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마트 TV 산업의 미래에 관한 세 번째 글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첫 번째 글두 번째 글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9. 스마트 TV 기업 간의 협력 및 경쟁구도

 

스마트 TV가 얼마나 활성화될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마트 TV 관련 기업들 간의 협력과 경쟁 구도는 모바일 기기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될 것이다. 즉, 스마트 TV에서는 가치사슬 상의 모든 기업들이, 어느 한 쪽으로 급격한 쏠림이 없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공존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 중에서 누가 상대적인 우위를 보일지는 다음 section에서 살펴볼 시나리오별로 다르다.

 

 

(1) TV 제조업체와 플랫폼 업체의 병존

 

스마트폰에서는 노키아, RIM과 같이 제조업체가 자체 플랫폼을 내재화한 스마트폰을 만들다가, 애플을 제외한 나머지 제조업체들은 하드웨어 제조만을 담당하고 플랫폼은 안드로이드 또는 윈도우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은 삼성, LG, 소니 등이 자체 플랫폼을 내재화한 스마트 TV를 만들고 있지만, 이들도 언젠가는 자체 플랫폼을 포기하고 구글과 손을 잡을 것인가? (애플은 TV에서도 하드웨어와 플랫폼을 통합한 형태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예외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신의 게임기(셋톱박스)를 바탕으로 스마트 TV 시장에 진입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윈도우 플랫폼을 TV 제조업체에게 판매하는 방식의 제휴 관계는 일단 가정하지 않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마트폰에서처럼 제조업체와 플랫폼 업체가 철저하게 역할 분담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가 그러하듯이 자체 플랫폼을 탑재한 TV와 구글 TV를 함께 만들 수도 있고, 자체 플랫폼을 갖는 하이엔드 TV 제조업체와 구글 TV를 제조하는 로우엔드 TV 업체로 나뉘어 질수도 있다.

 

기본적인 환경은 플랫폼 업체에게 유리하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TV에서는 N-스크린 서비스가 중요하다. TV 자체만으로는 스마트화의 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고 다른 기기와 연동될 때 가치가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V를 보다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싶을 때 TV 화면을 나누어서 검색하기 보다는, TV로는 동영상을 계속 보면서 스마트폰 앱이 제공하는 정보를 읽어보는 게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N-스크린 환경이 강조될수록 폰-태블릿-PC-TV를 아우르는 공통 플랫폼을 갖춘 업체가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애플, 안드로이드, MS가 우위에 있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의 입지가 스마트폰보다는 덜 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아이폰 출시 직후에는 주요 제조업체들이 OS 및 앱스토어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대안인 안드로이드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플을 견제하고자 하는 통신사업자들도 안드로이드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반애플 연합군’이 급격하게 결성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TV 제조업체들은 스마트폰의 경험을 교훈삼아 많은 준비를 하였다. 물론 이들의 OS 및 UI가 더 나은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처음으로 ‘당한’ 스마트폰의 경우와는 다른 것은 분명하다.

둘째, 콘텐츠 업체와 각국의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콘텐츠 유통시장이 글로벌 플랫폼 업체로 넘어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그룹이다. 따라서 이들은 플랫폼 업체의 지배권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들에게 TV 제조업체들은 플랫폼 업체들의 좋은 대안이다. 예컨대 애플, 구글에 콘텐츠를 제공하기로 결정한다면 삼성, LG 등에게 이를 제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유료방송 사업자들 또한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종속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제조업체와의 제휴 가능성을 계속 모색할 것이다.

셋째, TV 시장에서는 통신사업자의 역할이 없다. 스마트폰에서는 통신사업자의 보조금이 제조업체와 플랫폼을 연합군으로 묶는 무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TV 시장에서는 제조업체가 모든 마케팅 활동을 직접 수행한다. 이는 그만큼 제조업체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TV 수명이 길기 때문에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폰 때처럼, 또는 ‘안드로이드-삼성 연합군’의 등장처럼 하루아침에 갑작스런 시장구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다른 플레이어들이 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기업이 일방적으로 앞서가는 상황은 잘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TV 제조업체들의 자체 플랫폼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매끄럽게 N-스크린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체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 TV와 애플·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와의 연동은, 애플 TV와 아이폰·아이패드 또는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TV와 모바일 기기간 연동에 비해서는 더 불편하고 서비스도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들은 버튼 한 번을 더 눌러야 하는 수고를 싫어한다. 지금까지 가전제품간의 연동 시도가 많이 있었지만 그러한 번거로움의 허들을 넘지 못했다. TV 제조업체들이 이종 플랫폼 기기 간의 연동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스마트 TV 시장에서도 애플의 강세, 안드로이드에의 종속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건, 장기적으로는 TV 또는 셋톱박스에 탑재된 플랫폼의 역할은 축소될 것이다. 즉, 웹 플랫폼을 통해서 모든 콘텐츠와 앱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TV나 셋톱박스에 내장된 플랫폼 중에서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콘텐츠 스토어로서의 기능은 일정 부분 웹으로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2) TV 세트와 셋톱박스의 병존

