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실린 기고문도 끝에 링크하였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격변기에 들어섰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나쁜 소식과, 우리나라 메모리업체의 시장점유율 증가 및 세계최초 20나노급 D램 양산이라는 좋은 소식이 함께 들리니, 메모리산업의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 한편 전자기기의 조작, 제어 및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시스템반도체는 그 규모가 메모리의 3배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고작 세계시장의 3%에 그칠 정도로 경쟁력이 뒤쳐져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바일화․스마트화․융합화의 진전에 따라 기존 산업구조와 경쟁구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가 메모리는 경쟁력을 더 확대하고, 시스템반도체는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여 반도체 ‘통합 챔피언’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최근 경제위기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겪고 있다. 지난해 5월 2.72달러였던 D램(DDR3 1Gb 기준) 가격이 10월 들어 0.5달러까지 떨어져서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메모리업체가 3/4분기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널리 퍼져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언제쯤, 그리고 얼마나 메모리 경기가 회복될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나라 업체들은 기술 및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고, 또한 장기적으로 메모리 시장규모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메모리산업의 앞날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기술력 측면을 보면, 우리나라는 20나노급 D램과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고 있어서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미세공정 기술에서 일본․대만의 경쟁업체들을 1년 이상 앞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기술력은 곧바로 원가경쟁력으로 연결된다. 20나노급 D램은 30나노급 보다 생산성은 약 50% 높아지면서도 소비전력은 40% 이상 줄어들기 때문에 더 좋은 품질의 반도체를 더 싼 값에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경쟁력을 시장지배력으로 전이하는 비결은 치킨게임에 가까운 선제적 설비투자에 있었다. 2001년과 2007년 두 번의 메모리 불황기에 외국의 경쟁업체들은 설비투자와 생산량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지만, 우리 기업들은 도리어 앞선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과감한 설비투자를 함으로써 경기회복기에 높은 시장점유율과 이익이라는 과실을 차지하였다. 이번에도 외국 업체들이 줄줄이 감산에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나라 메모리 업계는 65%라는 사상최고의 점유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여기에 20나노급 설비투자가 이뤄지면 수년째 적자에 허덕이는 몇몇 경쟁업체들은 퇴출될 수 밖에 없어 보다 과점적인 시장구조 하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LCD산업에서 기술 및 원가경쟁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이 감산과 설비투자 축소를 하는데 비해 후발 중국은 증설을 하고 있는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메모리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증가될 여지도 많다. 먼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 시장은 이미 올해 3.7억대 수준으로 세계 PC 시장 1.3억대를 크게 앞서고 있으며, 이들 모바일 기기에 탑재될 D램과 낸드플래시 용량도 3년 이내에 5-10배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일례로 지난해 스마트 폰에 장착된 D램 용량은 300MB 정도였으나 올해는 1GB로 늘었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PC용 메모리보다는 모바일 메모리에서 더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유리한 입장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서버와 PC의 하드디스크가 낸드플래시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메모리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물론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내년쯤에 10나노급에 이르면 미세공정 경쟁은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새로운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해야 하고, 현재 주요 기업들은 차세대 메모리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이 이 경쟁에서 앞서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지금처럼 기술개발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우위를 지켜나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시스템반도체는 전자기기의 조작, 제어 및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반도체로서 전체 반도체 시장의 거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고작 세계시장의 3%에 그칠 정도로 경쟁력이 뒤쳐져있다. 시스템반도체는 다양한 시스템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형 제품이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설계만을 담당하고 생산을 반도체 제조회사에 맡기는 팹리스 업체가 다수 성장하고 있는데, 이동통신용 모뎀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퀄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웃 대만만 하더라도 매출 천 억원이 넘는 팹리스 업체만 수십 개, 1조원이 넘는 업체도 3개나 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는 매출 천 억원을 넘는 업체가 단 하나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산업발전 단계 관점에서 볼 때 이제 시스템반도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70-’80년대에 단순 조립에 가까운 제조업부터 시작하여, 이젠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휴대폰․TV․가전․자동차 등 시스템(세트) 제조업 전반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시스템이 경쟁력을 갖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스템반도체처럼 가장 핵심적인 부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도 생기게 되었다. IT와 타산업간 융합이 진전됨에 따라 시스템 제조업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휴대폰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의 CPU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경우 삼성전자가 63%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TV용 디스플레이구동칩, 카메라 이미지센서에서도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휴대폰의 핵심부품인 모뎀칩, 전력관리칩 등에 대한 기술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인 팹리스 업체 육성을 위해서는 기술개발 지원, 인력양성 등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많다. 그러나 모바일화․스마트화․융합화의 추세는 시스템 제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스템반도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를 포함한 IT산업은 지금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런 와중에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경쟁력 추락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스마트 폰에서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이런 변화에 주도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생태계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면 메모리는 경쟁력을 더 확대하고, 시스템반도체는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여 반도체 ‘통합 챔피언’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20/20111020014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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