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4월 19일

 

 

조신·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원장
조신·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원장

 

 

 

"앞으로 음성 전화는 공짜가 될 것이다."
2000년에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이 한 말이다. 유·무선 통신망이 인터넷망으로 바뀌면서 데이터 트래픽이 급격하게 늘게 되면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게 되고 데이터양이 얼마 안 되는 음성 통화는 무료로 제공하게 되리라고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다.
이제 공짜 음성 전화 바람이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에도 옮아 붙었다. 자사(自社) 가입자 간 통화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기로 한 SK텔레콤과 KT에 LG유플러스는 일정 요금제 이상의 고객들에게 모든 무선 통화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기로 하였다. 음성·문자·동영상 서비스를 데이터 요금제로 묶는 것은 인터넷망으로의 통합이라는 추세에 잘 맞고, 요금 경쟁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기술 진화 추이에도 합치되고 경쟁 친화적인 변화가 일어나려면 규제 정책의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지속적인 요금 경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일회적이고 돌발적인 요금 경쟁이 붙었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LTE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다. 올 초에 세계적 추세와는 다르게 LTE에서 무제한 요금제를 앞다투어 도입하더니 슬그머니 발을 빼고는 다시 보조금 경쟁으로 돌아섰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정부 규제를 받는 SK텔레콤의 요금이 결정되면 다른 사업자들은 대개 요금 구조를 똑같이 설계하고 요금 수준만 조금 낮게 책정한다. 이처럼 정부의 요금 규제가 기준점을 설정해 주는 한 요금 경쟁이 일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정부는 요금 규제를 철폐하고 사업자 간 담합을 엄격하게 감시함으로써 요금 경쟁을 장려해야 한다.
둘째, 사업자 간 도매 요금인 접속료 제도의 개편도 필요하다. 현재는 타사 가입자와의 음성 통화에 대해서 접속료를 주고받는다. 따라서 LG유플러스와 같은 무제한 통화 요금제는 가입자로부터는 요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업자에게는 접속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일원화된 데이터 요금제와 합치되는 접속료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실효성이 없는 단말기 보조금 규제도 재검토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불법 보조금이 난무하는 것은 보조금 규제 때문이다. 보조금 전쟁이 벌어지면 정부 규제가 따라온다는 것을 아는 사업자들은 치고 빠지기식으로 보조금을 사용하고는 서로 그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 패턴을 보여 왔다. 그러나 보조금 규제가 없어지면 후발 사업자들은 정부가 싸움을 말려 주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과거처럼 쉽게 싸움을 걸기 어렵다. 선발 사업자 또한 규제 강화를 자초할 줄 뻔히 알면서 시장점유율 조금 올리자고 보조금을 더 쓰지는 않을 것이다. 보조금이 줄어들어야 요금 경쟁이 살아날 여지가 생긴다.
넷째, 데이터 요금제로의 단일화는 음성, 동영상 등 모든 데이터가 기술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이는 곧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의 방향성과도 같다. 따라서 이용자는 데이터 요금만 내면 스마트 TV, 무선 인터넷 전화 등 모든 서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망 중립성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폭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통신망 투자비용을 조달할 정도의 요금수준 책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IT산업이 발전한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제 네트워크 진화는 그에 걸맞은 수익 모델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요금, 보조금, 접속료, 망 중립성 등 거의 모든 규제 제도의 종합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이것이 IT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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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