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지난 7월 9일 갤럭시 S3 LTE(Long Term Evolution) 버전이 국내에 출시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LTE 모뎀이 처음 탑재되었다. 이 일이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IT산업에서 큰 획을 긋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뎀은 음성과 데이터를 무선을 통해서 송수신하는데 필요한 핵심 반도체 칩이다. 삼성이 LTE 모뎀을 최고급 스마트폰에 탑재하여 가장 ‘까다로운’ 국내 고객들을 대상으로 출시한 것은, 그만큼 성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CDMA 상용화 이후 국내 모뎀 시장을 독점해 온 퀄컴에 대한 선전포고로 느껴진다.

이 글에서 우리 기업들이 CDMA 모뎀을 개발하면서 겪었던 좌절과 이번에 ‘성공’하기까지의 경과,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본다. 그리고 모뎀 개발의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관련되는 배경 지식들도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기술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모뎀 개발이라는 케이스를 통해서 살펴 본 우리나라 IT산업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과 퀄컴의 전략적 고민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경제학에서는 경제주체들이 주어진 game rule을 준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퀄컴의 반경쟁적 행동을 통해서 ‘자본의 도덕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다소 기술적인 내용이 포함된 2, 3을 건너뛰어도 이야기의 흐름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2. LTE 모뎀 국내 출시 경과

 

이 보다 앞서 이번에 LTE 모뎀을 국내에 출시하기까지의 경과를 간단히 정리한다.

삼성전자는 2009년 LTE 모뎀 개발에 성공하였지만, 이번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모뎀은 LTE만을 지원하는 싱글모드(single-mode) 모뎀이었다. 즉, 2G/3G 같은 기존의 통신망과의 호환성(후방 호환성, backward compatibility)이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발에 성공한 이래, 동글 또는 USB 형태의 단말기나 외국의 일부 제품에만 제한적으로 탑재하여 왔다.

예컨대 최근 Verizon에 납품된 드로이드 차지, 갤럭시 넥서스 LTE 버전에 삼성전자의 LTE 모뎀(모델명: CMC221)이 탑재되었다. 그런데 Verizon은 CDMA 네트워크만을 운용하고 GSM(2G), W-CDMA(3G) 네트워크는 없다. 따라서 이 스마트폰에는 삼성 LTE 모뎀과 CDMA 계열의 2G/3G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대만 Via Telecom 모뎀 칩이 탑재되어 두 개의 모뎀 칩이 사용되었다. 모뎀 칩이 후방 호환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긴 어렵다.

그에 비해 이번에 갤럭시 S3 LTE 국내 버전에 탑재된 CMC221S는 LTE/GSM/W-CDMA를 원 칩(MMMB, Multi-mode Multi-band 칩)에서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SKT, KT에는 이 칩 하나만이 탑재되었고, WCDMA가 없는 LGU+에 납품되는 제품에는 역시 Via Telecom이 제작한 CDMA 지원용 모뎀이 별도로 탑재되었다.

삼성전자는 CDMA 네트워크의 수요가 제한적임을 감안하여 CDMA까지를 포함하는 원 칩을 만들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퀄컴과의 라이센스 및 로열티 이슈 등을 감안하였을 것이다.

 

 

3. 스마트폰 부품 구조

 

<그림 1>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각종 반도체 칩을 도식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를 다시 기능별로 묶으면 <표 1>과 같다. 이 중에서 중요한 부품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도록 한다.

모뎀은 베이스밴드 모뎀 또는 베이스밴드 프로세서(BP, Baseband Processor)라고도 부른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음성, 데이터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반도체이다.

응용 프로세서(AP, Application Processor)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데, 연산처리 기능, 오디오·이미지·비디오 등 다양한 포맷의 콘텐츠 재생기능, 그래픽 엔진 등을 지원한다.

RF 칩은 기지국으로부터 전파를 수신하고, 수신한 고주파를 모뎀에서 처리 가능한 저주파 대역(기저대역, Baseband)으로 변조시키거나, 반대로 모뎀에서 처리한 저주파를 기지국 송신을 위해 고주파로 변조시키고 송신하는 기능과 관련된 부품을 의미한다.

