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한 달쯤 전에 포스팅한 블로그 글, “노키아 위기가 스마트폰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First Mover's Disadvantage 또는 Been-There-Done-That Syndrome"에서 노키아 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바 있다.

노키아가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이 스마트폰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다. 노키아는 기술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누구보다도 먼저 출시하였지만, 킬러 애플리케이션 등 생태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고전하였다. 말하자면 ‘선발자의 불이익’을 겪은 셈이다. 잇단 실패로 말미암은 조직의 패배의식과 냉소주의도 선발자의 불이익을 부추기는 내부 요인이 된다.

 

삼성 또한 애플에 앞서 스마트폰을 성공시키려고 노력했던 점에서 노키아와 삼성 모두 ‘선발자의 불이익’을 당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삼성은 이를 극복하는데 성공한 반면에, 노키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가 가지고 있던 강점은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도리어 약점으로 작용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1) 하드웨어 제조 관점에서, 노키아는 피처폰 시대의 상징인 ‘플랫폼식 생산전략’을 고집하였다.

(2) 선발 제조사의 상징이었던 자체 OS(심비안)는 경쟁력 부족으로 노키아에게 질곡이 되었다. 하지만 질곡(심비안)을 벗어나려는 성급한 윈도우 폰 채택 발표는 도리어 노키아의 몰락을 앞당겼다.

(3)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 확보를 위해서는 완제품과 부품의 완벽한 조화가 필요한데, 이런 점에서 노키아는 주요 부품을 모두 자체 생산하는 삼성에 비해 불리하다.

 

 

2. 플랫폼식 생산전략의 빛과 그림자

 

플랫폼식 생산전략이란 휴대폰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부품·SW·디자인을 조금씩 바꿈으로써 다양한 모델을 내놓는 방식을 뜻한다. 이 같은 생산방식은 다른 산업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컨대 자동차 산업에서는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면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과 사양이 조금씩 다른 모델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랫폼식 생산전략을 채택하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공통의 플랫폼과 SW·부품을 여러 모델에 걸쳐 사용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기본적인 기능이 유사한 여러 개의 모델을 생산하는데 유리하다. 그런데 피처폰 시대에는 출시 모델 수가 매우 많았지만 이들 간에 기능과 디자인 면에서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노키아는 플랫폼식 생산전략 덕분에 다양한 모델의 저가 피처폰을 빠르게 출시하여 이 시장을 장악했다. 그에 비해 삼성은 수많은 모델을 개발하느라 더 많은 인력과 개발비용, 그리고 시간을 투입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삼성은 노키아에 비해 하이엔드 피처폰의 비중이 크고 휴대폰 평균 판매단가(ASP, Average Sales Price)도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익률은 노키아에 미치지 못했다. ‘11년 4분기에 노키아 피처폰은 ASP가 계속 하락하여 32유로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13.5%라는 경이로운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같은 시기 스마트폰은 ASP 140유로, 영업이익률 -7%를 기록하였다.) 이 같이 높은 영업이익률은 플랫폼식 생산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출시 모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극단적인 예로 애플은 2007년 이래 5개의 모델만을 출시하였다. 그러다 보니 각 모델은 기능·부품·디자인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따라서 공통의 플랫폼을 사용할 필요성이 줄었다. 모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 및 부품을 공유함으로써 발생할 규모의 경제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노키아의 장점은 사라지고, 처음부터 개개의 단말을 따로따로 개발하고 거기에 맞는 부품을 소싱하는데 익숙한 삼성이 유리해졌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노키아의 플랫폼식 생산전략을 따라잡느라 생활화된, 빠르게 만드는 능력(Time-To-Market)도 갖추었다.

그런데도 노키아는 여전히 플랫폼화에 집착하였다. 시장이 점진적인 변화를 해 나가는 상황에서는 플랫폼화가 유리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07년 아이폰이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의 확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키아는 아이폰에 대항할 새로운 스마트폰을 빨리 출시하기 보다는 스마트폰 생산의 플랫폼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만큼 애플에 대한 대응은 늦어졌다.

 

 

3. 자체 OS도 부채가 되다: Single OS vs. Multi OS

 