 

스마트 TV 세트와 스마트 TV 서비스는 다른 개념이고, 스마트 TV 서비스는 TV 세트가 아닌 셋톱박스를 통해서도 제공 가능하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영상 콘텐츠 관점에서만 본다면, 미국에서는 여러 OTT 사업자들이 셋톱박스를 통해서 이미 스마트 TV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2년 2분기 현재, 인터넷 및 스마트 TV 보급률이 일본은 55% 수준이고 서유럽과 중국이 40%를 넘는데 비해 미국은 20% 미만이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 소비자들은 셋톱박스를 통해서 이미 스마트 TV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 TV 세트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국가별로, 그리고 시기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TV 세트와 셋톱박스는 각각 스마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진화하면서 공존할 것이다.

 

기업들의 이해관계도 엇갈린다. 광고와 콘텐츠 매출 수수료를 수입원으로 하는 구글은 자신의 플랫폼이 빨리, 많이 깔리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가격이 저렴한 셋톱박스의 보급을 더 선호할 것이다. 스마트 TV 경쟁이 치열해지면 넥서스 태블릿 경우처럼 구글이 직접 셋톱박스를 판매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이미 99달러까지 내려간 구글 TV 셋톱박스를 제조원가 이하로 낮추어 더 싼 가격에 공급할 가능성도 있다.

MS도 게임기에 스마트 셋톱박스 기능을 보강하여 스마트 TV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기 때문에 TV 세트를 제조할 가능성은 낮다. 이미 셋톱박스를 통해 유료 서비스를 제공해 온 케이블 TV 및 IPTV 사업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해 애플을 포함한 제조업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TV가 점점 범용 상품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어떻게 해서건 하이엔드 제품 판매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LED, 3D 등 성능만 올려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스마트 TV 서비스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서비스는 하드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로서는 TV 제조업체들이 스마트 TV 세트를 드라이브하는 유일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TV 세트의 지원 없이는 구현되지 않는 UI 기능이나 서비스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TV 교체 주기에 맞춰서 새로운 기능들이 기본(default)으로 내장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TV vs. 셋톱박스 싸움에서 TV 제조업체들이 어느 정도 시장을 차지할지는 결국 TV만을 통해서 제공할 수 있는 차별적인 UI와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3) 글로벌 플랫폼과 로컬 플랫폼의 협력 및 공존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스마트폰에서 그러했듯이 전 세계 TV 시장에 진입할 것이다. 그렇지만 각국에는 로컬 플랫폼 및 콘텐츠 기업들이 일정 수준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랬을 때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이 일일이 각국의 지상파 방송사, 영화사, 인터넷 업체들과 협상해서 이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끌어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로컬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을 확보하는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유료 방송 사업자와 제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다. 글로벌 TV 플랫폼을 꿈꾸고 있는 삼성, LG와 같은 제조업체도 같은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양자 간의 협력 모델은, 로컬 플랫폼(유료 방송 사업자)은 실시간 채널과 자신이 운영하는 콘텐츠 및 앱스토어의 수입을 갖고, 글로벌 플랫폼은 글로벌 콘텐츠 및 앱스토어의 수입을 갖는 식이 될 것이다. 물론 광고 수익 등 일부 수익을 나누는 형태도 포함될 수 있다. 한편 비용 공유 관점에서는 TV에 유료방송 셋톱박스 기능을 합쳐서 판매하면서 유료방송 사업자가 비용을 분담하거나, 아니면 유료 방송 사업자가 판매하는 셋톱박스 비용의 일부를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가 보조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궁극적으론 국내 콘텐츠 기업들도, 유료방송 사업자의 콘텐츠 스토어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글로벌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리거나, 아니면 웹 플랫폼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는 인터넷 망의 품질이 개선되면 실시간 채널 사업자들도 유선방송 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웹을 통해서 방송을 제공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이미 지상파 방송사 컨소시엄인 ‘푹(Pooq)'이 태블릿, PC를 통해서 실시간 채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웹을 통해서 TV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인터넷 망을 통해서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는 단계까지 간다면, 초고속인터넷 망 사업자(IPTV 및 케이블 TV 사업자)의 수입은 줄어드는데 비해 데이터 트래픽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게 된다. 따라서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은 지금과 같은 무제한 정액제가 아닌 종량제로 요금체계를 바꾸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에는 TV 수신료 형태로 받던 것을 이제는 인터넷 망 이용료 형태로 받는 셈이 된다. (인터넷을 통해서 전달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의 이슈이다. 그 인터넷을 통해서 어떤 서비스건 모두 전달할 수 있도록 한다면 망 중립성이 완전히 확보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망 중립성의 이슈는 인터넷 망의 사용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이 블로그의 다른 글, '“KT가 친구를 사귀는 특이한 방법” 또는 “聲東擊西” - 규제게임의 틀에서 본 KT의 스마트TV 접속 차단'을 참고할 것)

