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2월 24일

 

콘텐츠는 문화와 산업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문화보다 산업 측면의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콘텐츠 발전 없이 IT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애니메이션과 게임 산업은 IT 활용도가 매우 크며, 문화적 장벽이 낮기 때문에 글로벌화하기 쉬운 산업이다.

작년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사진>이 관객 219만명을 동원해 지금까지의 기록을 압도적으로 갱신했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 '쉬리'는 관객 244만명이라는 초유의 기록으로 한국 영화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촉매제 역할을 했다. '쉬리'가 나올 당시에는 영화산업 기반이 상당히 다져진 상태여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 산업을 한 단계 성장시키기에는 아직 토양이 너무 척박하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 볼 때 애니메이션 관객의 저변이 축소되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지상파 방송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들은 모두 시청률이 1% 미만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시청률 10%대를 넘나드는 애니메이션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정부가 2005년 국산 애니메이션을 의무적으로 방영해야 하는 '지상파 총량제'를 시행하면서 TV용 애니메이션의 생산량은 증가했다. 그러나 시청률이 낮아 방송사들이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방송사들은 어린이들이 시청하기 힘든 오후 3~4시에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따라서 단지 의무방영 편수를 채우기 위한 저예산 애니메이션이 양산되고, 이는 다시 시청자 이탈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수요층도 빈약하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어른 관객에게는 소구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외하고는 애니메이션이 모두 관객 수만 명의 참담한 결과를 냈다.

공급 측면에서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예컨대 '마당을 나온 암탉'은 30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다. 최근 트렌드인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경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지금까지 극장 상영만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작품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 유일하다.
이런 수익 구조는 투자의 위축을 초래한다. 현재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는 정부의 모태펀드에서 지원받은 창업투자사가 거의 전부다. 그나마 이들도 투자 회수기간이 길고 불확실성이 높다는 이유로 애니메이션 투자를 꺼리고 있다. 작년 7월 기준으로 모태펀드 투자금액 6038억원 중 애니메이션 및 캐릭터에 대한 투자는 6.8%인 416억원에 불과하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그 잠재력에 비해 정책적 관심이 부족했다. 정부는 최근 지상파 및 케이블 채널의 국산 애니메이션 방송 의무를 강화했다. 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보다 종합적인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우선 모태펀드의 투자 대상에서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춘 영화·게임보다는 애니메이션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인력양성, 제작 기술개발, 생태계 개선 등의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책이 시청률을 높이고 제작을 활발하게 한다면 산업 전반이 선순환 구조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 제2, 제3의 암탉이 마당으로 뛰쳐나올 것이다.

애플 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남긴 업적 중에는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외에도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를 빼놓을 수 없다. 픽사가 세계 최초로 제작한 3D(입체영상)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잡스가 10년간 적자를 감수하면서 그의 재산 절반에 해당하는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기다려 주었던 직관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토이스토리에 견줄 만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나오려면 우리도 그만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