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2021년 6월 11일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기업 전문 매체인 이로운넷에 정기 기고를 하게 되었다.

이로운넷에서 편집을 맡은 분들과 오래 전부터 맺은 인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긴 하나,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윤도 올리고 사회적 가치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이 필수적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조금 풀어서 써보았다.

특히 파괴적 혁신의 주체가 되는 신생 스타트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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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거의 항상 트레이드오프(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경제관계, trade-off)를 고민한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고 설비투자를 하면 비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도 이윤도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경영자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건 당연하다.

하지만 경영 현장에서 트레이드오프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아래 그림은 기업이 이윤과 이해관계자 가치라는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조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곡선 모양의 생산가능곡선(Production Possibility Frontier)은 기업의 능력과 여건을 감안할 때 그 기업이 달성할 수 있는 두 목표 간의 다양한 조합을 연결한 것이다. 기업은 현재 달성할 수 있는 생산가능곡선 상에서 A, B를 포함하여 곡선 위의 한 점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점을 실제로 선택할 것이냐는 기업의 전략에 달렸다. 생산가능곡선은 두 목표 간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를테면 A를 선택하면 이윤은 높은 편이지만 이해관계자 가치 달성이 미흡하고, B는 그 반대다.

그런데 만약 어떤 기업에서 이런 트레이드오프가 안 느껴진다면 좋은 일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기업은 생산가능곡선 안쪽, 예컨대 C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 A나 B로 이동할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 기업을 비효율적으로 경영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기업이라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두 가지 목표 간에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한다.

 

 

기업의 목표, 전략, 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가 잘 짜여있고 서로 연계되어 있다면, 중간 관리자들이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는 목표들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 의사결정 하는데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즉,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30% 올리면 이윤은 얼마나 줄어드는지, 임금 인상과 납품 단가 인상 중에서 어떤 것이 비용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지 따져 본 후, 기업 목표, KPI를 감안할 때 다양한 조합 중에서 어떤 점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만약 기업 목표가 두루뭉술하고 KPI가 트레이드오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으면 매일 실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관리자들은 어려움을 느낀다. 여기에 최고경영자가 “우리는 둘 다 잘해야지!”라는 말 한마디를 보태면, 경영 현장은 큰 혼란에 빠지고 각 조직이 내리는 의사결정은 서로 충돌하고 방향성을 상실한다.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도 “우리는 모든 이해관계자 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다”고 큰 소리 치는 경영자보다는, “트레이드오프가 존재하며 기업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균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경영자를 더 신뢰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이야기의 끝이라면, 사회적 가치와 이윤을 모두 창출하려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 관점에서 보면 많이 부족하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혁신이다. 앞의 그림에서 이윤과 이해관계자 가치를 함께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가능곡선을 오른쪽 위로 밀어 올려야 한다. 이는 기업 역량을 증진시킨다는 뜻인데, 혁신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면 A냐 B냐의 고민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D라는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특히 파괴적 혁신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괴적 혁신은 처음에는 기존 제품보다 낮은 품질에서 시작하지만 기술진보를 거듭하여 궁극적으로는 기존 제품을 뛰어넘고 이를 대체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석탄 발전보다 비쌌지만 이제는 더 낮은 단가에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태양광 발전이 좋은 예다. 이처럼 획기적인 친환경 기술이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일은 종종 파괴적 혁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 대기업들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과 충돌이 있거나 초기에는 시장 규모·수익성이 너무 작아서 파괴적 혁신에 뛰어들 유인이 작다. 즉, 에너지 기업이 대체 에너지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기 어렵고, 육류 제품 생산업체는 대체육을 개발하고 보급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 반대로 말하면, 신생 스타트업 앞에는 ESG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당당하게 주류 기업으로 자리 잡을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다.

머지않아 기존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에 집착하여 ESG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다. 100여 년 동안 혁신적 기술로 뛰어난 성과를 자랑했던 코닥이 디지털 기술에 의한 파괴적 혁신을 이겨내지 못했듯이. 지금 잘 나가는 기업들도 파괴적 혁신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언젠가는 기존 사업을 버릴 각오를 하고 새로운 창업을 하는 기분으로 파괴적 혁신을 실행해야 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