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1년 9월 23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컬럼을 위해 작성한 초고입니다.
  조선일보에 실린 기고문도 끝에 링크하였습니다.

애플의 아이폰 쇼크에 이어 최근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로 우리나라 IT산업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위기감은 애플리케이션이나 운영체계(OS) 등 SW를 외국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HW업체들이 결국 애플, 구글 같은 외국 SW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반도체, LCD 등 주력 IT업종의 부진한 실적도 이런 위기의식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기가 대기업과 정부가 지나치게 HW를 중시하며 SW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HW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SW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SW산업이 중요하며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은 분명하다. SW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에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SW산업의 낮은 경쟁력이 정말 HW산업에 치우친 결과인지에 대한 인과관계 분석이나, 앞으로 HW와 SW산업의 바람직한 역할 및 관계는 무엇인지 등 산업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산업발전 단계를 보면 제조업이 성숙된 이후에 SW산업이 발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도의 SW산업이 저임금이나 영어경쟁력을 바탕으로 일정 정도 발전한 것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우리나라도 ‘70-’80년대에 단순 조립에 가까운 제조업부터 시작하여 비교적 쉬운 부품의 국산화 단계를 넘어서, 이젠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휴대폰․TV․가전․자동차 등 시스템(세트) 제조업 전반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시스템이 경쟁력을 갖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베디드SW나 시스템반도체처럼 시스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개발할 수 있는 역량도 생기게 되었다. 임베디드SW는 IT기기에 내장되어 HW를 제어하고 서비스 기능을 제공하는 SW로 OS, 미들웨어, 응용서비스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시스템반도체도 HW를 제어하고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응용서비스를 구동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반도체 칩에 SW 기능이 내장됐다는 점에서 임베디드 SW와 유사하다. IT와 타산업간 융합이 진전됨에 따라 시스템 산업(HW)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임베디드 SW와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HW산업 때문에 SW산업이 제대로 크지 못했다기보다는, 이제는 경쟁력을 갖춘 HW산업을 기반으로 SW산업이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SW산업의 취약한 경쟁력은 세계 SW산업구조에서 기인한 측면도 크다. 전세계 SW산업은 철저하게 미국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세계시장의 4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100대 SW 기업 중 미국기업이 무려 74개이다. 다른 어떤 산업도 한 나라가 이처럼 압도적인 지위를 갖는 경우는 없다. 미국은 엄청나게 큰 자국 시장에서 성공한 SW를 언어와 문화․제도의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SW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의 좋은 인력, 풍부한 벤처투자자금 같은 SW기업 육성시스템 또한 다른 나라가 흉내 내기 어려운 환경이다. 어찌보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어쩔 수 없이 HW 편향적인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인식 없이 HW 때문에 SW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성급하게 진단하는 것은 올바른 처방을 내리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더 이상 HW에는 희망이 없으니 SW 위주의 성장전략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극단적이다. 제조업은 우리가 지금까지 잘 해오던 분야이다. SW산업의 중요성이 증대된다고 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올바른 전략이 아니다. 물론 완성품 중심의 제조업은 우리나라도 점점 경쟁력을 상실해가지만 기술기반 제조업은 아직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노키아 등 완성품 제조업체들이 몰락해 나가는 와중에도 인텔, 퀄컴 같은 기술기반 부품업체들의 실적이 좋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HW건 SW건 핵심기술, 좋은 인력, 창의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HW를 잘 해낸 우리 기업들이 SW도 성공 기반을 갖춘 것이다. 특히 산업간 융합추세를 감안할 때 HW와 SW의 조화로운 발전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SW산업을 독식하고 있는 미국의 국가경쟁력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자국 제조업의 취약한 경쟁력을 우려하며 정부의 과감한 정책집행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SW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각양각색의 처방이 나오고 있다. 모두 다 일리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즉,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나누어 우선순위를 가지고 집행하되 한번 하기로 한 것은 일관성을 갖추고 꾸준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시장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이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첫 번째 분야가 될 것이고, 저작권 보호, 공공기관 수주제도 개선 등 법․제도 개선 또한 정부의 고유영역이다.
한편 IT콘트롤 타워가 없어 SW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핵심을 벗어난 지적이다. 행정조직은 해당 시점의 산업현황, 정책 주안점 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형태마다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SW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경부(HW/SW 융합), 행안부(공공기관 수주제도), 방통위(보안, 서비스/SW융합), 검찰(불법복제), 교과부(인력 및 기초기술) 등 거의 모든 부처의 노력이 결집되어야 한다. 따라서 특정부처의 콘트롤(control)보다는 여러 부처간의 코디네이션(coordination)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SW산업 육성, 조금 늦긴 했지만 많이 늦은 건 아니다. 우리의 장점과 여건을 감안한 전략을 꾸준히 실천해 간다면 우리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2/2011092201235.html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