모뎀이 처리하지 않는 다양한 통신 기능, 예컨대 WiFi, Bluetooth, NFC, USB, FM, GPS 등의 기능을 구현하는 칩을 흔히 WC(Wireless Connectivity) 칩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전력관리 칩(PMIC, Power Management IC)은 휴대폰의 각 부품에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공급하면서, 전체적인 전력소비량을 최소화하도록 관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림 1> 스마트폰 부품 구조

 

 

자료: 이규복, 스마트폰 및 핵심부품 기술동향, 2011. 9. 22 전자부품연구원

 

 

<표 1> 스마트폰 부품 종류

구 분

부 품

프로세서

BP(Baseband Modem/Baseband Processor)

AP(Application Processor)

통신 기능

RF(Radio Frequency) 송수신 칩

Power Amplifier/안테나

WiFi/Bluetooth/FM/NFC(Near Field communication)/GPS

입출력 기능

디스플레이/카메라

스피커/마이크로폰

터치 스크린

각종 센서

전력 공급

배터리

전력관리 칩(Power Management IC, PMIC)

메모리

DRAM

플래시 메모리

 

 

스마트 폰 부품 중에서 상당히 많은 부품이 국산화되었다. 삼성 갤럭시 S2를 기준으로 볼 때, AP, 메모리,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등은 국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다른 국내 업체들은 외국산 AP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국산화는 아니다.)

여전히 국산화가 미진한 부분은 가장 핵심적인 통신관련 기능이다. 모뎀과 WC 칩은 전혀 국산화되어 있지 않으며, RF 칩의 국산화 비율도 매우 낮은 편이다. 스마트폰의 전력 소비량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PMIC의 기능도 매우 중요한데, 이 또한 전량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4. 모뎀/AP를 둘러싼 기업들의 움직임과 시장구조

 

(1) 모뎀/AP의 진화

피처폰에서는 모뎀에 중앙처리기능(CPU)이 함께 포함되어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기능도 수행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에는 컴퓨터로서의 기능이 강조되면서 통신 기능과 프로세서 기능을 분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AP는 기본적인 중앙처리기능(코어)을 넘어서 과거에는 다른 칩들이 수행하던 기능까지도 함께 묶어서 제공하는 식으로 그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 PC에서의 마더보드가 거의 통째로 하나의 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를 SoC(System on a Chip)라고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AP에는 CPU를 기본으로 하고 GPU(Graphic Processing Unit), 이미지 프로세서, 멀티미디어(오디오 및 비디오) 프로세서, 디스플레이·메모리·스토리지와의 인터페이스 기능 등이 탑재된다.

이처럼 기능이 많아지다 보니 AP의 고성능화는 당연한 추세이다.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두뇌에 해당하는 코어 수가 하나였는데, 작년 1월 출시된 스마트폰에 듀얼 코어 프로세서가 탑재된 이래로 고급 스마트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올해는 삼성(Exynos 4412)과 엔비디아(Tegra 3)가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출시하는 등 코어 수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코어 수가 늘어나면 빠르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기도 하지만, 동일한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전력을 덜 소비한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클럭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Exynos 4412와 Tegra 3는 각각 1.4GHz와 1.5GHz이다.

PC용 CPU는 인텔(거의 90%)과 AMD(약 10%)가 거의 모든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여기에 쓰이는 프로세서는 x86계열이다. x86 프로세서는 고성능·고전력으로 PC에 잘 맞았지만, 스마트폰에는 저성능·저전력 특성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영국 ARM사가 제공하는 프로세서 코어가 이 특성을 잘 갖추고 있어서 ARM이 AP 시장을 거의 100% 차지하고 있다. ARM은 기본적으로 코어에 대한 설계 및 라이선스(IP, Intellectual Property)만을 제공하고, AP 제조업체들은 이 코어를 기반으로 그래픽, 동영상 등 자사의 특징을 강조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ARM 진영에는 삼성전자, 퀄컴, Nvidia, Texas Instrument(TI) 등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모뎀과 AP는 원 칩으로 묶거나 별도의 칩으로 분리하여 출시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예컨대 모뎀을 전혀 생산하지 않았던 삼성전자는 별도의 AP 칩만을 내놓고 있다. 퀄컴은 작년에 출시한 모뎀 칩 중 약 36%를 원 칩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AP 측면에서 보면, 퀄컴이 내놓은 AP는 대부분 통합형 원 칩으로 출시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이 둘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면, 원 칩은 전력 소모량이 줄고 칩의 크기도 줄어들며, 칩 가격 또한 저렴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성능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야 하는 수요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모뎀은 통신방식이 한 번 정해지면 기능이나 성능 upgrade의 수요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 비해, AP는 기술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크며, 경쟁구도 또한 더 다원화되어 있는 편이다. 따라서 모뎀과 AP를 하나로 묶으면 신속한 대응이 어렵고 최고의 성능을 보장할 수 없다. 즉, 시장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AP와 모뎀의 결합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원 칩의 경우에는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 종합적으로 보면, 원 칩 형태는 대중적인 스마트폰에 주로 쓰일 것이며, 하이엔드 제품에는 별도 칩이 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2) 모뎀/AP의 시장구조

모뎀과 AP시장 자료를 몇몇 기관에서 발표하지만, 기업들 간의 거래이고 대부분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사기관마다 그 결과가 들쑥날쑥하다. 따라서 숫자의 조그마한 차이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큰 흐름을 보는 정도로 참고하는 것이 좋다.