심비안 OS가 2008년 노키아에게 인수되기 전까지는 다른 제조업체도 사용하는 open OS였다. 그러나 그 때도 심비안 OS를 탑재한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노키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심비안을 노키아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자체 OS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는 아니다. 애플은 iOS와 앱 스토어를 아이폰과 수직 결합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다 일반론적으로, 시장 초기에는 자신이 필요한 SW나 부품을 직접 조달하는 수직 결합형 또는 통합형 구조가 보다 일반적이라는 점은 다른 블로그 글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노키아는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본격 상용화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OS를 스스로 개발해서 사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통합형’ 구조(iOS, 심비안, 블랙베리)와 ‘모듈형’ 구조(안드로이드, 윈도우폰)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텐센은 그의 저서 ‘성장과 혁신’에서 통합형 vs. 모듈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통합형 구조가 초기 시장에 맞는 방식이라면 모듈형은 성숙된 시장에서 보다 더 잘 작동한다. 통합형이 아직 성능이 뒤떨어지는 제품의 성능을 높이는데 더 유리하다면, 모듈형은 이미 일정한 성능에 도달한 제품의 비용절감과 생산효율성 제고에 더 맞다. 통합형 OS를 가지고 있으면 이를 자신의 니즈에 맞추어 customize하는데 유리하다. 또한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과 개발도 가능하다. 에코시스템에 대한 통제 또한 용이하다. 그에 비해 모듈형 OS는 이를 채택한 제조사가 증가됨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다. 개별 제조업체 입장에서 보면 R&D 비용을 덜 쓰면서도 좋은 품질의 OS를 제공받을 수 있다. 끝으로 특정 OS에 종속되지 않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노키아의 문제는, 통합형 OS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통합형의 장점은 못 누리고 양 구조의 단점만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기에 아이폰의 iOS에 비해 심비안 성능이 뒤떨어졌던 건 이슈가 아니었다. 아이폰 이전의 노키아 스마트폰은 인터넷 접속보다는 PDA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하드웨어 성능도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 따라서 심비안 OS도 상대적으로 ‘가볍고’ UI 등의 기능도 부족했다. 그러나 노키아 정도의 기술력과 재무적 능력을 가진 회사가 역량을 집중했다면 심비안의 품질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계속 출시된 심비안 새 버전들은 iOS와 안드로이드를 따라가는데 급급하여 비슷한 기능들을 탑재하기는 했지만 항상 조금씩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노키아는 신속한 대응, customize되고 차별화된 기능 개발이 가능하다는 통합형 OS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또한 OS를 업데이트할 때 후방 호환성(backward compatibility)을 확보하지 못해서 모델별로 적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파편화(fragmentation)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이건 안드로이드처럼 다양한 제조사에서 사용되는 모듈형 OS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앱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기능도 많이 부족하여 노키아의 앱 스토어인 Ovi 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 숫자나 품질 면에서 애플은 물론 안드로이드에 비해 현저하게 뒤지는 상황이었다. 40~50%대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과 통합형 OS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통제 가능한 에코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노키아가 심비안을 완전히 버리고 MS의 윈도우폰만을 쓰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심비안을 계속 지키는 것은 비용 대비 효율성이 너무 낮았다. (심비안 개발인력의 숫자가 애플의 전체 개발 인력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심비안을 버리고 '모듈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면, 안드로이드·윈도우 폰을 모두 아우르는 Multi-OS 전략을 채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하나를 택한다면 안드로이드를 선택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개발도 끝나지 않은 윈도우 폰을 선택한 것은, 모듈형 구조를 선택하면서도 윈도우 폰에 대한 ‘우월적 사용권’을 유지하겠다는 통합형 마인드의 발로로 보인다. 뭔가 배타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계속 추구하는 것,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쇠퇴하는 기업의 특징이다.

더 나쁜 것은 윈도우 폰도 심비안과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시장 대응에 있어서 빠르지도 않고, 생태계의 장악이나 차별화라는 점에서도 별로 장점이 없다. 노키아가 윈도우 폰을 채택하겠다고 2011년 2월에 발표하고 나서도 거의 1년을 기다려 작년 12월 말에야 윈도우 폰을 탑재한 루미아 폰을 출시하였다. 심비안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후 아직 새 제품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는 사라질 심비안 폰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소위 오스본 효과(Osborne Effect)는 노키아의 몰락을 더욱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삼성은 애플과 노키아에 비해 OS 관련 역량이 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파편화 등의 문제는 있지만 많은 제조사가 안드로이드에 동참함에 따라 안드로이드와 앱 스토어의 경쟁력이 현저하게 개선될 수 있었다. 삼성은 하드웨어 제품력과 브랜드 파워, 그리고 뛰어난 제조 능력을 바탕으로, 구글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안드로이드 진영의 맹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 삼성은 안드로이드를 주축으로 윈도우 폰·타이젠 등을 동시에 출시하는 Multi-OS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전략은 다양한 제품을 적시에 제조할 수 있는 삼성에게 잘 부합하는 것이다. 또한 모듈화 구조가 갖는 유연한 협력관계를 극대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시장이 점점 성숙함에 따라 통합형보다는 모듈형이 더 우위를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도 삼성의 입지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4. 표준부품의 저가 공급 (평상시) vs. 특성화된 부품의 적기공급 (격변기)

 

피처폰 시대에는 노키아가 부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력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여러 부품 제조사와의 협상을 통해서, 상당히 표준화된 부품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 노키아의 원가 경쟁력은 부품의 다량 구매에서 기인하는 점도 크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컴퓨팅, 통신, 디스플레이, 메모리, 카메라 등 하드웨어 성능이 크게 고도화되었다. 이들이 업그레이드되는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이러한 하드웨어 기능을 활용하는 새로운 서비스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많은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조합하여 원하는 성능과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부품간의 정합성 확보가 필요하다. 예컨대 컴퓨팅 기능을 휴대폰에 구현하기 위한 프로세서(AP) 개발, 새로운 서비스와의 연동, 통신기능의 최적화, 최고급 디스플레이를 탑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시행착오 극복은 부품업체와의 공동 작업이 필요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은 어떻게 하면 작은 사이즈에 이 모든 기능을 넣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고기능과 저전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인가 등 수많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고기능화·소형화·저전력화의 요구조건 또한 부품업체와의 협력 없이는 충족시킬 수 없다.

삼성은 스마트폰에 필요한 대부분의 핵심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개발단계에서 부품업체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끊임없이 부품과 완제품을 수정할 수 있다. 애플 또한 사실상 새로운 스마트폰 시대를 열기 위해서 AP를 직접 설계하고, 특화된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부품업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시장에서 표준화된 부품을 저가에 공급받는데 익숙한 노키아의 부품공급 체계로는 좋은 스마트폰을 적기에 생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5. Epilogue - 격변기엔 동남풍이 분다

 

다른 글에서 지적하였듯이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계속 출시하다보니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다주는 피처폰에 회사의 전략과 제도가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07~’08년에 이젠 진짜 스마트폰 시대가 왔다고 사람들이 얘기하였지만, 노키아는 반신반의하면서 피처폰에 맞추어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주저하였다. 도리어 스마트폰을 피처폰 시스템에 맞추어 생산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니 경쟁력 있는 스마트폰이 나올 리 만무하다.

변화의 시기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과 같다. 갑자기 동남풍이 불면 모든 것이 역풍이 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