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어른들도 임금님이 벌거벗은 걸 다 알고 있었단다.

너도 나중에 크면 알게 될게다. 그렇게 해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1. Prologue

 

페이스북 주가를 둘러싼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선은 IT산업 사상 최대 기업가치인 1,040억달러 (주당 38달러) 규모의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이기 때문에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상장 전의 공모가 논란은 이론적이고 호기심 섞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장 주간사인 모건스탠리가 페이스북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몇몇 투자자들에게만 제공하는 등 상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잡음이 거품 주장에 불을 붙인 셈이다. 그리고 상장 이후 실제로 주가가 상당히 빠지고 나니까 이제 거품이었다는 주장이 아주 힘을 얻는 모습이다. (6월 15일 현재 30달러를 회복하였지만, 한 때는 26달러 밑으로 떨어졌었다.)

자기네들끼리 “이거 거품 아니야?”라고 수군거리다가, 상장을 앞두고는 더 이상 얘기 안하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는데, 악재가 이어지자 “거봐, 거품이라고 했잖아.”라고 일제히 떠드는 모습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보는 듯하다.

 

 

2. 거품 여부가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이슈는 거품이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적어도 절대 다수의 이성적 판단은 페이스북의 기업가치에 비해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런 공모가가 책정되지 않았어야 하고, 상장된 이후에는 엄청나게 폭락했어야 했다. (지금만큼의 주가하락도 '어린이'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하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높게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럼 뭐가 잘못된 것인가? 왜 모두가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가격에 IPO가 일어났을까? 시장은 비합리적인 것인가? 월가의 탐욕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이런 탐욕은 견제되지 않는건가? 나는 이러한 거품이 혁신을 장려하는 미국식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그 비용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이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3. 페이스북 주가에는 거품이 있는가? - 그렇다

 

페이스북 거품과 증시 전체의 IT 또는 벤처 거품의 존재는 구별해서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해서 논점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먼저 페이스북 주가가 실제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페이스북 주가가 거품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첫째는 주가수익비율(PER, Price-Earnings Ratio)이다. 페이스북의 작년 순이익이 약 10억달러이니 PER는 104배이다. 그에 비해 최고의 IT기업인 구글과 애플의 PER는 각각 16배, 14배에 불과하다. 104배의 PER가 정당화되려면 향후 몇 년 이내에 순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둘째, 페이스북 전체 매출의 85%를 차지하는 광고매출의 성장세가 지난해부터 둔화되었다. 특히 올 1분기 광고 매출은 8.7억달러로 지난 분기보다 8% 줄었다.

페이스북 주가가 적정하다는 견해는 향후에 다양한 수익원이 발굴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아직 모바일 버전에 광고를 올리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에 페이스북은 스마트폰용 앱스토어를 연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에 등록된 앱은 약 80만개로 애플 앱스토어의 약 60만개보다도 많다. 10억 명의 가입자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과 결제시스템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글과 사진 등 검색기능을 부여하면 또 다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이런 모든 가능성들이 현실화된다면 페이스북의 현재 주가는 도리어 낮은 편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끝으로 구글과 아마존의 기업공개 당시 PER는 각각 100배와 126배였다는 점도 페이스북 주가에 거품이 없다는 주장에 종종 인용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가치산정(valuation) 방법은 앞에서와 같은 단순 숫자 비교는 아니다. 즉, 페이스북이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순이익의 합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Anup Srivastava 교수는 광고 이외의 다양한 수익원이 있고 아주 공격적으로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서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를 계산한 결과, 250억달러를 넘지 못한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구글의 상장이 2004년에 이루어졌는데, 7년 후인 2011년의 PER가 16배이다. 페이스북의 현재 PER가 104배이니, 구글의 PER와 동일한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가치로 환산한 7년 후 순이익이 2011년 보다 6.5배인 65억달러가 되어야 한다.(이자율을 5%로 가정했을 때 7년 후인 2019년 순이익은 91억달러) 이는 올해부터 8년간 매년 26.5%씩 순이익이 증가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4. 증시 전체에 IT·벤처 거품이 있는가? - 별로 없다

 

그렇다면 전체 증시에서 IT나 벤처주식에 대해 거품이 있는가? 페이스북이 아주 높은 수준에 상장이 되었고 어느 정도 주가를 받쳐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만큼의 거품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닷컴 종목이 상장만 하면 주가가 급등을 거듭하던 10여 년 전의 버블시기에 비하면 지금은 차분한 편이다. 즉, 페이스북 주식이 20~30% 떨어진 수준에서 거래된다는 것은 증시가 이성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셜 커머스 업체인 그루폰(Groupon)이 공모가(20달러)의 절반 수준인 10달러대, 소셜 게임업체 징가(Zynga) 역시 공모가(10달러)를 밑도는 6~7달러 수준인 점 역시 증시 전체적으로는 큰 거품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개별 기업 주가에 거품이 있음을 인식하고 공모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주가가 형성된다는 사실이 증시 전체에는 거품이 없다는 근거가 된다.

