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이 또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올해 매출액 200조원, 영업이익 20조원은 무난히 넘어설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놀라운 실적을 마냥 즐기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실적에 드리운 그림자 때문이다.
그림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삼성이 계속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이다. 다른 하나는 이게 삼성만의 잔치일 뿐이라는 불만이다. 이 두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다.

애플은 하드웨어·OS·앱스토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스마트폰의 승자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IT산업은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생태계' 간의 경쟁 구도로 바뀌었다. 우리 완제품 기업들은 주로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데, 제조역량을 제외한 나머지가 너무 취약해서 셋방살이하는 형국이다. 머지않아 제조기술이 범용화되면 생태계를 주도하기는커녕, 완제품마저 중국 기업들에 빼앗길까 걱정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IT산업의 3대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의 불균형이다. 세계 1위 품목이 여럿인 HW에 비해, SW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2.2%에 불과하다.
둘째, 완제품과 부품·소재 산업 불균형도 심각하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1위 부품이 늘고 있지만, 메모리보다 세 배 큰 비메모리는 여전히 점유율이 5% 수준이다. IT 소재는 더욱 심각해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셋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도 문제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은 15.6%인데 비해, 작년 IT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3.4%로 생존을 걱정할 형편이다.
이런 3대 불균형은 중첩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중첩적 구조의 중심부에는 "HW 완성품을 제조하는 대기업"이, 그리고 주변부에는 "SW 및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결국은 IT산업 생태계의 문제이다. 지금은 생태계 간 경쟁 시대인 만큼,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하려면 완성품 기업들은 SW와 부품·소재 분야에 걸쳐 강한 우군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국내 생태계가 건강해져 3대 불균형이 해소돼야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글로벌 생태계 주도와 건강한 국내 생태계 조성은 맞물려 있는 과제이다.

지금까지도 SW, 부품·소재 산업을 지원하긴 했다. 이제는 생태계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태계 기업집단'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 '대기업 집단'은 소유구조를 기준으로 지정하며, 이들의 생태계 파괴 행위를 규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에 비해 '생태계 기업집단'은 소유구조와 관계없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즉, 완성품 대기업과 중소 납품기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 집단을 지정하고,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정부도 이들을 지원함으로써 건전한 생태계 구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납품단가 보장, 성과 공유, 공동 R&D 등을 약속하고, 정부는 R&D, 인력양성 지원 등을 통해 참여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돕게 된다.
이 제도는 시장에서의 자발적 협약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대기업 집단 규제정책과 차이가 있다. 또한 재정지원은 마중물 정도로 그친다는 점에서 전통적 산업진흥 정책과 다르다. 그리고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협력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성과공유제와도 다르다.

IT분야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한 게 정부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 '생로병사'와 '적자생존', 이것이 생태계의 큰 이치다. 물론 어렸을 땐 잘 먹여야 하고, 넘어지면 일으켜줘야 한다. 하지만 정책의 초점은 '연명(延命)'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에 맞춰야 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