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년 7월 25일

 

(당초 저자의 의도를 좀 더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 편집 과정에서 분량이 줄어들면서 삭제된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하여 추가하였습니다.) 

 

1991년 12월, 통신시장에서 처음으로 국제전화에 경쟁이 시작되었다. 경쟁 도입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KT와 데이콤의 요금을 정해주었다. 가격경쟁을 할 수 없으면 비가격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두 사업자는 막대한 광고 경쟁을 벌였고, 경쟁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정부는 1993년에 광고마저 금지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정부 규제를 받는 SK텔레콤의 요금이 결정되면 다른 사업자들은 이보다 조금 낮게 책정한다. 그러니 보조금이 거의 유일한 경쟁수단이 되어버렸는데, 이마저 정부가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보조금 지급이 불법화되면서, 통신시장은 극심한 눈치싸움과 정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규제 게임으로 바뀌어버렸다. 한 사업자가 먼저 보조금 규제를 위반하면 시장을 독식하게 된다. 이를 견디다 못한 다른 사업자들이 보조금 전쟁에 가세하여 시장이 ‘과열’되면 정부의 조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수백 억 원대의 과징금과 영업정지가 뒤따른다. 먼저 ‘불법’을 저지르는 사업자가 이득을 보고, 정부가 시장 상황을 낱낱이 감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법과 제재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정부는 불법 보조금을 뿌리 뽑겠다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제정해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은 보조금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통신사업자와 대리점이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 상한액을 정하고, 신규 가입자건 기존 가입자건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 자체 단말기를 가져와 가입하는 경우에는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할인을 해줘야 한다. 위반 시에는 통신사업자뿐 아니라, 제조업체, 대리점도 제재할 수 있다. 이처럼 보조금, 요금의 세세한 내용을 정부가 다 정해주니 시장경쟁을 통해 결정될 내용이 있기나 할까 싶다.

최근 논의되는 정부 고시의 내용은 한 단계 더 나간 느낌이다. 정부는 보조금 상한액 법위를 25~35만원으로 하되, 구체적인 상한액은 시장상황을 고려하여 6개월마다 조정하겠다고 한다. 또 복잡한 계산식을 적용해 보조금 대신 지급할 요금 할인액을 산출하였다. 시장상황을 고려해 수시로 전략을 수정하고, 또 수익성 등을 고려하여 요금 플랜을 만드는 것은 원래 기업 마케팅 부서의 몫인데 말이다.

정부는 이게 다 사업자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2008~2009년에 보조금 규제가 없었을 때는 요즘 같은 보조금 '광풍'이 불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보조금 전쟁은 보조금 규제 때문에 일어난다. 정부 규제가 있기 때문에 치고 빠지기식으로 보조금을 사용하고는 서로 그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 패턴을 보여 왔다. 그러나 보조금 규제가 없어지면 후발 사업자들은 정부가 싸움을 말려 주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쉽게 싸움을 걸기 어렵다. 선발 사업자 또한 시장점유율 조금 올리자고 보조금을 더 써서 규제강화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 법이 민간기업들의 시장경쟁을 봉쇄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왕 제정되었으니 실효성 있는 규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불법 보조금이 다소 줄어들지는 몰라도 더욱 음성화될 우려가 크다. 여전히 통신사업자와 제조사가 유통망에 지급하는 수수료와 장려금은 언제든지 불법 보조금의 재원이 될 수 있다.

정부 규제는 핵심 원칙을 지키면서 단순·명확해야 한다. 예컨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제조사-통신사업자 지원금을 구분하여 공시하는 문제를 보면, 실효성 있는 법 집행을 위해서는 개별 행위자들의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잘 지키지 않는다고 제재하려면 새 법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Posted by 조 신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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