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삼성전자가 얼마 전에 발표한 2012년 3분기 실적에서 또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3분기 매출액(52.2조원) 및 영업이익(8.1조원)은 전 분기보다 각각 9.6%, 20.8% 증가하였고, 전년 동기보다는 각각 26.4%, 91.1% 증가한 금액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매출액 200조 원, 영업이익 20조 원을 무난히 넘어설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삼성의 실적을 보며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는 듯한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하나는 과연 삼성이 계속 저렇게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다른 하나는 이건 삼성만의 잔치일 뿐, 우리나라 IT산업 전체가 잘 나가는 건 아니지 않느냐 하는 불만이다. 이 두 문제는 얼핏 보기에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 우리나라 IT산업의 3대 불균형

 

애플의 아이폰은 하드웨어·운영체제(OS)·콘텐츠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스마트폰의 승자가 되었다. 아이폰을 계기로 IT산업의 경쟁구도가 개별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니라 가치사슬 연합군, 즉 ‘생태계’ 간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생태계의 중심에는 OS와 그 OS에 수직적으로 결합된 앱스토어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 우리 완제품 기업들은 주로 '안드로이드 OS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데, 제조 역량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너무 취약해서 생태계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나라 기업들에 얹혀 있는 위험한 형국이다. 장기적으로 제조기술이 범용화 되면 생태계를 주도하기는커녕, 현재의 지위마저 중국 기업들에게 빼앗길 위험성도 있다. (IT산업 생태계에 관한 보다 더 자세한 논의는 이 블로그의 다른 글, ‘IT산업 생태계란 무엇인가? - 그 의미와 시사점’을 참고할 것.)

 

이처럼 취약한 상황은 우리나라 IT산업의 세 가지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그 첫 번째가 HW와 SW 산업간 불균형이다. 세계 1위인 HW 품목은 휴대폰, TV,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 여럿이다. 그에 비해 SW산업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2%에 불과하다. 글로벌 100대 패키지 SW 기업 중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으며, 패키지 SW 75%가 외국산일 정도이다. (물론 100대 패키지 SW 기업 중 미국 기업이 72개이며, 주요 SW 품목별 시장도 미국이 거의 독식하고 있는 특이한 시장구조라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완제품과 소재·부품 산업간 불균형도 심각한 편이다. 부품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이 시장점유율 1위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 많은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메모리 보다 세 배 큰 비메모리 반도체는 시장점유율이 5.5%(‘12년 2분기)에 머무는 등 핵심 부품의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하다. 부품에 사용되는 소재의 해외 의존도는 더욱 심각하다. 디스플레이·LED·전지·반도체 등에 쓰이는 대부분의 소재는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해 온다. 예컨대 LCD 디스플레이는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고, 여기에 쓰이는 주요 부품들의 국산화율은 약 70% 주변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부품 속에 들어가는 소재들, 예컨대 각종 필름이나 액정(Liquid Crystal) 등은 전적으로 수입품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도 매우 크다. 예컨대 지난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5.6%인데 비해, 작년 IT중소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4%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부 대기업은 높은 이윤을 향유하고 있는데 비해,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불균형 문제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로 중첩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즉, 중첩적 구조의 중심부에는 “HW 완성품을 제조하는 대기업”이, 그리고 주변부에는 “SW 및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이는 결국 IT산업 생태계 집단의 문제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지금은 생태계 간 경쟁 시대인 만큼,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IT산업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글로벌 IT산업 생태계에서 우리 완성품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으려면 SW, 부품·소재 분야에서 강력한 우군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생태계도 건강해져 세 가지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한다. 이처럼 글로벌 생태계 주도와 건강한 국내 생태계 조성은 별개의 과제가 아니다.

 

 

 

 

3. 생태계 기업집단 제도: 필요성과 특징

 

지금까지 SW,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상황 변화를 감안하면 생태계 관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패키지형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생태계 기업집단’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 볼만 하다.

현재의 ‘대기업 집단'은 소유구조를 기준으로 지정하며, 이들 기업집단의 생태계 파괴 행위를 규제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에 비해 ’생태계 기업집단‘은 소유구조와 관계없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집단을 지원·육성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즉, 완성품을 제조하는 대기업과 SW·부품·소재·장비 등을 납품하는 중소·중견 기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 집단이, 일정한 지정 기준과 운영 원칙을 충족하면, 정부는 이들을 지원해줌으로써 건전한 생태계 구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기업은 중소 납품기업들과 납품단가, 구매 물량, 성과 공유 등에 대해 합의하고 이를 이행할 필요가 있다. 공동 R&D를 추진하고 여기서 개발된 제품은 납품을 보장한다거나, 중소기업 인력 양성과 관련된 지원 등도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한편 정부는 여기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에게 R&D 지원, 병역특례 요원 배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경쟁력 강화를 돕게 된다. 생태계 기업집단을 주도하는 대기업은 생태계가 건강해짐에 따른 혜택을 누릴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재정적 지원은 원칙적으로 불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기여‘에 대한 recognition 관점에서 적절한 비재정적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 기업집단 제도는 대기업 집단 정책처럼 규제 지향적이지 않고, 시장에서의 필요에 의한 자발적인 협약을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공정거래법 상의 규제제도와 연계는 필요하다. 또한 자발적인 협약에 의한 윈-윈을 끌어내며, 정부의 재정지원은 마중물 정도로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산업진흥 정책과도 차별적이다. 마지막으로, 성과공유제와 이 제도의 지향점은 유사하다. 그러나 성과공유제는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정부지원 프로그램과의 연계는 미미하다. 그에 비해, 이 제도는 전체 과정에서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협력관계를 중시하고, 또한 정부 지원이 패키지 형태로 함께 주어진다.

어떤 이들은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인데 왜 이들에게 ‘차별적’인 지원을 해 주느냐고 문제제기를 할지도 모른다. 이 제도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완성품 업체와 함께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할 소위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 차별적이다. 그렇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일반적인 지원제도를 전제로, ‘대표선수’를 따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의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다.

 

 

4. Epilogue

 

생태계 기업집단 제도가 잘 시행되면, SW 및 부품·소재산업이 발전하여 IT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경쟁력이 제고되고, 나아가 다수의 글로벌 강소기업이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고용효과가 큰 SW 및 부품·소재 산업이 발전함으로써 성장과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IT분야 중소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게 정부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 ‘생노병사’와 ‘적자생존’, 이것이 생태계의 큰 이치다. 물론 어렸을 땐 잘 먹여야 하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 시켜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능력에 맞지 않는 지원정책을 펴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들이 형편에 맞게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 이 글의 축약본은 2012년 11월 23일 조선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