인을 정말로 잘하기 위해선 그 제품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잡스였기에, 단순한 기계로서의 MP3 플레이어가 아닌 "생각과 시간과 사랑이 담긴" iPod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디즈니의 잇단 실패와 픽사의 잇단 성공이 대비되는 것도 창의성에 관한 것이다. "영혼을 잃고 손쉬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디즈니와 픽사의 최근 작품에서 창조력 차이가 뚜렷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애플의 한 초창기 멤버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린 돈 때문에 일한게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했다."

2.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인가 사업가인가?
그러나 이 책에서 스티브 잡스가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만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위인전"은 아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잡스는 괴퍅하고 고집스러우며,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리고 약속을 어기고, 심지어는 거짓말도 잘하는 아주 못된 사람이다.  잡스에 관한 몇 가지 표현을 들어 보자.

- "그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또 수시로 마음을 바꿨다."
- "스티브는 같이 회사를 세운 동료들 가운데 다수에게 스톡옵션을 주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 "스티브의 세계에 속한다면 모든 면에서 스티브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보내야 한다."
- "스티브는 아주 사소한 문제도 직접 챙기려 드는 마이크로매니저였다."
- "팀원들은 아이디어의 주인을 바꿔치기하는 (즉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스티브의 괴벽을 잘 알고 있었다."
 -"스티브는 애플에서 맛본 실패를 충분히 반성하지 않았고 아직도 자신이 쫓겨난 까닭을 알지 못했다."
- "스티브는 다른 사람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었다."
- "그에게 계약이란 언제나 변경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까다롭고 탐욕스러운 보스를 위해서 일하는 직원들이 과연 있을까?  그럼 그의 성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머리와 마음에 열정의 불길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의 이런 "불가해한 카리스마"와 직원들을 설설 기게 만들었던 "발작적인 분노"가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두 가지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밥 딜런을 자신의 role model로 생각할만큼 사업가라기보단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동경하고 있다.  이런 그를 보통 사업가의 틀로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지 모르겠다. 

3. 지식경제에서 창조경제로...
내가 잡스에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계기는 최근 Business Week('05/8/15)에 소개된 "Get Creative"라는 기사를 읽고서이다. 
이 기사는 미국이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에서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로 옮겨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식경제 시대에서 미국을 선두에 지키게 했던 많은 정보와 지식들은 이제 중국, 인도 등의 개발도상국에 대부분 이전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더 값싼 생산요소를 투입하여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기업들은 (1) 단지 제품만이 아니라 소비자 경험을 만들어 내고, (2) 전체적인 브랜드 전략을 새로 수립하며, (3) 새로운 영역에서 innovation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를 창조경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Business Week은 많은 미국기업들이 창의성과 혁신성을 보강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지식경제 시대의 상징이었던 GE의 Immelt 회장이 "GE는 임원들을 창의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창의적인 지도자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원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도록 팀을 리드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미국은 아주 빠르게 창의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데 전세계 기업 고위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창조적인 기업에 애플이 압도적인 차이로 선정되었다.  (그 뒤를 3M, MS, GE, SONY 등이 뒤쫓고 있으며, 삼성도 12위로 선정되었다.)

4. 잡스없는 애플은 여전히 창의적일까? 
이쯤에서 내 생각은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이 애플의 창의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모아졌다.  잡스가 애플의 창의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앞에서 열거했듯이 잡스의 강한 성격은 애플의 의사결정과 조직, 그리고 구성원들의 의식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기에, 애플의 직원들은 잡스를 "애플의 visionary"로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잡스 또한 자신이 곧 "애플의 심장이자 영혼"임을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기업보다도 창업자/CEO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럼 잡스가 떠난 후의 애플은 어떨까?  여전히 애플은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남아 있을까?  다시 말하면 창의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업에 내재화될 수 있는 것인가?  앞으로 상당 기간 잡스없는 애플을 상상할 수 없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참 후에나 주어질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그 대답은 다분히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했듯이 잡스 자신이 어쩌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는 "잡스가 곧 애플"인 것을 추구하며 즐기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 또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Icon"의 저자들은 디즈니의 아이스너 회장과 잡스의 대결구도에서 디즈니가 최근에 창의성을 상실한 한 원인을 찾으려 하고 있다.  저자들은 아이스너 회장도 매우 창의적인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업을 창업한 적이 없는, 자기만의 쇼를 보여준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창조적인 모험가"였다면, 잡스는 "창조자"였다고 비교하고 있다.  어느 기업에서건 창업자와 최대주주, 그리고 경영자는 특성과 인센티브 면에서 서로 다른 것이 분명하지만 창의적인 기업의 경우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나탄나는 것인지 모른다.

bottom line으로 내려가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잡스가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고 있는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잡스는 "어떤 이가 실패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그는 예술가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창의성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실패의 위험을 감안할 때 예술가=창조자라는 등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랬을 때, 창의성은 한 사람의 기질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시스템화되기 매우 어렵지 않을까?

"(예술가)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이기려 한다.  이 싸움은 셰익스피어적인 것이며 근본적인 것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21세기 벽두의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우리는 애플과 MS의 싸움으로 이해할 지 모르는 큰 싸움을 잡스는 완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