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11월 22일

 

2012년 4월 페이스북은 사진 및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에 인수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때까지 인스타그램의 매출액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IT 산업은 M&A 규모와 빈도, 특성 면에서 다른 산업과 큰 차이가 난다.
시스코는 M&A를 잘 수행하는 대표적인 기업인데 지금까지 168개 기업을 인수했다. 한때 피인수 기업의 매출이 전체 매출액의 50%에 달하기도 했다. 구글 또한 10여년간 유튜브, 모토롤라 등 130여개 기업을 인수했다. M&A에 소극적이었던 애플도 2013 회계연도에 15개 기업을 인수하여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왜 IT 산업에서는 이처럼 많은 인수·합병이 이뤄지는가? 우리나라 IT 기업에는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기업 인수가 필요한 첫째 이유는 혼자 힘으로는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IT 자체의 기술 혁신이 빠르기도 하거니와 IT와 타산업의 융합으로 필요한 기술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그러다 보니 연구·개발(R&D)보다 '연결과 개발'(C&D·Connect & Development)이 더 중요해졌다. 즉,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기보다는 검증된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기술 확보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소규모 기업 인수를 통해 자사 제품에 필요한 기술을 채워나가고 있다.
둘째, 신생 기업은 '고객 가치 창출(value creation)'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수익 창출(value capture)'로 연결시킬 역량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피인수 기업의 가치를 자신의 '플랫폼'에 결합함으로써 큰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의 사진 공유 기능을 자신의 11억 가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큰 매출 신장을 기대한 것이다.
셋째, 기업 인수는 확실한 성장 및 사업 다각화 전략이 될 수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또 다른 산업과 융합하고 있는 IT 산업에서는 성장과 다각화를 이루지 못하면 경쟁력 상실로 연결될 위험성이 크다.

우리 IT 기업들에도 기업 인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벤처기업의 기술력을 자신의 완제품에 결합함으로써 부가가치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또 인접 분야의 제품 기업을 인수하여 구매 및 생산에서의 규모의 경제, 판매망 및 고객 기반 공유 등 시너지를 누릴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에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미국의 가전업체 제니스(Zenith)와 PC 제조업체 AST Research를 인수했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인수 대상도 문제였지만 외국 기업을 경영할 역량 또한 부족했다. 게다가 직원들이 개도국의 '이류' 회사에 인수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속속 떠났다. 그 이후 이들은 기업 인수에 소극적이 되었고, 삼성전자는 지난 3년 동안 14개 기업을 인수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경영 능력과 브랜드 파워를 크게 키웠기 때문에 M&A 역량을 충분히 갖추었다. 시스코와 구글, 페이스북 등이 활발한 M&A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듯이 이제 국내 벤처 생태계에서 삼성과 LG 등의 역할도 필요하다.

이제 M&A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한 번의 실패나 성공으로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다. M&A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시행해야 하며 성공 여부는 개별 기업이 아닌 인수한 기업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 수 증가를 문어발식 확장으로만 보는 부정적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기업 인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