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싸이월드 게시판에 2007년 8월 17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1. 2년 전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지요. (게시판 밑의 글 "Stay hungry, Stay foolish 참조)  이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미국 대학에서는 졸업식장에 유명인사를 초청해서 축사를 듣는 전통이 있습니다.  올 6월에 있었던 하버드 대학의 졸업식에는 이 대학의 중퇴자인 빌 게이츠가 초청되어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연설을 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흥미롭게 읽은 터라 빌 게이츠의 연설은 어떠할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2. 그런데 공교롭게 얼마 전 어느 주간지에 잡스와 게이츠의 프리젠테이션 스타일을 비교한 글이 실려서 그 내용을 먼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게이츠는 '07년 CES 발표문을, 잡스는 '07 MacWorld Conference & Expo 발표문을 비교하였다는군요.) 이에 따르면 문장당 단어 수 면에서 볼 때 스티브 잡스는 평균 10.5단어, 빌 게이츠는 21.6단어를 사용하여 게이츠가 압도적으로 "만연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단어를 구사하느냐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문장의 난이도, 3음절 이상 단어 비율 등에서 게이츠는 잡스에 비해 2-3배 정도 그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종합적 이해도 면에서 잡스는 5.5, 게이츠는 10.7을 받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일반적인 만화의 이해도 척도가 6, "타임"지의 이해도 척도가 11 정도라니, 잡스는 만화를 읽어 주었는데, 게이츠는 타임지를 들고 읽은 셈이지요.

3. 게이츠의 하버드 연설문도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문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물론 외국인의 연설 첫머리가 대체로 그렇듯이 "심각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게이츠라도 모두엔 유머러스한 말들로 시작합니다.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 왔습니다.  '아버지, 나는 언젠간 학교에 돌아갈 것이고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 늘 말했었잖아요.'"  이어서 그는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저는 이런 시의 적절한 영예에 대해 학교 측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내년에는 직업을 바꿀 예정인데, 이제 제 이력서에도 대학졸업 학력을 넣을 수 있다니 정말 잘 된 일이네요."

4. 이렇게 유머로 시작한 다음에 몇 가지 재미있는 말을 더한 다음에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라는 아주 심각한 이야기로 바로 넘어갑니다.  그의 문제제기는 사회 불평등이 이처럼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자본주의가 유지 확산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드 졸업생처럼 우수한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career 개발에만 모든 것을 걸지 말고, 전세계적인 불평등 해소에도 기여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 당신들(하버드 졸업생)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이 무엇을 기여했는지 앞으로 30년 후에 되돌아보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 짓는 그의 연설은 잡스의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말이 공허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불평등 해소에 거의 모든 재산을 기부했다는 사실 때문이겠지요.

5. 그의 연설문을 첨부합니다. 연설문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타임"지 보다는 더 구어적이고 쉽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대학 중퇴생임에도 불구하고 잡스의 글 보다는 훨씬 어렵고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해지며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중퇴생이라도 하버드 중퇴생이 Reed College보다는 사변적인 모양입니다... ^^)  그리고 뭔가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프리젠테이션의 문제만이라기 보다는, 잡스의 연설이 자신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비해, 게이츠는 보다 관념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뛰어난 메시지를 가진 또 하나의 명연설문을 들을 기회를 만들어준 미국 대학의 멋진 전통을 부러워 하면서, 이 글을 함께 즐겨보시지요.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