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3월 22일

 

IT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 산업은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적지 않은 재원(財源)을 투입하고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보았지만, 하드웨어 완성품이나 부품 산업이 쑥쑥 성장한 것에 비하면 소프트웨어는 늘 제자리 걸음 수준이어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돌이켜 보면 정부가 소프트웨어를 다소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지원 방법 또한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원하는 방법은 하드웨어와는 많이 달라야 한다.

먼저 기술 개발을 생각해 보자. 하드웨어 완성품이나 부품은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원 대상을 고르기가 용이하다. 개발 성공 여부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개발에 성공한 하드웨어 부품은 완제품 기업이 구매해 줄 것이다. 우리 완제품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발에만 성공하면 판로도 저절로 열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소프트웨어는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지원해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앱스토어에 올라온 수십만 개의 애플리케이션들이 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가 워낙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은커녕 국내 시장에서도 판로 개척이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어떤 소프트웨어를, 누구를 시켜서 개발하도록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정부나 일회성 평가위원회에서 지원 프로젝트와 기업을 정할 것이 아니라, 엔젤과 벤처 캐피탈리스트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 좋다. 공공 펀드의 경우 보수적인 감사 및 운용 관행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발굴하여 과감하게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일정 금액의 펀드를 구성하여 전문성 있는 외국계 벤처캐피탈에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맡겨보자. 그러면 이 벤처캐피탈은 지원 기업 선정 및 육성, 글로벌 시장에서의 상품 출시, 나스닥 상장 등 전체 프로세스 관리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기업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려면, 양질의 소프트웨어 인력이 훨씬 더 많이 양성되어야 한다. 쏟아 붓기 식, 나누어 먹기 식으로 인력 양성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수한 인력을 키워낼 수 있는 대학이 기업체와 밀접하게 일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다는 전제하에서, 선택적이고 파격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인력 양성에서는 좀 더 장기적인 비전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프로그래밍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이 모든 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가르치자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창의성이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도, 스티브 잡스나 저커버그 같은 인물이 혼자 힘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창의성과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조금 늦긴 했지만 많이 늦진 않았다. 소프트웨어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정책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해 간다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