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7월 5일

 

 

조신·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원장
조신·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원장 

 

 

 

창조경제 실현이 주된 국정 과제로 등장하면서 콘텐츠 산업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한류를 활용하여 콘텐츠 글로벌화에 성공하면 엄청난 규모의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이 강해지면 제조 역량에만 의존하는 우리나라 디바이스 경쟁력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콘텐츠 산업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육성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종종 콘텐츠 산업의 특성이나 ICT 산업 내의 다른 산업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당위론적인 주장만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든다.

콘텐츠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1년에 약 1.1조달러로 휴대폰·컴퓨터·TV·가전기기를 모두 합친 액수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콘텐츠 산업은 언어, 문화, 규제 등의 이유로 로컬 산업의 특성을 띤다. 예컨대 가장 큰 시장인 방송은 외국 진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출판 또한 같은 언어권 이외의 국가로 판매되는 분량은 미미하다. 글로벌 진출 관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분야인 영화,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은 전체 콘텐츠 시장의 17%도 안 된다. 이처럼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해 우리가 접근 가능한 시장 규모는 작다.
그나마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대부분은 미국 콘텐츠가 장악하고 있다. 영화 산업은 어느 나라건 자국 영화와 미국 영화의 점유율 합계가 90%를 훨씬 넘는다. 즉, 자국 영화를 제외한 나머지 시장은 할리우드가 독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가 발 디딜 틈이 없다. 할리우드는 매년 200억달러 정도를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데, 미국 영화가 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작년 휴대폰 수출액은 800억달러를 넘는다. 이쯤에서 우리 영화가 글로벌 시장의 몇 %를 가져올 수 있을지, 매출액은 얼마나 될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은 2011년에 약 43억달러인데, 게임이 50% 이상이고 한류의 주역으로 여겨지는 방송, 음악, 영화가 5억달러 수준이다. 동남아 TV 채널을 휩쓸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 수출액은 2.5억달러에 불과하다.

이제 콘텐츠와 디바이스 산업 간의 시너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 제조업체들의 디바이스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디바이스가 잘 팔리려면 세계 각국의 모든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실 콘텐츠에 대한 접근은 대개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디바이스 업체가 별로 관여할 영역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이 강해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올라가더라도 우리 기업들의 디바이스 경쟁력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유사한 관점에서 우리 제조업체가 콘텐츠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 소니가 세계적인 음악 및 영화사를 인수했지만 워크맨·휴대폰·TV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좋은 콘텐츠 몇 개를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서 디바이스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자칫 좋은 콘텐츠를 다른 디바이스에 팔지 못함에 따라 생기는 손해가 더 크기 십상이다.

콘텐츠 산업은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 이외의 이유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우리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은 국가 브랜드 향상을 통해 다른 산업의 글로벌화에 아주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잘못된 전략, 무리한 정책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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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