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2/16) 조선일보에는 "'착한 척' ESG경영, 정치색에 역풍 맞다... 유럽선 “녹색 파시즘” 반발"이라는 긴 분석 기사가 실렸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기사는 "'ESG 역풍'으로 이제 ‘ESG 열풍'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쓰였다. 물론 기사 말미에 그래도 "ESG 개념은 이어질 것"이라고 짧게 덧붙이긴 했지만... 

ESG 찬반 진영의 의견 대립은 정치권은 물론이고, 자본시장, 학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지나친 'ESG 워싱' 등으로 말미암아 최근 반대 진영의 목소리가 부쩍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나도 몇 년 전부터 지나친 ESG 열풍을 경계하는 기고문과 블로그 글을 써 왔다. 그리고 진정하게 옳은(truly correct)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정치적으로"만" 옳은(politically correct) 척 보이는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이니셔티브들을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모든 의견 차이가 그렇듯이 찬반 토론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사회 현상이나, 정책, 경영에서 완전 무결한 것은 절대 없으므로, 건강한 토론을 거침으로써 더 나아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사를 쓴 이는 본인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앞서서 인지, 사실을 취사 선택하거나 잘못 인용한 것이 여럿 눈에 띈다.

1. 기사에서는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 자료를 인용하여, " 2012년 13조3000억달러에서 2020년 35조3000억달러까지 치솟았던 지속 가능(ESG) 투자 규모는 2022년 30조3000억달러로 2년 전 대비 5조달러 감소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료의 원출처를 보면 그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는 미국의 ESG 투자 집계 방식이 엄격해짐에 따라, 미국 ESG 투자액이 2020년 17조 달러에서 2022년 8.4조 달러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2020년 ESG 투자 기준 강화로 말미암아 2년 전에 비해 투자액이 줄어든 적이 있어서, 연도별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ESG 투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여 웬만하면 ESG 투자로 인정했었는데, 회계 기준 및 규제가 점차 엄격해지면서 ESG 투자로 분류되려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기사에서는 2년 사이에 ESG 투자가 5조 달러나 줄어들 정도로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만큼 ESG워싱이 줄어들었다는, 바람직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2. 그리고 자본시장에서 거래되는 "ESG 펀드의 유행도 식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정도 길이의 분석 기사에서 ESG 펀드 유행이 식고 있다고 말하려면 통계를 인용하는 것이 옳다.
모닝스타라는 금융서비스 회사가 매 분기 발표하는 ESG 펀드 추이를 보면 집계를 시작한 이래 ESG 펀드는 매 분기 순증하였고, 순증 규모는 전체 일반펀드 순증 규모보다 컸다. 그런데 모닝스타 올해 자료에 따르면 작년 4분기에 처음으로 ESG 펀드가 25억 달러 순감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불경기에 기인한 것으로, 같은 시기에 전체 일반펀드의 170억 달러 순감에 비하면 훨씬 좋은 성과다.
적어도 통계에 따르면 ESG 펀드는 아직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3. ESG 펀드의 수익률에 대해서, 기사에서는 몇몇 펀드 사례를 들면서 ESG 펀드 수익률이 일반 펀드 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수익률이 높은 일반 펀드의 수익률 그래프를 크게 제시함으로써 얼핏 보면 ESG 펀드가 수익률도 나쁜 것처럼 보이게 편집되었다.
ESG 투자 수익률에 대해서는 자본시장과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지난 몇 년 간 자본시장 자료에서는 ESG 수익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경우가 많은 데, 이는 ESG 상위 종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으로써 '사후적'으로 수익률이 좋게 나타난 측면이 크기 때문에 ESG 우량 기업의 재무성과가 더 좋다는 증거로 쓰이긴 어렵다.
학술논문에서 ESG 성과와 재무성과 간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이는 논문들도 많으나, 이 또한 대개는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투자 종목에 제한을 가하는 ESG 투자는 모든 종목을 투자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 비해 수익률이 더 좋게 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위해서 ESG 투자를 계속하면서,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ESG 투자가 최소한 underperform하지는 않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성공이다.

4. 이 기사는 한때 'ESG 전도사'라고 불리던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작년에 "ESG란 용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ESG가 한물 갔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로이터 통신 기사를 보면, 래리 핑크가 ESG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정치화, 무기화되었기 때문에 그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맥락을 감안하지 않은 인용은 종종 왜곡을 낳는다.
조선일보 기사 말미에는 문정빈 고려대 교수가 "ESG에 대한 핑크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으며, 핑크가 ESG 언급을 피하는 이유는 그 개념이 기업들에 충분히 확산됐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코멘트 한 내용도 나오는데, 굳이 전체 기사 톤을 선정적으로 잡은 것이 아쉽다.

 

 

 

조선일보의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문이고 뛰어난 기자들도 많다. 해당 분야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기사를 게재하는 외국 신문들을 보면서 늘 부러워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글들을 적어도 가끔은 보고 싶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