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5월 25일

 

IT 업계에 한동안 클라우드 컴퓨팅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이제는 빅 데이터로 그 바람이 옮겨 붙었다.

빅 데이터는 용량(Volume)뿐 아니라, 속도(Velocity), 다양성(Variety)에서도 차이가 있다. 즉,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센서·CCTV 등을 통해 수집되는 정보는 실시간 정보이고,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인 비정형 데이터이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빅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스토리지·컴퓨팅 파워·분석 소프트웨어(SW)·인공지능 기술들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IBM·HP·EMC·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빅 데이터 기술을 구현하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들은 하드웨어(HW), SW, 서비스 등 빅 데이터 전 분야에 걸쳐 2015년까지 약 1200억달러(140조원)나 투자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빅 데이터를 활용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거나, 이를 활용하여 경영활동을 효율화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실시간 검색, 인공지능 서비스 시리(Siri), 교통정보를 반영한 내비게이션 등이다.
한편 경영 효율화 관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빅 데이터를 활용한 개인화된 마케팅이다. 이 밖에도 빅 데이터를 활용하면 재고관리, 소비자 불만관리를 통한 효율성 제고, 의사결정 능력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빅 데이터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빅 데이터는 분명 큰 변화이며 기업경영에 깊숙이 녹아들 것이다. 또 빅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기업들도 있을 테고, 기업 간 편차는 있지만 효율성도 제고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 증가나 수익성 향상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그럼 왜 이 같은 현상이 생기는 걸까?
첫째, IT투자가 과연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는지는 오래전부터 제기된 이슈이자 의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솔로우는 "어디서나 컴퓨터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생산성 통계에서는 볼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를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고 명명했다. IT 투자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려면 프로세스·조직·인적 쇄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고도의 실행력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빅 데이터는 그 규모, 비정형성, 속도 때문에 더 어렵다. 그래서 가트너는 포천(Fortune) 500대 기업 중에서 85% 이상이 빅 데이터 활용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했다. 막상 빅 데이터를 경쟁력 강화에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은 별로 없다는 냉정한 판단이다.
둘째, 기업들이 빅 데이터에 많은 비용을 쓰지만 그만큼 경쟁력 차이는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소모적인 '군비경쟁'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검색에 빅 데이터를 가미하고 시리 같은 인공지능을 붙이면 제품이 좋아진다. 그러나 경쟁사들도 곧 따라 할 것이기 때문에 차별화는 어렵다. 따라서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도 못한다. 인터넷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재고관리 등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빅 데이터 시스템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겠지만, 경쟁기업들도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므로 수익성 향상으로 연결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경계할 것은 빅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에 대한 지나친 기대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고객 그룹별로 차별화된 마케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화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마케팅 성과가 이에 비례하여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력·취향·위치 정보 등 개인 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 여론에 노출될 위험이 없지 않다.

지금까지 빅 데이터의 긍정적인 측면이 강조돼 왔다. 그러나 빅 데이터는 패러다임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한 소수 기업에만 혜택을 몰아 줄 것이다. 인터넷이 사회 전반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정작 인터넷으로 돈을 번 기업들은 극소수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