여기에 콘텐츠 사업자와 인터넷 망 사업자간의 접점이 있다. 콘텐츠 기업들이 일반 인터넷 망을 통해서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QoS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과 스스로 과금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따라서 이들도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서 콘텐츠를 판매하고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네트워크를 레버리지로 삼아 로컬 플랫폼을 유지하고, 글로벌 플랫폼과 협력, 병존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10. 스마트 TV의 미래 - 네 가지 시나리오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에도 스마트폰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젠가는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아이폰 이전에는 제대로 된 콘텐츠가 없었다. 그나마 있는 콘텐츠나 웹 서비스를 이용할 때면 UI가 불편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 보급되긴 했어도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때 애플이 앱스토어 개설, 터치 스크린 등 획기적인 UI 도입과 같은 혁신을 통해 스마트폰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성공했다.

지금의 스마트 TV도 아이폰 이전의 스마트폰과 양상이 비슷하다. 막상 스마트 TV가 나왔다곤 하지만 별로 볼 게 없다. 그리고 UI도 도리어 과거의 TV에 비해서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마트 TV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스마트 TV의 진화 방향과 속도를 결정짓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이다.

첫째, 원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약 없이 제공받을 수 있으며, TV에 잘 맞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었는지 여부이다. 단기간에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본격적인 스마트 TV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것이다. 스마트 TV가 빠르게 보급되고 셋톱박스 또한 스마트 기기로 조기에 교체될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처럼 콘텐츠 협상 및 킬러 앱 개발이 지지부진하면 유료방송 사업자를 중심으로 TV의 점진적인 스마트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TV 세트가 셋톱박스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UI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확실하게 차별적인 가치를 전달하는지 여부이다. 애플과 TV 제조업체들이 그와 같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할 것이고, 셋톱박스를 기반으로 하는 유료방송 사업자, MS, 구글의 입지는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TV 제조업체는 단순한 TV 공급업체로 남고, 스마트 셋톱박스가 핵심기기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장악하기 위한 로컬 유료방송 사업자와 글로벌 플랫폼(구글, MS, 애플) 간의 협력과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TV 제조업체의 자체 플랫폼이 스마트폰, 태블릿, PC의 이종 플랫폼(안드로이드, iOS, 윈도우)과 매끄럽게 연동되는지 여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스마트 TV는 확실하게 TV 제조업체들이 장악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애플도 일정한 역할을 하겠지만, 스마트폰에서와 같은 힘은 기대하기 어렵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역할은 더 미미할 것이다. MS, 유료방송 사업자도 상대적으로 종속적인 위치에 그칠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이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시나리오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도식화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네 가지 시나리오를 구성해 보자.

