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9월 21일

 

애플의 아이폰5가 출시됐다. 아이폰5가 판매기록을 경신할 것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만, 애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변화가 느껴진다. 즉, 과거엔 '경이'와 '공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이젠 "과연 언제까지 애플이 잘 나갈까?"로 바뀌는 듯하다.
애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요인은 다양하지만, 경영전략 관점에서 본다면 애플이 매킨토시 이래 고수해 온 '통합형' 구조가 애플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하드웨어에 자신만의 운영체제(OS)와 콘텐츠 장터(앱스토어)를 사용하는 통합형 기업이다. 경영이론에 따르면, 산업 초기에는 통합형 기업이 유리하다. 제품의 모든 구성요소를 직접 통제하면서 빠르게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이 안정화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각 구성요소들이 표준화되기 때문에 이들을 싼 가격에 모듈 형태로 제공하는 전문기업들이 등장한다. 또한, 성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소비자들은 뛰어난 성능보다는 값싼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일부 부품을 시장에서 조달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모듈형' 기업이 더 유리해진다.
스마트폰 산업이 바로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스마트폰 초기에는 통합형 기업인 노키아, 블랙베리의 RIM, 애플이 시장을 주도했다. 이 중에서도 애플이 단연 앞섰다. 애플은 오랜 통합형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애플은 매킨토시의 실패를 통해 콘텐츠와 앱(응용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앱스토어에 외부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1980년대부터 PC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OS를 잘 만들 역량이 있었다. 이 밖에도 자신만의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냈다. 이처럼 애플은 가치 사슬 대부분을 내재화했기 때문에 부품 및 조립업체 몫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익을 가져갔다.
그러나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제조업체가 스마트폰의 핵심 요소인 OS와 앱스토어를 외부에서 조달할 길이 생긴 것이다. 여러 제조업체들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안드로이드 OS와 앱스토어는 애플에 비해 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시장점유율 또한 모듈형 기업들이 50%를 크게 상회할 정도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모듈화는 더욱 진전되고, 통합형 기업의 강점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먼저 OS를 보면, 이미 모듈형과 통합형의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 점유율이 올라가면 경쟁을 통해 모듈화가 더욱 진전될 것이다. 머지않아 HTML5 기반의 웹 플랫폼이 일반화되면, OS와 상관없이 웹을 통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콘텐츠 장터도 더 모듈화될 전망이다.
통합형 구조는 각 구성요소가 밀접하게 결합하여 최고의 성능을 내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소수의 기종을 잘 만드는 데 적합하다. 그에 비해 OS·앱·부품이 모듈화되면, 다양한 종류의 기기를 지원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듈형 기업들은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만약 애플이 하나의 하이엔드 제품만을 고수하면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고, 하이엔드와 로우엔드 간의 품질 차이도 줄어들어 이익률 또한 하락할 것이다. 그렇다고 애플이 기종을 늘린다면 이는 곧 모듈화된 시장에서의 전면전을 의미하고, 이 싸움에서 모듈형 기업들을 이기긴 어렵다.

물론 애플은 강력한 브랜드와 혁신 역량을 바탕으로 상당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애플은 시장점유율과 이익률 둘 다, 아니면 적어도 하나는 상당히 줄어드는 상황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시장 환경이 바뀌면, 한 기업을 일으켰던 원동력이 도리어 큰 짐이 되는 법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