먼저 모뎀 시장을 살펴보자. 2011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22.2억 개의 모뎀이 판매되었으며, 매출액은 151억 달러에 달한다. 한편 개별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표 2>와 같다.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퀄컴은 45%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으며, 2010년에 Infineon의 모뎀 부문을 인수한 인텔이 시장점유율을 계속 늘려 미디어텍, TI 등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중국시장과 2G에 치중하고 있는 대만의 모뎀 전문업체 미디어텍은 시장점유율이 계속 줄어서 3위로 내려앉았다. TI, ST-Ericsson, Broadcom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으며, Marvell, Renesas, Spreadtrum(중국), VIA Telecom(대만) 등이 나머지 16%의 시장을 나누어 갖고 있다. 그런데 퀄컴의 경우 이 매출액에 스냅드래곤이라고 불리는 모뎀/AP 원 칩 매출액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모뎀 판매 대수에 비해 매출액 기준 시장점유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엄밀하게 따지면 모뎀 시장을 분석할 때는 AP 부분을 제외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 칩 매출액 처리 방법에 따라 모뎀시장의 통계가 차이가 날 수 있다.

 

 

<표 2> 2011년 베이스밴드 모뎀 시장점유율 (매출액 기준)

기업 명

시장점유율(매출액 기준)

Qualcomm

45%

Intel

15%

MediaTek

11%

Texas Instrument

7%

ST-Ericsson

6%

Others

16%

자료: Various Sources

 

AP 시장은 원 칩 매출액 처리, 애플 AP를 삼성에 포함시키느냐에 따라서 조사기관별로 아주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Strategy Analytics에 따르면 2011년 AP 시장 규모는 약 80억달러이며, 퀄컴이 5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삼성전자, Texas Instruments, Marvell, Broadcom, Nvidia가 상위 6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퀄컴의 AP 매출액은 모뎀의 매출액과 일정 부분 중복 계산되었다.

한편 AP 단일 칩 시장에서는 자료에 따라서 편차를 보이지만,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이 60~70%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통합 칩까지 합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33%의 시장점유율로 퀄컴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료도 있으나, 다양한 자료들을 비교해 본 결과, 퀄컴의 전체 모뎀 출시 개수 등을 감안할 때 퀄컴의 AP 판매 개수나 매출액이 삼성전자를 다소 앞서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퀄컴은 stand alone AP는 거의 출시하지 않은데 비해 삼성전자는 전적으로 stand alone AP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퀄컴의 AP 비즈니스는 과거 피처폰 시대에 “모뎀+CPU” 상태로 칩셋을 생산하던 것이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모뎀+AP"로 자연스럽게 바뀐 측면이 있는 것이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처음 출시할 때부터 계속 삼성이 제작한 AP를 탑재하고 있다. 이 AP는 애플이 설계를 담당하고 삼성의 역할을 주문제작(foundry)으로 한정짓는 견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이폰용 AP를 삼성과 애플이 협력하여 개발한 것으로 본다. 예컨대 애플이 2010년 4월 인수한 칩셋 업체인 Intrinsity는 이미 2008년 9월에 삼성전자와 AP 칩셋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3) 관련 기업들의 전략

퀄컴은 모뎀시장에서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CDMA에서는 유일한 경쟁자인 VIA Telecom의 시장점유율이 10%를 밑돌고 있는 상황이며, W-CDMA 시장에서도 약 50% 정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TE 시장은 아직 초기 시장이지만, CDMA와 W-CDMA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활용하여 2G/3G/LTE를 하나의 칩에서 제공하는 MMMB(Multi-Mode Multi-Band) 모뎀을 가장 먼저 시장에 내놓았다. 퀄컴은 모뎀과 AP를 결합한 원 칩 시장에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하이엔드 제품에는 다소 적합성이 떨어지지만 매스 시장을 대상으로 공략하는데 유리하다. 또한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해서는 모뎀 단일 칩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원 칩은 추가적인 경쟁력이 될지언정 퀄컴에게 부담이 되고 있지는 않다.