 

(시나리오 1) 만약 앞의 세 가지 요인이 모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스마트 TV 세트가 아이폰 이후의 스마트폰처럼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할 것이고, 구글, MS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스마트 디바이스 산업 전체에서 삼성과 LG의 입지도 커지고, 여기서 승기를 잡은 제조업체들은 가전기기를 공략하여 스마트홈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

 

(시나리오 2) 첫째, 둘째 요인은 긍정적이지만 셋째 요인은 부정적이라면, 스마트 TV 세트는 빨리 보급되겠지만,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는 경쟁 구도가 TV에서도 재현될 것이다. 왜냐하면 TV 제조업체의 자체 플랫폼 시도가 어려움에 봉착해서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탑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폰에서처럼 TV 제조업체들끼리 안드로이드 시장 내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겠지만, 폰, 태블릿에 이어 TV까지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탑재하게 됨에 따라 플랫폼에 대한 종속이 심화될 것이다.

 

(시나리오 3) 첫째 요인은 긍정적이지만 나머지 요인은 긍정적이지 않다면, 셋톱박스를 통한 스마트 TV가 대세를 이룰 것이다. 소비자들은 굳이 비싼 TV를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TV 제조업체들도 셋톱박스 제조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지만, 셋톱박스 가격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하이엔드 셋톱박스를 만든다 하더라도 수익성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TV 제조업체들은 본연의 제조업에 충실해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TV 사양 고급화에 좀 더 주력하리라고 예상된다. 따라서 구글과 MS가 강력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나서고, 로컬 유료방송 사업자와 협력하여 TV의 스마트화를 구현할 것이다. 물론 애플과 제조업체의 입지는 약화된다.

 

(시나리오 4) 마지막으로 만약 앞의 세 가지 요인이 모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스마트 TV라는 용어는 한 때의 유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유료방송 사업자가 거실의 TV를 장악하고, 셋톱박스를 조금씩 진화시켜나가면서 아주 천천히 스마트화가 진전되는 모습을 띌 것이다. 물론 글로벌 플랫폼은 로컬 유료방송 사업자와 제휴하여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겠지만, 로컬 사업자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만들지 못하고 TV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하나의 플랫폼 정도로 포지셔닝될 것이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현실적일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첫 번째 시금석은 내년으로 예상되는 애플의 TV 세트 출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략이나 시장에서의 반응을 감안할 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구글이나 TV 제조업체가 Game Changer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만약 이 때 애플이 또 한 번 획기적인 혁신이 이루어낸다면, 시나리오 (1)과 (2)에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이다. 그에 비해 단기적으로 이런 세 가지 모습에서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시나리오 (4)의 모습으로 가다가 콘텐츠 수급이 원활해짐에 따라 시나리오 (3)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1. Epilogue  - 진부하지만, 고객가치 혁신이 정답 

 

스마트 TV가 성공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가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1) 핵심 영상 콘텐츠와 킬러 애플리케이션, (2)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3) 다양한 N-스크린 서비스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 디바이스간의 매끄러운 연동.

그러나 아직 스마트 TV는 초기 단계이다. 요사이 스마트 TV가 많이 팔리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고급 사양과 패키징된 TV를 구매한 것이지, 정작 스마트 TV 기능 때문에 산 것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스마트 TV는 단지 마케팅 용어일 뿐이며 스마트 기능은 아직 장난감 수준이다. 실제로 스마트 TV를 구매한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마트 TV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즉, TV라는 디바이스의 특성상 능동적이고 개인화된 소비를 전제로 하는 스마트 기능이 별로 필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태블릿을 통해서 동영상을 시청하는 패턴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태블릿이 개인용 TV 수요를 대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TV는 여전히 온 가족이 거실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기기로서의 기능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이 견해가 맞다면 스마트폰에서와 같은 급격한 변화의 바람은 불지 않고, 셋톱박스와 TV 세트가 점진적으로 몇몇 기능을 추가해 나가는 정도의 점진적인 진화만 있을 것이다. 설사 스마트 TV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스마트폰에서처럼 애플과 구글이 압도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다.

 

우리나라의 TV 제조업체들은 스마트 TV 보급을 빨리 늘림으로써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콘텐츠 보강, UI 개선 등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한 가치가 고객에게 전달된다고 하기 어렵다. 그랬을 때 초기 시장을 선점했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노키아의 스마트폰에서 잘 보았다. 현재의 높은 스마트 TV 보급률 또는 관심은 TV 제조업체의 드라이브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상일 수도 있다.

TV 제조업체가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을 제치고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TV를 몇 대 팔았느냐 신경 쓰기보다는, 얼마나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냈는지 고민해야 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