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년 6월 27일

 

중국에 모소대나무(孟宗竹)란 희귀종이 있다. 이 대나무는 4년간 3㎝도 채 자라지 못하다가 5년째 되면 6주 만에 무려 15m가 자란다고 한다. 4년간 뿌리만 수백m를 뻗어서 자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둔 덕분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목표로 내세운 '창조경제' 추진 실적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이 많다. 정부 초기에 가장 중요한 1년 반이 지나버렸으니 자칫 초조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3년 반이 남았다. 최종 결과물까지 보기에는 짧을지 모르지만, 일을 하기에는 충분히 긴 기간이다.

정부가 창조경제 구현방안을 찾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정책은 선진국 모형을 받아들여 빠르고 효율적으로 시행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경제가 선두권에 서다 보니, 더 이상 '베낄' 나라나 정책이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설사 방안을 찾았다 하더라도, 공장만 지으면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산업경제 시대와 달리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렵다. 씨를 뿌리는 사람 입장에서야 자기가 열매까지 거두고 싶겠지만, 다음 세대가 거둘 열매를 미리 준비하는 자세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 주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열매를 거두는 것보다 씨를 뿌리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한다. 올 3월에 확정된 미래성장동력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2020년에 주력 산업이 될 13개 산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이를 육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산업에는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역할 정비도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연구소가 기초원천 기술개발을 차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출연금 구조와 연구과제 선정방식을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를 수년째 하고 있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정부가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출연연구소를 활용하려고 하는 것이 주된 이유다. 연구소의 원천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고 지원하는 건 당연하지만, 단기성 사업화 프로젝트는 연구소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아니다.

물론 열매를 거두는 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다만 정부는 지금까지 단기 성과를 올리기 위해 특정 분야를 골라 R&D 프로젝트와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 방식은 재고돼야 한다.
중소기업의 사업화 프로젝트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사업화할 분야를 고르고 또 출연연을 앞장세우기보다는, 시장이 유망 분야와 기업을 선정하도록 하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사업화가 잘 안 되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규제 때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대표적인 예가 원격의료다. 범부처적인 규제개혁 없이 여러 해에 걸쳐 마냥 소규모 시범사업만을 진행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는 별 의미 없는 일이다.
SW(소프트웨어)산업도 비슷하다. SW 산업은 기술력 부족보다는 부실한 생태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오래전부터 똑같은 처방이 제시되고 있지만, 부처 간 협력 부족으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있다. 예컨대 공공 소프트웨어 대가 현실화는 기획재정부가 반대하고, 초·중·고에서 SW 교육을 시행하는 것은 교육부가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대가를 제대로 안 쳐주고 필요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데 SW 산업이 발전할 리 없다.

모소대나무를 키우는 농부처럼 우리 경제도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서 수년간 정성 들여 키우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Posted by 조 신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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