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7월 20일

 

지난 9일 갤럭시S3 LTE 버전이 국내에 출시됐다. 세간의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이날은 우리나라 IT산업에서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갤럭시S3에 삼성이 자체 개발한 LTE 모뎀이 처음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모뎀은 음성과 데이터를 무선으로 송수신하는 데 필요한 핵심 반도체 칩이다. 삼성이 자체 모뎀을 최고급 스마트폰에 탑재하여 '까다로운' 국내 시장에 출시한 건 성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는 CDMA 상용화 이후 국내 모뎀시장을 독점해온 퀄컴에 대한 삼성의 '선전포고'이자 '독립선언'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원천 기술을 보유한 퀄컴과 기술 제휴를 통해 1996년 CDM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휴대폰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 업체에 모뎀 칩을 독점 공급하면서 엄청난 로열티를 챙긴 퀄컴이었다. 퀄컴 매출액의 3분의 1 정도가 한국에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2011년 매출액이 약 17조원이므로 5조원 이상의 모뎀 매출 및 로열티 수입을 올린 셈이다.
상황이 이 정도이니 CDMA 모뎀 상용화는 우리 IT업계의 숙원이었다. 우리 기업들은 실제로 몇 차례 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소량이지만 휴대폰에 탑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족한 기술적 완성도에 더해 퀄컴의 마케팅 공세에 눌려 본격적 상용화에는 실패하였다. 퀄컴은 자신의 모뎀 칩을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에는 높은 로열티를 징수하였다. 또 대부분의 칩을 자신으로부터 구매하는 조건으로 많은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이런 차별을 뚫고 다른 모뎀을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퀄컴의 이 같은 반경쟁적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에 2732억원이라는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했다.

변화의 조짐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났다. 우선 우리 기업들이 꾸준히 모뎀 기술 개발을 해온 덕분에 CDMA 때와는 달리 LTE에서는 삼성·LG 등의 특허 경쟁력이 퀄컴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스마트폰 이전에는 모뎀 칩이 휴대폰의 두뇌인 프로세서 기능을 겸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두뇌 기능이 응용 프로세서(AP)로 분리되었다. 삼성은 애플에 AP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형성된 AP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퀄컴의 무리수가 나왔다. 전 세계 모뎀의 45%를 공급하는 퀄컴은 LTE 모뎀과 AP를 원 칩으로 통합함으로써 AP시장으로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모뎀 상용화는 고사하고 AP시장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또한 퀄컴은 아직 두뇌가 두 개인 듀얼코어 AP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미 쿼드코어 AP를 상용화한 삼성은 이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할 유인(誘因)이 있었다.
직접적인 기회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왔다. 퀄컴 칩을 주문 생산하는 대만의 TSMC가 생산 용량과 수율 문제로 칩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자가 주춤하는 사이 삼성이 자신의 모뎀과 AP로 시장을 공략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전망도 괜찮다. 우선 AP의 경쟁력이 뛰어나고 LTE 모뎀에 대한 평가도 좋다. 또한 뛰어난 칩 제조 능력 덕분에 납기·원가·품질 면에서 퀄컴보다 유리하다. 삼성은 모뎀·AP에 D램까지도 원 칩으로 통합할 수 있는데, 이는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이다.
그러나 삼성 모뎀과 AP를 경쟁자인 다른 휴대폰업체가 사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따라서 퀄컴처럼 칩 전문업체가 출현하지 않으면 삼성의 성과가 전체 IT산업의 성과로 연결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는 중소 칩 전문업체가 휴대폰업체와 공동으로 모뎀·AP 등 모바일용 칩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휴대폰과 부품업체가 모두 경쟁력을 갖추고 우리나라가 모바일 기기와 반도체산업에서 진정한 강자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