애플은 모뎀을 설계 또는 제작하지 않고 있으며, AP 또한 직접 설계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제조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협력관계를 줄여나갈 유인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애플이 AP에 대한 ownership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단기적으로 애플이 주문생산 전문업체(foundry)인 대만의 TSMC로 생산업체를 바꿀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는 첫째, 삼성전자는 AP 제조업체로서 애플의 AP에 customize된 다양한 설계 모듈인 IP(Intellectual Property)를 보유하고 있는데, TSMC에서 생산을 하려면 새로운 IP를 설계, 구입해야 한다는 위험요인이 있다. 둘째, 생산 공정 면에서 TSMC는 고속을 구현하는데 유리하지만, 칩 사이즈가 크고 전력 소모량도 크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의 AP 기술 기반은 칩 사이가 적고 전력소모가 적어 AP 생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애플의 엄청난 AP 물량을 생산하려면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서 설비를 확대하거나 기존 고객과의 거래를 축소해야 한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생산단가, 물량 개런티 등 생산조건에 대한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어쨌거나 애플은 모뎀, AP 시장을 직접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강력한 자체 수요를 바탕으로 시장구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삼성은 AP 시장에서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에서 삼성이 선전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AP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은 당분간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모뎀 개발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모뎀, AP, 메모리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반도체 업체로서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가지게 되었다. 예컨대 과거에는 다른 회사의 모뎀을 써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삼성 자체의 AP를 못쓰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삼성의 스마트폰에 자체 AP를 탑재하는 비율이 50%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적어도 모뎀 때문에 타사의 AP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체 수요가 크기는 하지만 경쟁업체에 모뎀과 AP를 판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성장의 upper limit가 있는 셈이다.

Nvidia, Texas Instrument(TI), Broadcom은 각자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두 주자들을 쫓고 있다. TI는 AP 시장에서 OMAP의 성능이 좋은 편이어서 삼성에 이은 3위로 1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다만 ‘08년 오픈 마켓에서의 모뎀 판매를 중단한 이래 노키아 등의 주문 생산만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따라서 AP와 모뎀을 모두 가진 다른 업체들에 비해 다소 불리한 입장이다. Nvidia는 그래픽 칩에서의 최고 강자이며, 이를 활용하여 AP 시장에서도 최초로 쿼드코어 AP를 출시하는 등 시장점유율 향상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2011년 6월 모뎀 칩 벤더인 Icera를 인수함으로써 모뎀과 AP 시장 모두에서 presence 확대를 추진 중이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Broadcom은 WiFi 등 Wireless Connectivity 칩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으며 모뎀과 AP를 모두 생산하고 있으나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서의 CPU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피니언 모뎀 사업을 인수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모바일 CPU 시장 진출을 위해서 올해 초에 ATOM Processor 기반의 Medfield라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출시하였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Medfield는 전력소모가 많다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여 ARM계열과 비슷한 전력소모량을 보인다. 그러나 인텔이 파격적인 가격경쟁을 할 생각이 없다면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ARM 계열에서 인텔로 전환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AP를 바꿈으로써 다른 부품이나 응용 소프트웨어, 또는 애플리케이션과의 정합성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텔이 가격, 성능 면에서 ARM 계열을 극복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ARM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AP 및 모바일 기기 제조업체, 그리고 타 부품 및 SW 업체로 이미 탄탄하게 형성된 거대한 생태계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시장선점의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 좋은 예이다.

 

 

5. 퀄컴과 CDMA 상용화, 그리고 그 이후 - 퀄컴과의 긴 인연

 

이제 지금까지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이 글의 주된 토픽인 국산모뎀 개발의 긴 여정을 따라가 보자.

 

(1) CDMA 기술개발 경과

1996년 우리나라는 원천 기술을 보유한 퀄컴과 기술제휴를 통해 CDM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였다. 퀄컴과 우리나라의 기술제휴는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퀄컴은 1985년에 설립된 벤처기업으로 CDMA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실제 상용제품으로 출시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이를 추진할 경제적 능력도 없었다. 한편 한국은 이동통신시스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교환기를 개발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무선 기지국이나 전화기에 대한 기술을 확보하고 싶어 했다.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가 퀄컴과 1991년 5월 CDMA 공동기술개발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에 따르면 퀄컴은 CDMA 방식 시스템설계와 기지국개발, 이동전화 기술설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ETRI는 이동통신교환기 개발과 기지국 장치개발, 이동전화기 응용개발, 국내표준 등의 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한편 ETRI는 퀄컴에 단계별 개발연구비로 1,695만 달러(120억원)를 제공하기로 했다. (오늘날의 그 대단한 퀄컴이 20년 전에는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120억 원을 받고’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했단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20년 전의 한국, 20년 전의 퀄컴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1996년 1월 SK Telecom이 CDMA를 상용화하였고, 4월에는 신세기통신도 CDMA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2) CDMA 상용화, 퀄컴이 얻은 것

CDMA 상용화를 계기로 우리나라 휴대폰 제조업체가 한 단계 점프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휴대폰의 수입대체 뿐 아니라, CDMA와 GSM 단말기를 수출 주력제품으로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워낙 기술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4년 간의 공동개발에도 불구하고 CDMA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CDMA 휴대폰을 제조할 때마다 휴대폰 가격의 5%를 로열티로 지급하기로 한 것은 CDMA 특허 사용료를 내는 것이며, 계약 초기부터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조건은 나중에 CDMA 특허를 활용하여 휴대폰을 제조하는 모든 업체에게 적용되었다. (다만 우리나라 기업체가 지불한 로열티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의심된다. 한 조사기관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퀄컴의 평균 로열티 비율은 2007년 3.68%, 2008년 3.82%, 2009년 3.59%였다.) 그에 비해 모뎀이나 RF 칩은 우리가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하였다면 직접 제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업체들은 그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를 전적으로 퀄컴으로부터 구입하였다.

