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8월 24일

 

애플의 아이패드가 장악한 태블릿PC 시장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출사표를 던졌다.
PC용 운영체제(OS)를 독점해 온 MS는 모바일 OS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 MS 운영체제를 탑재한 태블릿PC는 출시조차 된 바 없고,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또한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OS의 중심축이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PC 판매량이 3.5억대인데 비해 스마트폰 4.8억대, 태블릿PC 0.7억대에 달했고, 이 차이는 더 커질 전망이다.

구글(안드로이드)과 애플(iOS)이 양분한 모바일 OS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MS는 PC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적극 활용하고 나섰다.
우선 10월에 출시될 PC용 OS인 '윈도8'을 태블릿에도 탑재하기로 했다. 또한 연말에는 '윈도8'과의 호환성이 뛰어난 '윈도폰 8'을 내놓아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MS는 자체 개발한 태블릿PC인 '서피스'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MS가 PC를 제조한 적은 없다. 이번에도 델·삼성전자 등 4개 업체가 윈도 태블릿을 제조할 예정이다. MS는 다른 윈도 태블릿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해 '서피스'를 출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체의 시선은 곱지 않다. 윈도를 함께 판매하는 MS와 하드웨어에서만 이익을 내야 하는 제조업체는 가격을 둘러싼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MS가 제조업에 본격 진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크다.
만약 일부 보도대로 서피스를 원가에도 못 미치는 199달러에 판매한다면, 서피스는 큰 인기를 끌 것이다. 하지만 윈도·오피스 판매로 적자를 보전할 수 있는 MS와 달리, 다른 제조업체들이 큰 적자를 보면서 윈도 태블릿을 계속 만들 이유가 없다.
반면에 다른 제조업체도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서피스와 윈도·오피스의 가격을 책정한다면, 서피스 판매는 줄더라도 윈도 태블릿 전체 판매량은 크게 늘 것이다. PC 시장에서도 여러 제조업체가 다양한 종류의 PC를 만들어 시장 규모를 키움으로써 MS도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제조업체로 구성된 안드로이드와의 경쟁을 고려하여도, MS 혼자 제조와 OS를 맡는 것보다는 다양한 전문기업으로 구성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MS 이외에도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 플랫폼 업체는 많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했고, 아마존과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플랫폼 지배력을 제조업으로 확대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플랫폼을 보호하기 위해 제조업 진출을 고민한다.
그러나 플랫폼 지배력을 활용하여 제조업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대개 경쟁법에 위배된다. 다른 제조업체들과의 갈등으로 생태계가 파괴될 수도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를 바라보는 제조업체들의 우려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한편 페이스북이 자신의 플랫폼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제조하더라도, 페이스북 때문에 이를 구매할 소비자는 극소수다. 또 어느 기기에서건 소비자들이 모든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플랫폼 환경이 바뀌고 있다. 즉, 페이스북이 스마트폰 제조로 얻을 이득은 거의 없다. 도리어 제조 역량이 없는 페이스북에 스마트폰은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다.

변화가 많은 초기 시장에서는 애플처럼 직접 모든 걸 다 하는 통합형 기업이 유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산업이 성숙하면서 가치 사슬별로 경쟁력이 뛰어난 전문기업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은 제휴를 통해 최적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되면 통합형 기업의 경쟁력은 점점 뒤처지게 된다.
결국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고 다른 기업들과 협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점점 생존의 지혜로 떠오르고 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