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년 12월 16일

 

흔히 IT산업을 분류할 때 가치사슬을 따라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T(터미널·단말기)로 나눈다. 이 중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단말기다. 스마트폰·태블릿PC·스마트TV가 등장해 일상생활을 크게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 플랫폼도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좋은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는 중요성에 비해 세간의 관심이 크지 않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네트워크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단말기기·플랫폼·콘텐츠 보급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통신사와 장비업체의 수익성과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금처럼 트래픽이 폭증하는 한 통신사가 아무리 설비투자를 늘려도 감당하기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트래픽을 유발하는 당사자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유무선 서비스에서 데이터를 많이 쓰는 소수 이용자에 대해 종량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콘텐츠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플랫폼 사업자가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트래픽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방법이다.

게다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장비 산업은 너무 취약해 관심을 끌 만한 성과도, 대표적인 기업도 없을 정도다. 휴대폰·TV 등 단말기 산업에 비해 네트워크 장비 산업의 경쟁력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1500억달러 규모의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의 점유율은 불과 3%에 그치고 있다. 휴대폰 시장 점유율 30%와 비교하면 그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국내 네트워크 장비 업체는 800여개에 달하지만 연간 매출 1000억원을 넘는 곳은 6개에 불과하다.
라우터(인터넷 접속장치) 같은 핵심장비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비교적 단순한 가입자망 장비 정도가 국산화된 형편이다. 그나마 핵심부품은 대부분 수입하다 보니 화웨이 같은 중국 업체가 저가 공세로 급속하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통신장비의 최고봉으로 통하던 전자식 전화교환기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급하면서도 통신장비 산업은 전화교환기에서 인터넷으로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졌다.

데이터 트래픽의 폭증은 네트워크 관련 산업에 위기와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통신장비 산업에서는 연구개발, 구매제도 개선 등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노력해서 투자수요 확대라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통신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제도 정비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트워크가 우리나라 IT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