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EYOND] 2014년 9월 28일

 

경제일간지 머니투데이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인 "TECH & BEYOND"에서 [급부상하는 핀테크의 세계]라는 특집을 꾸몄는데, 앞으로 바뀌는 금융 결제의 변화, 그리고 금융 산업 value chain 내에서 IT기업 또는 새롭게 부상하는 결제 관련 기업들의 몫은 얼마나 될 것인지를 주된 내용으로 기고하였습니다.

IT 분야의 변화 속도와 보폭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이 (1) 일시적인 현상일지, (2)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예외적인, 즉 일부에서만 관찰될 현상일지, (3) 아니면 대세가 될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금융 결제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그런 편에 속합니다. 이 글에서 저는 이런 것들을 구분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잠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몇 년 이내에 IT가 우리의 온·오프라인 쇼핑 및 결제를 완전히 바꿀 것이다. (2) 그러나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IT기업들의 몫은 제한적이고, 여전히 금융기업들·수신 등 본원적인 금융 서비스와 결제 서비스의 주인공 노릇을 할 것이다.

이 기고문의 상당 부분은 이미 제가 조선일보에 기고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힙니다.

 

 

지난 9월 9일(현지시간)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한 이후 세간의 관심은 아이폰6에 집중되었으나 정보통신(IT) 및 금융 전문가들은 새로운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가 몰고 올 파장에 더 주목하고 있다. 마침 다음카카오가 9월 5일 출시한 카카오페이도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거기에 ‘천송이 코트’ 이후 알리페이가 롯데면세점에서도 쓰이게 되었다는 등 중국계 결제 서비스의 발 빠른 움직임도 화제의 대상이다. 또 미국에서는 벤모(Venmo) 같은 현금 송금 서비스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치페이 수단으로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결제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변화는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이 시장에서는 누가 주도권을 차지하게 될까?

결제 서비스는 흔히 온라인(PC 및 모바일) 상거래에서의 결제, 오프라인 상점에서의 결제, 개인 간 소액 송금 서비스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IT 기업들이 이 영역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페이팔이 2000년부터 온라인 상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쓰였고, 우리나라 이동통신사업자들도 10여 년 전에 모바일 신용카드와 전자화폐를 출시했으나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이 탑재되고, 근거리무선통신(NFC)이나 QR코드 등 스마트폰과 오프라인 결제용 단말기 간 통신 기능이 보편화되면서 결제 시스템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이에 따라 모바일 상거래용 결제가 크게 활성화되고 일부 국가에서는 전자화폐를 통한 개인 간 송금이 늘고 있지만 오프라인 상거래는 여전히 플라스틱 신용카드나 현금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애플이 NFC 통신과 지문 인식만으로 간단히 결제를 완결함으로써 플라스틱 카드를 대체하겠다고 나섰다. 애플이 워낙 혁신 기업이다 보니 이번에도 게임체인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고, 이제는 시장이 본격 개화할 단계가 됐다는 판단도 뒤따르는 듯하다. 특히 애플이 미국의 주요 신용카드사 및 22만 개 판매점을 일거에 끌어들임으로써 생태계를 조성했고, 지문인식 등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개선한 것이 밝은 전망을 내놓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노키아가 10년간 스마트폰 사업을 키워 왔지만 생태계 미비로 고전한 반면에 애플은 어느 정도 여건이 조성된 후 앱스토어와 획기적인 UI로 무장한 아이폰 출시로 ‘후발자의 이득’을 누린 것을 연상케 한다.

단말기 보급, 통신수단 통일 등 과제

 