그런 점에서 CDMA 모뎀 칩을 거의 100% 독점 공급하고 엄청난 기술 로열티를 챙긴 퀄컴이 가장 큰 수혜자였다. CDMA 상용화 전인 1995년 퀄컴의 매출액은 3.8억 달러였는데, 2011년도 매출액은 149.6억 달러로 거의 40배 성장하였다. (이 중에서 모뎀 등 칩셋 판매 수입은 88.6억 달러, 로열티 수입이 54.2억 달러이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퀄컴사 매출의 35%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였다. 그러니 2011년 한 해만 해도 50억 달러 이상의 모뎀 매출 및 로열티 수입을 한국에서 올린 셈이다.

 

(3) 만약 기업이 퀄컴과의 협상을 주도했다면...

이야기가 조금 빗나가지만 이처럼 퀄컴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 당시 퀄컴의 재무상태가 아주 열악한 상황이었음을 들어 “퀄컴을 우리가 사 버렸으면 로열티를 물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그 많은 이익을 우리나라가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과거에 삼성에게 안드로이드 인수를 제안한 적이 있었음을 상기하면서, 안드로이드를 삼성이 인수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것과 비슷하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우리가 인수했으면 그만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약에 정부출연연구소가 아닌 기업이 공동기술개발협약을 맺는 당사자였다면 어땠을까? 퀄컴은 기술개발 협약에 참여하는 대가로 개발연구비를 받았다. 그리고 기술개발이 성공하였을 때 우리 제조업체가 누릴 수 있는 이익(upside potential)을 공유하는 장치로 로열티 규정을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우리 측도 이 계약이 성공하였을 때 퀄컴이 누릴 이익을 공유하는 장치를 넣자고 할만 했다. 물론 ETRI도 그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퀄컴 로열티 수익의 20%를 다시 돌려받는 것으로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 당시 퀄컴이 재무적으로 어려웠음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만약에 이것이 민간 기업끼리의 협상이었다면 아마도 이쪽에서는 퀄컴의 주식매수선택권(stock option)을 요구했을 것이다. 즉,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 예컨대 10~20% 정도 - stock option을 받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퀄컴은 1991년 12월에 상장하였다. 우리나라와 기술개발협약을 맺던 해이다. 당시 퀄컴의 시가총액(market cap)은 4.1억 달러였고 2012년 7월 13일 현재 시가총액은 942.2억 달러에 달해, 20여년 사이에 시가총액은 230배 정도 증가하였다. 이를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보자. 만약 상장 첫 날인 1991년 12월 13일에 퀄컴 주식을 100주 구입하였다면 2012년 7월 17일까지의 수익률이 11,042%에 이른다. (시가총액 증가율과 수익률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중간에 증자와 배당 등의 재무적인 변동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기간 동안 S&P 지수의 수익률은 380% 정도에 달했다. 만약 우리가 20% 정도의 주식을 당시 시가에 해당하는 8천만 달러에 매입하는 stock option을 확보했다면, 현재까지 투자원금을 빼고도 88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퀄컴은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매우 성공적으로 성장한 기업에 속한다. 지난 20년간 투자수익률이 미국 상장기업 중에서 5위에 달하고, 미국 증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IPO 상위 10개사에 꼽히기도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것이 대부분 한국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분통터질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일에 대한 가정은 무의미한 일이다. 더구나 당시의 의사결정을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정부출연연구소는 그 성격상 stock option을 요구하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로열티 수입 배분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당시에 정부주도의 기술개발 드라이브를 통해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여기에 대해 코멘트한 것은 정부와 민간의 차이점을 비교함으로써 각각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고자 함이다.

 

(4) 한국 기업들의 모뎀개발 노력과 퀄컴의 방해

이처럼 퀄컴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상황이었으니 CDMA 모뎀 상용화는 우리 IT업계의 숙원이었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은 몇 차례 기술개발에 성공하여 소량이지만 휴대폰에 탑재하기도 하였다. 먼저 삼성전자는 1999년 IS-95A/B 칩을 개발하여 100만여 대를 공급하였으나 퀄컴과의 계약에 의해 수출은 금지되었다. 또한 2003년 5월 CDMA2000 1x 칩셋을 장착한 휴대폰을 8만여 대를 공급한 바 있다. 한편 2005년 10월, EoNex가 개발한 CDMA2000 1x 모뎀 칩을 장착한 단말기를 LG전자에서 SKT용으로 출시하였다. 이밖에도 자체 개발은 아니지만 대만의 VIA가 제작한 모뎀 칩을 탑재한 단말기를 2004년 LG전자가 제작하여 국내 및 남미 4개국에 판매한 바 있다.