 

 

5. 미국의 혁신 시스템: 百花齊放

 

미국의 경쟁 시스템, 특히 혁신 시스템은 ‘백화제방(百花齊放)’식이다. 즉 사전 스크리닝 없이 모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놓게 하고 서로 경쟁하여 가장 잘 핀 예쁜 꽃을 고르는 방식이다. 그리고 가장 예쁜 꽃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보상을 해준다. 벤처기업의 대주주, 대기업 CEO, 프로스포츠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액이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급여가 아니다. 특출하게 뛰어난 기술·역량은 교육이나 생산과정을 통해서 재창출할 수 없는 희소자원이기 때문에 엄청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보상은 地代(rent)와 닮았다. 우리나라 공시지가 최고액(서울 충무로)은 1제곱미터당 6,500만 원이고 최저액(경남 화개면)은 130원이다. 무려 50만 배의 차이가 난다. 같은 땅이지만 서울 충무로의 땅은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희소자원이기 때문이다.

백 가지 꽃이 예쁘게 피려면 제때에 물과 거름을 주어야 한다. 미국의 혁신 시스템은 각 단계별로 엔젤투자, 벤처투자, 그리고 인수·합병 또는 기업공개의 방식으로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 엔젤과 벤처투자자가 꽃을 키우는 제도라면, 기업공개는 혁신 시스템의 마지막 단계로서 가장 예쁜 꽃에게 큰 보상을 안겨준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미국이 애플, 구글, MS, 시스코 등 걸출한 기업을 만들어 내고 전 세계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서 공모가가 낮게 책정되었지만 상장 이후에 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공모가에 거품이 끼어 상장 직후에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장기적인 주가는 두고 봐야겠지만, 페이스북, 그루폰, 징가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공모가가 기업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그랬을 때 보다 혁신성이 있는, 즉 보다 희소성이 큰 기업에게 다소 무리한 보상이 가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합의(컨센서스)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 통해 그 기업뿐 아니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열심히 키운 창업자와 임직원, 그리고 그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골라내는 안목을 가진 엔젤 및 벤처투자자를 스타로 만드는 것이 혁신을 장려하는 미국식 시스템의 본질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페이스북, 그루폰, 징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소셜 서비스의 3총사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거품이 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거품 예찬론자는 아니다. 거품은 분명 미국식 혁신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편익을 만들어내는 모든 제도는 비용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최소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비용이 아예 없어야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비용을 0으로 만들려고 하면 그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비용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최소화해야 할 대상이다.(Cost is not to be avoided, but to be minimized.) 즉 기업이 한계비용보다 한계생산액이 더 크게 되는 한 생산을 계속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행히도 미국의 혁신 시스템도 그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효율화되고 있다. 닷컴 버블을 이겨내면서 구글과 아마존이라는 아주 뛰어난 기업이 탄생했지만 그 비용은 너무 컸다. 그에 비해 페이스북 등이 주도하는 소셜 서비스 혁신을 이루어내기 위한 비용(거품)은 훨씬 작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 우리나라의 혁신 시스템은 무엇일까? 아마 ‘가난한 집 맏아들’이 아닐까?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가난한 집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장남만 대학을 보내고 나머지 자녀들은 희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 장남은 공부를 잘해서 출세를 하고 돈도 많이 번다. 그런데 장남의 출세에는 다른 형제들의 희생이 따랐다. 따라서 장남에게는 다른 형제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숙명여대 유진수 교수는 그의 저서 ‘가난한 집 맏아들’에서, 지금 ‘잘 나가는’ 대기업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정부의 특혜가 큰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그 과정에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에게 빚을 갚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백화제방’식 접근을 할 자원도 제도도 부족하다. 과거엔 더 심각했고 지금도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그렇다. 따라서 ‘똑똑한 맏아들’에게 몰아주는 식의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보상 수준 또한 미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혁신을 얼마나 잘 일궈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

 

 

6. Epilogue - ‘Nirvana Approach’와 ‘철없는 어른들’을 경계하라

 

미국의 경제학자 Demsetz는 ‘Nirvana Approach’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Nirvana, 즉 열반의 경지에 이르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Nirvana에 비교하면 사바세계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경제학자들이 종종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해답을 상정하고는 여기에 못 미치는 모든 대안들을 비판하는 태도를 빗대는 말이다. 어차피 선택은 두 가지 불완전한 대안 중에서 덜 나쁜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로 마무리하자. 이 동화에서는 어린이의 꾸밈없고 순진한 눈으로 어른들의 위선과 사술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펼쳐지고 있는 페이스북 이야기에서는 '철없는 어른들'이 주가가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거품이 있다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 거품은 월가의 탐욕 때문이라고, 사기극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 거품 덕에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글의 축약본은 2012. 6. 22 조선일보에 기고되었습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