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8월 23일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혁신은 기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이제 창의적 융합형 인재가 혁신을 통해 세상을 주도하리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듯하다. 하지만 창의적 융합형 인재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이런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답은 부족한 편이다.

물론 모든 학문과 지식은 융합의 대상이 되겠지만, 최근의 사회 변화를 감안해 볼 때 다음의 세 가지를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는 IT를 중심으로 공학 내에서의 융합적 지식이 필요하다. 모든 기술이 IT와 융합하는 추세에 맞추어 IT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지만, IT만 알아서도 안 된다. 즉, 자동차용 반도체나 SW를 만드는 데 자동차의 운동 원리를 몰라서는 곤란한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원에서는 학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 통신네트워크를 전공한 지도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엔 과연 둘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막막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분자를 이용한 인체 내 통신 시스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최고 수준의 국제학술지에 게재되었고 국내외의 큰 상도 받았다. 사실 현재의 공학교육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어서, 벽을 허물고 융합형 연구와 교육을 촉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는 디자인 능력이다. 물론 디자인은 흔히 생각하는 외관만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강조하듯이 오늘날 디자인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관한 것, 곧 제품에 관한 핵심 철학을 뜻한다. 따라서 어떤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욕구를 만족시킬 기능들을 설계에 담은 후,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외관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디자인 역량과 공학 지식,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성에 대한 판단 능력이다. 흔히 과학자들은 기술적인 가능성에 매료된 나머지, 이를 상용화했을 때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아주 뛰어난 제품들이 확실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사라진 경우를 숱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혁신적인 제품의 완성을 위해서는 경제·경영 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면 다빈치나 잡스와 같은 융합형 천재들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천재가 교육만을 통해서 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나 실리콘 밸리와 같은 기반이 있었기에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다빈치와 잡스가 이들을 대표하는 가장 걸출한 인물로 부각됐다.
우리도 융합형 인재를 양성할 토양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물론 모든 학문이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넘나들며 함께 교육하고 연구하는 환경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학은 이 같은 변화의 필요성에 상대적으로 늦게 반응하는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으로 다양한 전공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함께 연구하고 교육하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정부 지원을 받은 몇몇 대학과 기업들이 이 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교육 현장에서 융합형 교육을 확대해 나갈 때, 창조경제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