물론 이 모뎀들이 초기라서 기술적 완성도가 부족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퀄컴의 집요한 방해가 더 큰 문제였다. 퀄컴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 기업들을 압박했다. 먼저 자사 모뎀 사용 여부에 따라 휴대폰에 부과하는 로열티에 차등을 두었다. 둘째로, 국내 제조업체가 일정 비율 이상 자신의 모뎀 칩을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지급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퀄컴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여 이를 심결서로 남겼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공정위-20091230.hwp

 

먼저 로열티 차별행위를 좀 더 살펴보자. 로열티 차별은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첫째, 수출용 휴대폰에서, 다른 모뎀 칩을 사용(5.75%)하면 퀄컴의 모뎀 칩을 사용하는 경우(5.0%)에 비해 높은 로열티 비율을 적용하였다. 둘째, 고가 휴대폰에 대해서는 로열티 상한액을 설정하였는데, 퀄컴의 모뎀 칩을 사용한 경우의 로열티 상한($20)보다 경쟁사의 모뎀 칩을 사용한 경우의 로열티 상한($30)을 더 높게 설정하였다. 셋째, 내수용 휴대폰에서 차별적 부품가 차감제(price-netting)를 적용하였다. 즉, 로열티 산정 시 휴대폰 판매가격에서 퀄컴의 부품(모뎀 칩 등) 가격은 공제해 주는 방식으로 차별하였다.

 

 

<표 3> 퀄컴의 로열티 차별 행위

구 분

적용 대상

로열티 산정 방법

로열티율

차별적 할인

수출용 휴대폰

휴대폰판매가 × 로열티율

퀄컴 모뎀칩 사용 : 5%,

경쟁 모뎀칩 사용 : 5.75%

차별적

로열티 상한제

고가 휴대폰

로열티 부과시 상한선 차등 적용

경쟁 모뎀칩 사용 : $30

퀄컴 모뎀칩 사용 : $20

차별적

price-netting

내수용 휴대폰

(휴대폰판매가 - 퀄컴칩 가격)×로열티율

자료: 공정거래위원회(2009)

 

 

둘째, 퀄컴은 2000년 7월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에 대해 모뎀 칩/RF 칩 수요량의 대부분을 자신으로부터 구매할 것을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여 왔다. 퀄컴 칩셋의 분기별 구매비율이 75% 등 일정비율 이상이 될 경우 구매비율과 수량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리베이트를 지급하여 왔는데, 기본적인 리베이트 기준은 <표 4>와 같으나 리베이트 조건과 금액은 휴대폰 제조사별로 차이가 있었다. 이로 인한 리베이트 규모는 2004년까지는 휴대폰 제조사별로 분기당 평균 420만 달러 정도였으며, 2004년 이후부터는 분기당 평균 82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표 4> 국내 휴대폰제조사에 부과한 조건부 리베이트 예시

CDMA RF칩 분기별 구매비율

CDMA 모뎀칩 분기별 구매비율

85% 이상

90% 이상

95% 이상

75% 이상

a%

b%

c%

85% 이상

d%

e%

f%

95% 이상

g%

h%

i%

자료: 공정거래위원회(2009)

 

 

다음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많은 퀄컴 내부 이메일 중에서 네 개를 인용하였다. 퀄컴이 앞의 행위들을 통해서 경쟁사의 진입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메일들이다. (다만 이 글의 흐름과는 큰 상관이 없으므로 생략하여도 상관없다.)

 

Now there is strong atmosphere inside "B" to consider non-Qualcomm solution for low-end volume maker. As we are all aware of, timing is very crucial to defend against VIA in our low-end market. Following is my personal opinion, which I think can be feasible to defend our low-end solution against VIA in 2H05.

- Rebate price proposal would be as follows as SD previously agreed

- No Sales price limitation (like under $XX) but make clause "No VIA adaptation" providing following rebate for MSM60XX/60XX.

② "A" has an internal plan to design Via based Phone, TI and EoNex following Major Solution Provider

- Qualcomm has to hire key Engineers who are working at EoNex and 3rd Party Design House.

- Qualcomm has to provide bundle pricing with RF CMOS/PM6610

- Volume counter and rebate program

③ It seemed that "C" will commercialize Via based phone anyway in May 2005. I believe we need to try to minimize their portion and maximize our presence for mentioned market. Again, need your counter proposal to make it happen as you and I talked on the phone yesterday.

Regarding MSM60XX/60XX deal, please refer to the "B"'s feedback as attached. … Basically, "B" is glad to be proposed this price reduction but the concern is our ASP limit term. ... B do not want to join this ultra low-cost pricing war. … I believe B's low-end volume based on our MSM60XX/60XX can naturally defend/offend against VIA and other low-end competitors in India/LATAM market accordingly.

