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또 우리나라 언론들이 흥분하고 나섰다.

"오바마, 지나친 자국기업 감싸기"

"애플 손들어준 오바마... 미, 삼성 견제 나섰다."

"특허협상 불리해진 삼성..." 등등

8월 5일자 몇몇 조간신문에서 애플 아이폰 4 및 그 이전의 아이폰 모델, 아이패드 2 등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한 ITC(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의 결정에 대해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보도하면서 단 제목들이다. 이 기사들을 보면, 오바마는 논리도 없고, 생각도 없이 애플 편들기에 나섰으며, 또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허와 관련된 이론적 이슈, 경제적 효과, 정치적 측면 등을 종합해서 감안해 보면, 이것은 보호무역주의, 자국 기업 감싸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선은 표준특허 분쟁해결 절차에 대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미국 행정부를 대표하는 USTR(U S Trade Representative)과 준사법적 성격을 띤 무역위원회(ITC)가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애플-삼성 특허분쟁으로 범위를 좁히자면, 나는 이걸 미국 행정부가 당사자들에게 이제는 싸움을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시그날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2. 특허와 관련된 이론적 측면

 

우선 미국 행정부(USTR)가 무역위원회(ITC)의 결정을 문제 삼은 것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표준특허의 분쟁해결 절차와 관련된 것이다.

이번에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정을 받은 것은 이동통신과 관련된 표준특허다. 그런데 표준특허를 가진 자는 이 표준 특허를 사용하고자 하는 자에게 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랬을 때 삼성이 보유한 표준특허에 대한 대가 문제는 당사자들이 먼저 협의하고,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법정에 가서 다툴 일이지, 이를 이유로 수입 금지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주장이다.

나는 ITC와 USTR 중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를 판단할 정도의 특허관련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 특허 전문가들의 판단도 엇갈릴 것이다. 그런데 표준특허의 권한을 엄격하게 보호하면 원천기술을 개발한 기업들을 보호하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혁신을 장려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 표준특허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제조 산업 - 이 경우에는 스마트폰 산업 - 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이는 제품 단에서의 혁신을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른 상용특허와 달리 표준특허의 경우 보유자에게도 FRAND 조건과 같은 의무를 부여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일방적인 자국기업 감싸기 식의 의사결정을 내렸다고만 볼 일은 아니며, 표준특허와 상용특허의 처리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상당히 전문적인 판단이 그 밑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10개 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십 건의 삼성 vs. 애플 소송이 확인시켜 준 사실, 즉, 이동통신 표준특허를 가지고 애플을 공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국 행정부가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셈이다. (삼성-애플 특허전쟁 관련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 “법정에서는 졌지만, 시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 - 삼성 vs. 애플 특허소송의 의미와 영향”을 참고할 것.)

 

 

3. 거부권 행사의 경제적 효과

 

이번 결정의 경제적 효과 또한 미미하다. 우선 당장의 매출액이나 이익을 생각해 보면, 구형 아이폰 및 아이패드가 이번 논란의 대상인데, 아이폰4가 미국의 저가 시장에서 제법 팔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곧 새로운 아이폰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고 그렇게 되면 아이폰4는 어차피 시장에서 사라질 것임을 감안하면 이를 수입금지하였다 하더라도 애플이 별로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이번 결정이 삼성-애플 특허전쟁에서 애플의 입지를 강화시킬 것도 없다.

특허와 관련된 사법적, 행정적 의사결정은 당사자간의 재산권(Property Right)에 대해서 그 경계를 그어 주는 일련의 행동이다. 그런데 이번 거부권 행사는 당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삼성은 표준특허를 가지고 있다. (2) 이 특허에 대해 애플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3) 합의를 통해서 대가를 도출하지 못하면 법원에 가서 결정을 받아야 한다. (4) 다만 이를 근거로 한 미국 내 애플제품 수입 금지는 옳지 않다."

(3)번까지는 이미 지금까지의 반복적인 사법적 결정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이번 결정에 관련된 것은 (4)번뿐인데, (4)번의 결정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이폰 4 모델 뿐이고, 그 이후의 아이폰 4S, 5 등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이폰 4S 이후의 모델에서는 퀄컴의 모뎀 칩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표준특허에 관련된 권리가 소진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특허 관련 전문 블로그인 FOSS PATENT의 관련 글들을 참조할 것.)

따라서 설사 이번에 미국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서 아이폰 4가 수입금지되었다 하더라도, 애플이 그 후속 모델들도 수입이 금지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빨리 협상을 마무리할 이유는 없다.

결론적으로 이번 결정은 두 회사 간의 특허 재산권 경계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으니 협상력이 약화될 것도 크게 강화될 것도 없다.

 

 

4. 오바마의 정치적 계산

 

마지막으로, 정치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국인에게 애플은 미국 제품이다. (요새 광고로 하면 캘리포니아 제품이다.) 근데 미국 제품을 미국에서 쓰지 못하도록 “수입”을 금지한다고? 아마 그것이 애플에게 어느 정도의 피해를 주느냐와 관계없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리라.

물론 USTR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 결정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석해서 다른 나라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점도 사전에 당연히 고민했을 것이다. 실익은 크지 않고, 외국의 반발도 예상되는데, “국민 정서법”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부권을 행사한 측면도 꽤 큰 것이다.

애플이라고 이런 사정을 모를까? "어차피 작년 8월에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큰 그림을 정리해 주었으면, 그 다음엔 사적인 거래, 즉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건만, 왜 자꾸 사법적인 판단에 의존하려고 하느냐? 사법적인 판단이 지나치다 보니 정치적인 부담까지 생기는 판인데, 애플 뒤나 봐주는 미국 정부라고 낙인찍혀도 정말 좋겠니?"라고 오바마가 애플의 팀 쿡을 째려보는 것 같다면, 내가 지나치게 많이 나간 것인가?

 

 

5. 에필로그

 

이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볼 때, 나는 미국 행정부의 이번 결정이 (1) 표준특허에 대한 진지한 고민 AND/OR (2) 삼성-애플 특허 분쟁을 이제는 사적인 거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에서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끼어들 때쯤 되면, 이건 아주 큰 싸움으로 가거나, 철없는 애들 싸움을 적절한 명분으로 적절한 선에서 끝내기 위함이다. 이 경우에는 후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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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에 대한 선전포고 - 삼성의 LTE 모뎀 상용화에 얽힌 이야기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