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4월 27일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휴대전화·PC뿐 아니라 TV·냉장고 등 가전기기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그 핵심은 '기능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과 '서로 닮아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제품들을 '스마트 기기'로 묶어서 살펴보면, 이 산업을 이해하기 쉽다. 스마트 기기 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하고, 그 시사점을 살펴본다.

첫째 흐름은 '수직적 통합화'이다. 과거의 하드웨어(HW) 간 경쟁에서 이제는 HW·운영체제(OS)·콘텐츠 장터를 아우르는 전체 가치 사슬 간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애플은 이 모든 것을 직접 제공하는 수직결합 구조를 갖춘 반면, 다른 제조업체들은 구글(안드로이드)·MS(윈도우) 등과 제휴해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경쟁 양상이 바뀌면서, HW의 중요성은 줄어드는 반면에 우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OS와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둘째, 수평적 확대에 따라 기기들이 비슷해지고 있다. 또 기기 간의 연동도 일상화되고 있다. 예컨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등장으로 휴대폰과 노트북의 차이가 크게 줄었다. MP3 플레이어·게임기·전자책의 입지는 좁아졌다. 휴대전화·PC·TV 등은 여전히 별도 제품으로 존재하지만 동일한 OS·사용자환경(UI)·콘텐츠를 공유하면서, 소비자들은 이 제품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우리는 애플의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시리즈에서 수평적 확대의 힘을 잘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변화는 휴대폰·PC·가전기기 등 모든 스마트 기기에서 강력한 입지를 가진 우리 기업들에 유리한 조건이다.
셋째, 스마트 기기의 고기능화 또는 스마트화이다. 휴대전화와 TV는 컴퓨터 기능이 나날이 강화되어 올해는 두뇌에 해당하는 코어가 4개인 쿼드코어 프로세서가 등장할 것이다. 메모리 용량도 3년 이내에 5~10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스마트폰에는 2GB D램이 탑재될 전망이다. 한편 태블릿 PC뿐 아니라, 가전기기·자동차에까지 통신기능의 탑재가 일반화되고 있다. 고기능화에 따라 부품 비용도 급증했다.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총 부품비용은 예전에 50달러 정도였지만, 이제 고급 스마트폰은 200달러, 태블릿 PC는 250달러를 상회한다. 고기능화의 진전으로 부품의 중요성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마지막 키워드는 고가 제품과 저가 제품의 병존이다. 애플이나 우리 기업의 고급 스마트폰은 700~800달러를 호가하는 반면에, 중국 화웨이가 내놓는 보급형 스마트폰은 200달러를 밑돈다. 국내 중소기업과 중국기업이 제조한 TV는 삼성·LG 동급 모델의 반값에 판매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중심으로 20만원대의 태블릿 PC도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격은 사양, 제조능력, SW 역량 및 디자인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지금은 OS·앱 스토어가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웹 플랫폼이 일반화됨에 따라 그 중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UI나 디자인 또한 차별화 여지가 축소될 전망이다. 흔히 제조능력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SW나 디자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 제품이 비싼 가격대에 팔리는 건 뛰어난 제조능력 덕분이다. 고기능화·소형화·저전력화 등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소중한 강점이다.

지금의 스마트 기기처럼 산업이 급변할 때면 새로운 경쟁력 요소를 찾아낸 기업이 시장을 주도한다. 하지만 지속적 혁신으로 새로운 경쟁력 요소를 발굴하지 못하면 후발 경쟁자의 추격을 허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품은 범용화하고 이익은 줄어들게 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