 

퀄컴 모뎀 칩을 전혀 안 쓸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금전적인 차별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의 모뎀 칩을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방식으로, 아주 최근에 W-CDMA에 대해서 모뎀 공급선을 조금씩 다변화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모뎀 시장은 철저하게 퀄컴이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해서 2,73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이 금액은 공정위가 단일 기업에게 부과한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다.

 

Addendum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의 framework에 입각하여 퀄컴의 행동을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또 다른 틀에서 보면, 퀄컴의 행동은 통신 표준과 관련된 국제규약들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통신기술의 표준이 설정되면 그 기술에 대한 특허(표준특허)를 보유한 사업자는 표준 설정 이전에는 없었던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게 된다. 표준특허 보유자가 표준 설정 이후에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표준기구들은 표준화 절차에서 특허기술 보유자에게 특허사항을 공개할 것과 공개된 특허를 공정하게 라이선스할 것 등을 요구한다. 즉, 표준기구들은 특허기술 보유자에게 표준특허를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라이선스 하겠다는(RAND :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확약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유럽통신표준기구(The European Telecommunications Standards Institute, ETSI)는 RAND 조건에 공정성(Fair) 조건을 덧붙여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FRAND 조건)을 요구한다. 즉, FRAND 조건이란 표준기구들이 표준에 포함된 필수기술 특허보유자에게 해당 특허기술에 대한 사용권을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퀄컴도 표준설정 당시 이의 준수를 약속한 바 있다.

 

 

6. 최근의 상황 변화와 LTE 상용화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뎀을 둘러싼 시장에서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1) 퀄컴의 특허관련 지위 약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상용화는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3G, LTE 모뎀 기술개발을 해 왔다. 그러다 보니 퀄컴이 표준특허의 90% 이상을 보유했던 CDMA 때와는 달리 LTE에서는 삼성, LG 등의 특허 경쟁력이 퀄컴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한 자료에 따르면, LTE의 표준특허의 경쟁력 점유율 관점에서 보면 노키아(18.9%)와 퀄컴(12.5%)이 1, 2위를 기록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12.2%로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하였다. 이어서 에릭슨(11.6%)·LG전자(7.5%)·인터디지털(6.7%)모토로라(6.3%) 등의 순이었다. 또 다른 자료에서는 LG전자가 전 세계 LTE 특허의 23%를 보유했으며 그 가치가 7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73억 달러 가치의 특허를 보유한 퀄컴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이다. 한편 인터디지털, 노키아, 모토롤라, 삼성전자는 30억 달러대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처럼 국내 업체가 상당 수준의 LTE 표준특허를 보유하게 됨에 따라 퀄컴 특허에 대한 일방적인 라이선스가 아닌 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를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하였다. 과거처럼 퀄컴이 제시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상황은 벗어난 것이다.

 

(2) 모뎀/AP 시장의 분리와 시장구조 변화

이 부분은 앞에서 자세히 논의한 바 있다. 모뎀과 CPU가 하나의 칩으로 결합되어 있었던 상황이 바뀌어 스마트폰에서는 모뎀과 AP 시장이 분리되자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스마트폰에서 중앙제어 기능의 중요성을 간파한 애플은 AP 설계에 많은 공을 들였고, 그 과정에서 삼성을 협력 파트너로 잡았다. 삼성은 애플에 AP를 공급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전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삼성과 애플이라는 두 개의 가장 큰 시장을 확보함으로써 AP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과거에 프로세서 생산경험이 있었다. 1997년 삼성전자는 DEC(Digital Equipment Corp.)의 서버에 들어가는 프로세서인 알파칩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DEC가 2001년 인텔에 인수되면서 삼성전자는 이 사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기간의 경험과 인력이 AP 경쟁력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 퀄컴의 모뎀/AP 번들링 전략과 삼성의 대응

한편 전 세계 모뎀의 45%를 공급하는 퀄컴은 모뎀과 AP를 원 칩으로 통합함으로써 AP 시장으로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LTE 모뎀도 AP와 결합하여 스냅드래곤 S4라는 원 칩(MSM8960)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모뎀을 분리한 단일 칩(MDM9615)의 출시는 다소 늦추고 있다. 물론 퀄컴이 원 칩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2011년 퀄컴 모뎀 칩 중 약 36%가 통합 원 칩으로 출시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의도적으로 모뎀 칩을 별도로 출시하는 시기를 뒤로 늦추는 것은 전략적인 고려라고 보여진다. 즉, 다른 경쟁자보다 앞서 출시한 2G/3G/LTE 통합 칩을  바탕으로 LTE 시장을 초기에 완전히 장악하고, 이를 레버리지로 삼아 AP시장에서 자체 모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삼성과 TI의 AP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사실 이는 MS의 Internet Explorer 케이스에서와 같이 전형적인 ‘끼워 팔기’에 해당하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판단될 여지가 많다.)

