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년 2월 14일

 

구글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모토로라를 마침내 레노버에 매각했다. 재작년 말 셋톱박스 사업부를 매각한 데 이어 이번에는 특허만 남기고 휴대폰 사업부마저 팔았다. 인수 금액이 125억달러인 데 비해 두 사업부의 매각 대금은 53억달러에 불과하지만, 팔지 않은 특허를 감안하면 금전적 손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업 인수 실적 한두 건을 놓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기업 전략 관점에서 이 인수는 당초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의사 결정 구조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금도 구글이 같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지배력을 제조업으로까지 확대하기 위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그러나 모토로라를 키우기 위해 안드로이드를 적극 활용하면 다른 제조업체들과 갈등이 커지고, 그렇다고 모토로라를 방치하면 이미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인수합병은 으레 여러 가지 시너지 가능성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안드로이드와 휴대폰 사업은 이처럼 '역(逆)시너지'를 내는 상황이고, 구글 TV와 시너지를 기대했던 셋톱박스 사업 역시 일찌감치 매각으로 가닥이 잡혀 버렸다. 큰 기대를 모았던 모토로라 특허마저도 애플과 벌인 특허전쟁에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별 쓸모가 없음이 드러났다. 플랫폼 기업 구글이 섣부른 제조업 진출을 정당화하다 보니 이런저런 목표와 희망을 끌어들였지만, 역시 실행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유튜브 인수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구글 초창기인 2006년 16.5억달러라는 거금을 치른 유튜브 인수도 당시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유튜브가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창출해낸 고객가치(value creation)는 구글 검색 등 다른 플랫폼 역량과 잘 결합하여 수익창출(value capture)로 이어지고 있다.

 

구글은 스마트 홈과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보이고 있다. 2011년 '안드로이드@홈'을 발표할 때만 해도 구글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홈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오픈 액세서리’ 또한 제조업체들과 힘을 합쳐 개방형 하드웨어 스토어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별다른 후속 작업이 이어지지 못하다가, 올 초에 네스트 랩스(Nest Labs)를 32억달러에 인수함으로써 사물인터넷 제조 영역에 뛰어들었다. 네스트는 멋진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온도조절장치를 만드는 신생 업체이다.
스마트 홈과 사물인터넷은 궁극적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기기가 아주 싼값에 스마트화돼야 하고 스마트 서비스 또한 대부분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온도조절장치도 모든 곳에 설치되기는 하겠지만, 값싼 범용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므로 디자인과 기능이 차별적 경쟁력으로 작용하여 큰돈을 벌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네스트가 구글의 관련 플랫폼 강화에 기여할 것 같지도 않다.

조직 관점에서 보면, 구글은 더 이상 기업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아니라, 소위 전략가들이 지배하는 대기업이 된 듯한 느낌이다. 창업자이자 CEO인 래리 페이지가 끊임없이 제조업 진출을 원했다는 사실로 짐작해 보면, 구글에 제조업은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오너의 장난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난감이 지나치게 비싸면 그건 의사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