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1월 15일

 

"자동차는 이제 가솔린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움직인다." 2012년 1월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디터 제체 회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한 말이다. BMW의 SW 엔지니어 비중이 이미 50%에 이를 정도이니, 그는 먼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메이저 업체들의 자동차 자체 성능은 점점 비슷해져서 이제는 SW와 IT부품이 자동차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가전제품·선박·항공기·로봇 등에 컴퓨팅과 통신 기능이 결합하면서 스마트 기기(器機)로 거듭나고 있다.

서비스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IT가 서비스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IT의 활용이 크게 늘고 있다. 그 범위 또한 금융·유통·의료·교육·치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이처럼 IT를 활용하여 다른 산업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을 이루어내는 것을 'IT융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IT를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IT가 수요 산업의 일부로 녹아들어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즉 '융합(convergence)'을 넘어서 '통합(integration)'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IT통합'에 이르기까지는 장애 요인이 산적해 있다. 우선 SW와 핵심 부품의 기술력이 취약하다. 그리고 수요 산업과 IT산업 간의 몰이해와 갈등으로 가시적인 결과를 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 산업은 무형의 재화라는 특성상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 및 초기 수요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칸막이식 법과 제도도 IT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원격진료를 금지하는 의료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산업 진화의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시장 실패' 상황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선적인 과제는 SW와 IT부품 기술개발이다. 부품도 겉은 반도체이지만 속은 SW 덩어리이니 결국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 SW와 부품 중소기업의 R&D를 지원하고, 수요 기업과의 협력체계를 갖추어 주는 것이 IT통합의 지름길이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공공수요 창출과 법·제도 개선이 핵심이다. 초기 공공수요에 힘입어 수익 모델이 만들어지면 민간 수요 및 투자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음 정부 초기에 교육·의료·치안과 같은 생활 밀착형, 정부 주도형 서비스에서 먼저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개발, 공공수요 창출, 법·제도 개선은 패키지로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잘 조율된 정책 방안과 추진 체계가 필수적이다.
IT통합이 잘 되려면 IT산업도 잘 되어야 한다. 그런데 IT산업 역시 SW·부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우리의 하드웨어 경쟁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IT통합과 다르지 않다. 다만 IT산업은 시장의 협력 구도가 정착되어 간다는 점이 아직은 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는 IT통합과 차이가 있다.

다음 정부 경제 발전의 키워드는 '창조 경제'이다. 창조 경제의 성공은 소프트웨어·IT부품이 스마트 기기와 스마트 서비스로 진화하는 다른 산업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