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ESG 열풍이 꺽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화석연료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기업들의 ‘ESG 워싱(ESG washing)’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ESG는 한때 유행이었을 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힘을 받는 듯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ESG가 이윤 추구라는 자본주의 근본원리에 역행한다는 문제 제기가 밑에 깔려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투자와 경영의 새로운 지침으로 자리잡는 듯했던 ESG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하나씩 차분히 짚어 보도록 하자.

 

곳곳에서 불어오는 ESG 역풍

 

일반인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만한 역풍은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기가 되었다.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석탄화력 발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ESG 투자 흐름을 충실하게 받아들인 투자자들은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거나 줄여나가는 추세였는데, 화석연료 가격이 오르면서 도리어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은 투자자가 대박이 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책 당국자 입장에서도 친환경 에너지 전환보다는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이 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이러니, 기업 경영이나 투자 관점에서 친환경 투자, 탄소중립 달성은 사치스러운 이야기로 들릴 법도 하다.

또 다른 ESG 역풍은 ESG 열풍에 편승하려는 기업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기업들이 ESG 경영을 기치로 내세우기 시작했지만,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초조함만 앞섰지 막상 전략과 실행 계획은 부실한 형편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ESG 경영을 잘하고 있다.’는 식의 과장된 홍보에 매달리기 십상이다. ESG 투자가 늘면서 금융상품에서도 ESG 워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ESG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산운용사들은 기존 펀드에 ESG 요소를 얇게 덧칠해서 ESG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어떤 금융상품을 ESG 상품이라고 부를 것인지 명확한 정의나 지침이 없다 보니 이처럼 ESG가 새로운 마케팅 용어로 활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ESG 워싱으로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에 손해를 입힌 기업은 단지 평판에 손상을 입는 정도가 아니라 주가 폭락이나 소송 등으로 말미암아 큰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 도이치은행의 자회사인 DWS는 작년 6ESG와 관련한 투자사기 혐의로 압수 수색까지 당했고, 결국 최고경영자가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독일 검찰의 압수 수색에 따르면, DWS 운용의 투자 설명서와는 달리 소규모 투자 자산에만 ESG 기준이 고려되었고, 상당한 규모의 투자 자산에는 ESG 기준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ESG 워싱은 ESG가 그저 말의 성찬일 뿐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킴으로써 ESG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ESG는 사기(scam). ESG는 가짜 사회정의 전사들의 무기가 되어버렸다.” 작년 5S&P 500 ESG 지수에서 테슬라가 빠지자 이에 분노한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날린 트위터 문구다. 물론 이 트윗은 머스크의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이긴 하지만 ESG에 대한 보수 우파들의 일반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최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모름지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자본주의 시각에서 볼 때, 기업이 이윤 추구 이외에 환경·사회 문제 개선을 위해 자원을 쓰고 투자자가 이를 지원하는 ESG 체제는 정부와 정치적 프로세스가 시장경제를 대체하는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보수세력은 이들이 겉으로는 자본주의의 을 쓰고 있는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라고 비꼬고 있다. , 사회나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깨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신경을 쓰는 가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 정치 세력은 ESG 추세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ESG에 대한 반발은 별로 없었으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환경 관련 정보 공개 규제안이 발표되자 공화당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19개 주의 공화당 출신 검찰총장들은 블랙록이 화석연료 기업들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론 데산티스 플로리다주 지사는 올해 플로리다주의 투자 결정에서 ESG 요인을 배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하고 있다. 또 텍사스주는 ESG 대표주자인 블랙록에게 주의 공적연금 운용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꺽이지 않을 ESG

 

이처럼 악화된 환경을 반영하여 ESG 투자가 주춤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작년의 ESG 신규 투자액이 전년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순증을 기록하였다. 모닝스타(Morningstar) 자료에 따르면 작년 9월 말까지 ESG 투자액이 1,390억 달러 신규 유입되었는데 비해, 같은 기간에 전체 자본시장 신규 유입액은 (-)6,430억 달러로 순감을 기록하고 있다. ESG 투자의 상대적 수익률이 더 좋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신규 투자가 증가한 것은, ESG 투자자들이 단기 성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장기 수익을 중시하는 공적연금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 ESG 투자자의 주축을 이루는 MZ세대는 젊고 긴 투자 주기를 가지고 있다.

한편 ESG 투자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도 촘촘히 마련되고 있다. 이것은 투자자들의 이윤추구 동기만으로는 자본주의가 완성되지 못하고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사회적 노력이 함께 했기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ESG 투자 활성화는 정확한 정보에서 시작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업이 어떤 분야에서 ESG 경영을 잘 하는지 알아야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작년에 ESG 정보공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한 바 있으며 조만간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올해 하반기에 기후변화 관련 공시 규정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탄소감축 이외에 공급망 내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국제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EU2024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기업 공급망 실사 지침(Directive on Corporate Due Diligence and Corporate Accountability)’이다. 이 지침은 기업이 협력업체들의 인권 현황과 환경 오염 등을 자체 조사해 문제가 있을 경우 해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지침은 EU 기업뿐 아니라 EU 지역에 수출하는 기업에게도 적용될 예정이어서, 해당 기업은 EU에 본사를 두지 않더라도 본사와 자회사, 계열사 및 공급망에 있는 모든 기업에 대해 인권 실사를 해야 한다. 이 지침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ESG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계기가 될 듯

 

최근 상황은 기업들과 투자자에게 '지속 가능성'보다 당장에 '생존 가능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곧 ESG 체제의 지속 가능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과 회의론의 등장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ESG 발전에 도리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장기적 수익률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될 것이며, 정부와 국제기구들 또한 비판적 견해와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한 단계 진일보한 제도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ESG가 후퇴, 조정 국면을 겪으면서 도리어 주류로 자리잡고 자본주의를 혁신하는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