그럼 새로운 결제 서비스는 우리 생활을 전격 바꿀 것인가?
PC 및 모바일 기기에서의 온라인 거래 결제는 이미 많이 편리해졌다. 물론 여전히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가 괴롭히고 있기는 하지만 신용카드 번호 등 엄청난 정보를 입력해야 하던 번거로움이 줄어들고, 사전 등록한 비밀번호만 입력해도 되는 ‘간편 결제’가 일반화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모바일 카드가 플라스틱 카드를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은 NFC, QR코드, 바코드, 비콘 등 다양한 통신 수단의 통일도 필요하다. 또 어느 것으로 통일되건 이를 지원하는 결제용 단말기가 보급돼야 한다.
카카오 등과 손잡고 플라스틱 카드를 모바일 단말기 안으로 집어넣어야 할 신용카드사들의 머릿속은 더 복잡하다. 하위권 카드 사업자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일 기회로 보고 이들 IT기업과의 제휴에 적극일 수 있지만 상위권 사업자들은 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IT기업에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로 소극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모바일 카드 보급에는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카드사와 IT 기업들이 제휴하여 내놓은 새로운 결제 서비스의 수익 모델도 분명치 않다. 궁극으로 소비자에게 편의를 가져다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제공하는 기업에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얘기다. 예컨대 새로운 결제 서비스가 일반화된다고 해서 신용카드 사용액이 대폭 늘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오프라인에서 신용카드 쓰기가 불편하다고 현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휴대전화 결제, 현금 송금을 일부 대체하겠지만 그 비중은 미미하다.

새로운 결제 시스템이 가져다 줄 비용 절감액이 어느 정도 될지도 분명치 않다. 물론 플라스틱 카드가 완전히 없어진다면 발급비 등 비용 절감이 일부 예상되고, IT기업과 카드사 간의 긴밀한 장기 제휴로 PG나 VAN사의 역할이 크게 축소됨으로써 그에 따른 수수료 절감은 있을 수 있지만 아직은 때 이른 전망이다.
카드사들의 입장이 요지부동이다 보니 소매점들 또한 모바일 카드를 쓸 유인이 아직은 부족하다. 우선 결제용 단말기 비용 부담이 중요한 걸림돌이고, 그 이후에도 고객들에게 모바일 카드를 쓰도록 유도하고 교육시키려면 소매점에 모바일 카드 사용 때 결제 수수료를 낮춰 주는 등 유인이 필요하다.

과도한 금융 규제가 새 서비스 막아

 

금융 규제도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IT산업과 타 산업의 융합은 어느 분야에서건 규제 정책의 변화를 필요로 하지만 진입 규제와 다양한 형태의 행위 규제 및 행정 지도는 금융 산업에서 가장 심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과 IT산업의 융합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려면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또 설령 법령 개정이 필요 없다 하더라도 정부의 유권해석 없이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기가 어렵다.
보안 우려도 규제를 강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외국의 금융기업들은 보안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고, 문제가 발생해도 여론이나 피해자들이 규제 당국의 책임을 묻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금융보안을 정부의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정부는 이에 기대어 아주 자세한 내용의 보안지침을 금융기업에 정해 준다. 금융기업은 보안 사고에 따르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것만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IT와 결합된 새로운 금융 서비스가 출시되면 보안성을 충분히 검증하기까지 서비스는 아예 출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보수 성향의 금융 기업 특성 상 서비스 보급을 꺼릴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모바일 카드는 결제뿐만 아니라 쇼핑에서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최근 온라인과 오프라인 커머스의 연계(O2O; Offline to Online)가 큰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위해서는 고객의 위치 정보를 모바일 기기에서 파악하여 오프라인 소매점에 알려주고, 모바일 카드에 각종 포인트 및 멤버십과 쿠폰을 담는 월렛 기능 등이 결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바일 카드가 정착되면 결제뿐만 아니라 각종 포인트, 멤버십, 쿠폰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것은 물론 온·오프라인 상거래의 연계, 위치 기반 서비스와의 연계 등 우리의 쇼핑과 결제 문화를 혁신시킬 것이다. 다만 이런 것들이 일상화되는데 3~5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결제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누가 될 것인가?