과거엔 삼성이 모뎀에 대한 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에 퀄컴이 이러한 ‘봉쇄전략’을 써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별로 잃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삼성 입장에서 이 원 칩 제품을 쓰면 자체 모뎀을 활용할 기회를 놓칠 뿐 아니라 AP시장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퀄컴의 이 같은 행위를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퀄컴의 MSM8960 칩은 아직 듀얼코어 AP를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이미 쿼드코어 AP(Exynos 4412)를 상용화한 삼성은 이를 통해 제품 차별화를 시도할 유인이 있었다.

 

(4) 퀄컴 LTE 모뎀 칩 공급 부족

그런데 직접적인 계기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왔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S4 칩을 주문생산하는 대만의 TSMC가 생산수율과 용량 때문에 칩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또한 퀄컴의 LTE 선점 전략과 관계가 있다. 퀄컴은 경쟁사 대비 한발 빠른 28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함으로써 LTE 시장의 선점에 나섰다. 공정의 미세화를 통해서 칩 크기를 줄이고, 발열 문제의 개선, 전력 효율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TSMC의 28나노 생산라인의 수율에 문제가 있으며 생산규모 또한 기대한 것보다 작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분적으로는 퀄컴 칩셋에 대한 수요 예측이 너무 보수적으로 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퀄컴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제2위 foundry 업체인 대만의 UMC와 삼성전자에 스냅드래곤 S4 칩을 생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원하는 만큼 칩을 공급받지 못할 상황은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하반기에 출시될 아이폰5에 모뎀 단일 칩(MDM9615)를 탑재할 예정이었는데 이 칩의 공급부족으로 아이폰5 출시가 늦어질 가능성이다. 그밖에 LG전자, 팬텍, HTC 등의 업체들도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모뎀/AP 칩과 스마트폰 시장 모두에서 경쟁자가 주춤하는 사이에 삼성은 자신의 모뎀과 AP로 시장을 치고나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7. 전망과 과제

 

모바일 칩셋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앞으로의 전망도 나쁘지 않다.

첫째, AP의 경쟁력은 이미 검증되었으며, LTE 모뎀에 대한 초기 평가도 좋다.

둘째, 전체 모바일 시장의 약 25% 이상의 자체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모뎀 시장에서는 당장에 모든 자체 수요를 삼성전자의 모뎀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꾸준히 성장할 정도의 충분한 수요가 있다.

셋째, 삼성전자가 자체 반도체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성능 좋은 설비와 우수한 공정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납기, 수율, 원가경쟁력 면에서 퀄컴보다 유리할 것이다. 이번 퀄컴 칩셋 공급 지연이 좋은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점점 여러 칩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모뎀과 AP는 물론 D램까지 원 칩으로 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옵션은 메모리를 자체 생산하는 삼성전자가 상당기간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이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다. 삼성이 만드는 모뎀 칩을 경쟁자인 다른 휴대폰 업체가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AP도 애플이외의 다른 업체에 판매되는 양은 미미하다. 따라서 인텔이나 퀄컴처럼 칩만을 제조하는 업체가 출현하지 않으면, 삼성의 성과는 우리나라 IT산업의 성과로 연결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는 칩 설계 중소전문업체가 휴대폰 제조업체와 공동으로 모뎀·AP·RF 칩 등 모바일 칩셋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때 비로소 모바일 기기 산업과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강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8. Epilogue

 

어느 산업에서건 독점은 반드시 무너진다. 독점기업이 누리는 초과이윤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에 이를 나누어 먹자고 덤비는 힘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필연적인 힘은 우연한 사건이나 독점기업의 실수를 낳는다. 그러면 독점 기업은 시장을 내주기 시작한다.

퀄컴의 독점을 깨는 필연적인 힘은 기술진보에 따른 새로운 통신표준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통신표준 하에서도 독점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퀄컴의 다소 무리한 전략들이 실수와 우연을 낳았다.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진보의 선봉에 섰었기 때문에 퀄컴의 시장지배력 축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삼성전자로 시작하여 거의 끝까지 삼성전자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IT산업의 한 단면이다. IT산업의 많은 전략, value chain, 그리고 자원은 삼성에서 시작해서 삼성 내에서 흘러가고 삼성 내에서 완결된다. 국가가 특정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 특정 기업만이 ‘잘 나가서’ 생기는 형평성 이슈, 이런 것들은 잠시 접어두자. 다만 삼성의 생존 및 성장 관점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유지 가능한(sustainable) 것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런 고민은 그들의 몫이지만...

 

■ 이 글의 축약본은 2012년 7월 20일 조선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