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년 10월 21일

 

반도체 산업이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먼저 메모리반도체를 보면 최근 경제위기로 지난해 5월 2.72달러였던 D램(DDR3 1Gb 기준) 가격이 10월 들어 0.5달러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업체들이 3분기에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다 보니 반도체산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앞날은 긍정적이다. 우리 기업들은 기술과 원가 경쟁력을 갖췄고 전체 시장 규모도 계속 커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기술력 측면에서는 세계 최초로 20나노급 D램을 양산함으로써 미세 공정 기술에서 일본·대만 업체들을 1년 이상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기술력은 곧 원가 경쟁력을 의미한다. 20나노급 D램은 30나노급보다 생산성은 약 50% 높아지면서도 소비 전력은 40% 이상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술·원가 경쟁력은 치킨게임에 가까운 선제적 설비 투자를 통해 시장 지배력으로 연결된다. 지난 2001년과 2007년 불황기에 외국 업체들은 설비 투자와 생산량을 축소했다. 우리 기업들은 앞선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과감한 설비 투자를 단행해 이후 경기 회복기에 높은 시장점유율과 이익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외국 업체들의 잇따른 감산 덕에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65%라는 사상 최고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여기에 20나노급 설비 투자가 이뤄지면 수년째 적자에 허덕이는 몇몇 외국 업체들은 퇴출되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메모리 수요도 많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시장에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하드디스크가 플래시메모리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비메모리란 전자기기의 조작·제어를 담당하는 핵심 부품을 말한다. 전체 반도체시장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분야인데도 우리나라는 불과 3%의 시장점유율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산업 발전 단계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우리나라도 시스템반도체가 성장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휴대폰·가전·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전반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됐고, 이 경쟁력이 곧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모바일·스마트·융합화의 진전으로 산업구조와 경쟁구도가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경우 삼성전자가 63%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모뎀칩 등 스마트폰·TV·자동차용 핵심 부품에 대한 기술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와 달리 그 종류가 다양하다. 대부분이 다품종 소량 생산형, 중소기업형 제품이다. 따라서 시스템반도체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다수의 중소·중견기업들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 지원, 인력 양성 등 정부가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IT산업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때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경쟁력 추락으로 연결된다. 스마트폰에서 '애플 아이폰 쇼크'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이런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생태계 조성에 힘을 보태면 메모리는 경쟁력을 더 확대하고, 시스템반도체는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 언젠간 반도체 '통합 챔피언'의 자리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