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2021년 9월 17일

 

ESG는 투자자의 경제적 선택(투자)과 기업에서의 경영 활동을 다루기 때문에 경제·경영학자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는 경제적 가치(이윤) 창출에 집중하고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사회 문제를 잘 해결하고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주제는 모든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이다.

특히 그 중에서 주로 사회학을 중심으로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으로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들은 대체로 시장경제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효율적인지 모르지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강도와 그 대안에 대해서는 그들 사이에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경제를 부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유토피아적 사회적경제를 추구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시장경제 체제를 인정하고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사회적경제를 상정하는 견해도 있다.

 

급진적 사회주의 성향의 학자들은 기업이 본질적으로 반사회적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논리가 신의, 조건 없는 상호성, 사랑 등 인간 본연의 특성을 완전히 말살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조금 수선해서 쓸 수 있는 그런 대안이 못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기적 개인과 사적 욕망이 아니라 타인과의 신뢰와 호혜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타적 행동에 기초한 ‘사회적경제’가 시장경제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가 등장한 적은 있어도, 인류학자들이 고대 사회의 자급자족적 공동체에서 흔적을 찾아낸 호혜경제가 오늘날 시장경제를 전면 대체하는 세상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도 이처럼 아름다운 경제적 유토피아가 현실 경제에서 실제로 작동 가능한지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유보적 입장을 보인다.

 

그런데 보다 ‘온건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역시 사회적경제를 중요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경제를 또 다른 경제 영역으로 놓고 국가 및 시장 부문의 한계를 보완하는 ‘제3섹터’라는 입장을 취한다. 물론 사회적경제가 연대 경제라는 점, 그리고 민간과 정부 사이의 매개적 공간에 위치하면서 이들과 중첩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제3섹터일 뿐이다. 사회적경제의 논리를 시장 부문에 관철시킴으로써 현재의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체제까지 나아가기는 힘들다.
이들은 경제적 행위를 행함에 있어 공동체 지향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성, 시민적 자치 역량 강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범주의 사회적경제 조직은 실제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협동조합, 공제조합,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협동조합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기업은 지난 20여년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개념적 위치]

                                         출처='사회적 혁신 생태계 3.0', 씨에스컨설팅앤드미디어 출간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 지원 및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삶의 질 향상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을 뜻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관심 증가와 정부 지원에 힘입어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설립되었는데, 2021년 9월 기준으로 사회적기업 3064곳이 등록되어 있으며 약 6만명이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사회적기업은 대체로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기업들에 비해 인력, 제품, 비즈니스 모델,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뒤지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이 영리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시장 수익률을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이고, 심지어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생존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사회적경제, 그리고 실현 도구로서의 사회적기업은, 그 정의와 지향점에서 나타나듯 자본주의의 한계 및 문제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겠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이며 시장경제의 방향 자체를 바꾸거나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동력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요약하면,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대안으로서 사회적경제는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어서 현실성이 없다. 제3섹터에 위치하여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사회적경제, 그리고 그것의 실현 도구로서의 사회적기업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나, 그 역할은 제한적이다.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 걸음 한 걸음 사회적기업을 육성한다고 해서 시장경제 전체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SG 투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문제 해결 역시 시장 친화적인 방법으로 시장 전체를 바꿔야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즉, 경제 전체가 바뀌려면 대다수 투자자들이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ESG는 주류 경제 및 금융시장에서의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개선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경제의 지향점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 자체로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ESG와 사회적경제는 사회적 가치 증대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므로 둘 사이의 접점을 넓히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ESG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고 사회적경제에만 매달리면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변죽을 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