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년 8월 26일

 

우리나라는 1995년 LCD(액정디스플레이) 양산을 시작한 이후 성장을 거듭해 2002년 이후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국내 생산액이 40조원을 넘고 수출도 345억달러로 수출품목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또한 50%에 이른다. 이같이 뛰어난 실적은 생산기술의 우위, 과감한 투자, TV·휴대폰 등 국내 완제품 업체의 안정적인 수요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력산업인 디스플레이 산업이 공급 과잉과 경기 침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46인치 LCD TV에 쓰이는 패널 가격은 작년 초 447달러에서 올 8월에는 307달러로 폭락했다.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은 상당기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이 단지 경기침체 때문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메모리반도체 또한 수요 위축,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폭락을 겪고 있음에 주목해 LCD와 반도체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도체와 LCD가 경쟁력을 확보한 방식은 매우 유사했다. 앞선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불경기에는 치킨게임에 가까운 선제적 설비투자를 통해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호경기가 되면 그 과실을 차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반도체는 여전히 기술우위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LCD와 큰 차이가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나노미터급 미세공정, 신제품 개발 등 기술력에서 경쟁국인 일본을 월등히 앞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새로운 반도체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이를 차세대 설비투자로 연결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LCD 패널 기술은 범용화돼 우리를 바짝 뒤쫓고 있는 대만과의 기술력 차이가 거의 없다. 또한 선제투자의 이점도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좀 더 큰 패널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면 이에 맞춰 대규모 설비투자를 함으로써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이제는 차세대 설비의 가격상승으로 말미암아 선제투자를 하더라도 생산원가가 낮아지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LCD는 TV·모니터 등의 교체수요 이외에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지 못해 고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LCD는 산업주기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더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젠 경기 회복 이후를 기대하면서 불경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 LCD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대만·일본기업들과도 다양한 협력을 하는 상황이다. 한쪽이 물러설 때까지 죽자사자 경쟁하는 치킨게임을 통해 이들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는 LCD에 지나치게 기대기보다는 새로운 기술력, 가격 경쟁력,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과감하게 옮겨타야 할 때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그 첫째 대안이 될 수 있다. OLED는 LCD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월한 측면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가 글로벌 수요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선점의 이익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17년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의 점유율이 10%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 아직 OLED가 주력 디스플레이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시장을 선도해 OLED를 더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또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떠오르는 투명·플렉서블·무안경식 3D(입체영상)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한 기술개발과 시장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LCD 이후에도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새로운 기술방식으로 넘어갈 때 기존 방식의 우위가 도리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멋지게 '예외'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