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년 4월 25일

 

10만명. 1984년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될 때 한 연구소에서 2000년의 이동전화 가입자를 예측했던 결과라고 한다. 1984년에는 차량용 전화뿐이었고 비용도 웬만한 자동차 값 수준이었으니 이런 예측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는 2000년에 가입자가 2600만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5500만명에 달한다. 이는 이동통신이 지난 30년간 가져다준 변화가 모든 이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가입자 증가보다 질적인 변화는 훨씬 더 크다. 이제 스마트폰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보다는 TV, 게임, 채팅을 즐기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뿐이랴. 쇼핑, 뱅킹, 내비게이션, 더 나아가 웬만한 회사 업무마저도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왔다. 세계적인 현상이라곤 해도 우리나라는 유난히 변화 속도와 폭이 크다. 70%를 넘는 스마트폰 보급률은 전 세계 1위다. 1인당 월 데이터 통화량은 1.2GB(기가바이트)로 세계 평균의 다섯 배 수준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에 힘입은 바 크다. 2011년 9월 뉴욕타임스는 드디어 뉴욕의 4개 지하철역에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가능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LTE(4세대 이동통신) 전국망 구축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 정도로 두 나라의 통신 상황이 비교가 되면서 화제에 올랐다.
이동통신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특히 1996년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의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은 IT(정보기술) 산업 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이동통신 업체가 제시하는 요구조건에 맞춰 제조업체가 장비를 만들어내고, 이동통신 업체가 다시 테스트를 통해 보완해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황무지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쌓아갔다. 이 기술력이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가장 신속히 신기술을 적용한 통신망을 구축하고, 이를 테스트베드 삼아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휴대폰을 개발했다. 인터넷 및 콘텐츠 기업도 첨단 이동통신망에서 구현되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갔다. 그 결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통신 서비스의 GDP(국내총생산) 기여도는 4.4%로, 29개 회원국 중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20년쯤에는 LTE보다 1000배 빠른 5G(5세대) 이동통신이 선보일 것이다. 이에 맞춰 가전제품, 자동차, CCTV, 공공 디스플레이 등 모든 기기들이 스마트해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런 '멋진' 세상이 가능해지려면 '튼튼한' 네트워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이동통신 업체들의 사정을 보면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데이터 트래픽은 폭증하고 투자 수요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정액 요금제와 통신시장 성숙으로 통신 사업자의 매출은 제 자리 걸음이고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원가를 밑도는 전력요금, 이에 따른 과소비와 설비투자 소홀이 불러온 최근의 전력난을 생각해본다면, 미래의 네트워크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무니없는 기우는 아니다.

우리 정부는 오늘날의 IT산업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제 정부는 이동통신 업체의 투자 유인을 보장하면서도 소비자의 후생을 증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정답은 분명하다. 네트워크 진화에 맞춰 규제 제도를 전면 개혁하고, 경쟁 활성화를 가로막는 과다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