10여 년 전 우리나라 통신사업자들은 IT와 금융의 융합이 진전됨에 따라 사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온라인 은행, 신용카드, 전자화폐 및 결제 등에 진출하였거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보면 금융 영역 거의 대부분에서 이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아직 신용카드 사업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이는 신규 사업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IT가 타 산업에서 활용되는 폭과 정도가 커짐에 따라 두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관계가 달라서 협력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양 진영이 새로운 영역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IT가 다른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IT가 하는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 등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타 산업과의 융합이란 관점에서 IT가 미치는 영향과 역할 평가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IT가 해당 산업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거나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인지, 품질이 떨어지지만 가격이나 편의성 등에서 기존의 제품을 대체하는 데 기여하는지 여부다. 경영학자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의 설명에 따르면, 전자는 존속형 혁신(sustaining innovation), 후자는 파괴형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각각 해당된다.
존속형 혁신의 영역은 기존의 기업이 원래 잘해 오던 분야이고, 또 기존의 우량 고객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이들은 필요한 IT기술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역량으로 내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해 파괴형 혁신의 경우에는 새로운 기업이 품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값싼 제품을 출시하여 기존의 기업이 방치해 놓은 로엔드 고객이나 새로운 시장을 유효하게 공략하여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두 번째는 IT가 다른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대한 것이다. 즉 IT가 해당 산업의 본질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유통채널, 생산방식 등 일부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만약 IT가 해당 산업의 핵심 역량에 영향을 준다면 IT 활용을 잘하는 기업이 기존 기업들의 경쟁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IT가 핵심 역량을 돕는 보조 수단에 그친다면 IT기업의 역할은 기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데 머물게 된다.
이런 두 가지 기준으로 IT와 금융의 융합 사례를 보면 IT기술의 활용은 금융 거래의 편의성을 제고하고 오프라인 점포 활용을 축소하는 등 효율 향상에 기여하는 존속형 혁신의 전형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 IT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결제 서비스의 변화를 카드사들이 못 따라할 이유가 없다.


결제 플랫폼 장악이 금융은 아니다

 

물론 IT기업, 그 가운데에서도 구글이나 카카오 같은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이 빠르고, 소비자 경험(UX)을 관리하는 데 능숙하며, 자신의 다른 서비스들과 결제 서비스를 엮어내는 데 뛰어난 역량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신용카드사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서 IT기업에 ‘외주’를 주고 적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다. 마치 인터넷 뱅킹에 필요한 네트워크나 소프트웨어 솔루션 등을 IT기업에 의존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판단하는 또 다른 이유는 IT기술이 금융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업의 본질 영역 또는 핵심 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IT기업은 카드사나 은행과 제휴하여 고객과의 접점에서 그들이 수행하던 거래(transaction)를 일부 대체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거래 수수료를 받는 형태인데, 그나마도 IT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결제 서비스는 다른 IT 서비스에 보완 제공되는 무료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아주 강력한 IT기업이 결제 플랫폼을 독점하는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이 기업의 수수료 몫은 늘겠지만 금융 기능을 넘겨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가 신용카드사나 은행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금융 서비스에서 거래 및 결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기능은 수신 및 여신 공여와 이에 따른 리스크 관리다. 실제로 은행이나 카드사가 결제 및 송금 등에서 거둬들이는 부가가치는 작으며, 대부분의 이익은 여신 공여에서 나온다. 그러나 여·수신 기능 및 리스크 관리는 IT기업이 갖추고 있는 일반 역량이 아니다. 고객 입장에서 볼 때도 IT기업이 낮은 금리 등 획기적인 혜택을 주지 않는 한 IT기업으로 금융 거래를 옮길 유인이 없다.
그리고 IT기업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금융 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어느 나라건 비금융자본의 금융산업 진입에는 규제가 따른다. 금융업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IT서비스 플랫폼을 자신의 금융 서비스에만 유리하게 사용하면 이는 독과점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서비스 플랫폼의 경쟁력을 금융 서비스로 전이시키기가 쉽지 않다. 오프라인 거래 수수료가 중요한 수입원인 증권사들이 온라인 주식 거래 도입에 소극적 입장이던 틈을 파고들어 생겨난 온라인 증권회사는 구도 전체로 볼 때 ‘파괴적 혁신’의 기회를 잡은 예외의 경우에 해당한다.

결론을 말한다면 우리의 온·오프라인 쇼핑 및 결제는 몇 년 후에 완전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동인은 IT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결제 서비스의 주인공은 여전히 금융기업이고 IT기업은 결제의 일정 부분을 수행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보조 역할을 할 것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