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10월 26일

 

요즘은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 스마트 기기가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포털·검색·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앱스토어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고 또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네트워크' 또한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스마트 기기에 비해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이 뒤떨어진다. 게다가 최근 이들 분야를 둘러싼 갈등이 유난히 많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생태계에 큰 환경 변화가 있었고, 기업들은 이 변화에 열심히 적응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범 제정자이자 갈등 조정자인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갈등 전선은 네트워크와 플랫폼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 데이터 트래픽 증가로 투자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무제한 정액 요금제와 통신시장 성숙으로 네트워크 사업자의 매출은 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로 돈을 벌었으니 투자비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이 이미 통신요금을 냈는데 무슨 소리냐"며 반발한다. 이런 반목 사이에서 갈등은 커진다. 보이스톡을 계기로 벌어진 무선인터넷 전화 허용 논란, KT의 삼성전자 스마트TV 접속 차단 등이 대표적 예이다.
해결 방안은 '통신망 중립성'과 인터넷 종량요금제 시행이다. 통신망 중립성은 내용·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트래픽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무선 인터넷 전화, 스마트 TV 등 모든 서비스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트래픽이 폭증하면 아무리 설비 투자를 많이 해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결국 트래픽을 유발하는 당사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과다한 트래픽을 줄이는 것이 정답이다. 이를 위해서는 극소수의 다량 이용자에 대해서는 종량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물론 대다수 이용자는 현재 수준 요금을 유지하거나 인하할 수 있으므로 국민 전체의 요금 부담이 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의 불공정 행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애플은 앱스토어상의 모든 거래에 자사의 결제 수단을 쓰도록 강요하면서 콘텐츠 사업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리고 NHN과 다음은 구글이 안드로이드에서 경쟁사들의 검색 프로그램을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다면서 구글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처럼 새롭게 부각되는 '플랫폼 중립성' 이슈들에 대해 규제 당국은 선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 표준과 관련된 규제 이슈가 있다. 과거에 정부는 특정 기술을 단일 표준으로 선택하여 육성함으로써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펴왔다. CDMA가 대표적 케이스로 꼽힌다. 그러나 지상파 DMB 방송이나 와이브로를 표준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추종자(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이다. 기술과 관련된 결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가 전체가 딱 하나의 기술에 '올인'하는 것은 이제 매우 위험해졌다.
따라서 정부는 '기술 중립적'입장을 취하는 것이 좋다. 즉, 표준은 민간 자율로 복수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경매방식으로 할당된 주파수는 그 사용권을 인정하여 기술 선택의 자율권을 줄 필요가 있다.

생태계는 말 그대로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이 공존의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이를 규범화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생태계는 자생 능력을 갖출 수 없다. 물론 탈법과 약육강식이 판치는 생태계가 되지 않도록 규범을 제시하고 감시해야 하는 정부 고유 영역은 분명히 남아 있다. 하지만 대전제는 그 결과가 생태계의 중립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