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tro

 

(진작에 써 두었던 초고를 마무리하는 중에, 9월 11일 TechCrunch Disrupt라는 이벤트에서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인 Zuckerberg가 페이스북은 스마트폰을 제조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는 글을 접하였다. 이제 앞으로는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을 제조한다거나 스마트폰 업체를 인수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볼 일은 없을 듯하다. 올 초에 포스팅한 블로그 글에서 "나는 페이스북의 고위 관계자들이 RIM 인수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Zuckerberg가 “That’s always been the wrong strategy for us.”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비스 플랫폼과 제조업의 수직 결합은 여전히 중요한 경영전략 이슈이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최소화한 상태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글은 플랫폼 업체들의 제조업 진출 시도를 평가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글이다. 앞의 두 포스팅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PC 제조구글의 모토롤라 인수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이 글에서는 아마존의 다양한 모바일 기기 제조 시도 및 페이스북의 스마트폰 시장 진출 루머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한다.

아마존과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을 제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들이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은 인터넷 전문매체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아마존은 최근 새로운 킨들 파이어 공개 시점에 스마트폰도 공개할 것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페이스북이 스마트폰 제조에 관심이 있다는 보도 또한 2011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그리고 RIM(Research In Motion) 매각설이 나올 때면 언제나 페이스북이 잠재적인 인수자로 거론되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대만의 HTC와 함께 스마트폰을 준비 중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보도가 있었다.

앞에서 살펴 본 구글·MS과 아마존·페이스북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즉, 구글, MS는 SW 플랫폼(OS) 기업인데 반해, 아마존, 페이스북은 서비스 플랫폼 기업이다. (물론 구글도 검색이라는 서비스 플랫폼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생태계 관점에서 보면 안드로이드 OS 기업으로서의 지위가 더 중요하다.) OS는 스마트 디바이스 산업의 가치사슬 상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OS 기업은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가치사슬 상의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구글, MS의 제조업 진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OS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은 애플, 구글 등의 사업영역 확장으로부터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조업 진출을 고민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아마존은 이미 e-book reader(e-reader)인 킨들(Kindle)과 태블릿PC '킨들 파이어(Kindle Fire)'를 제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스북과는 다소 다르다. 그러나 서비스 플랫폼 기업이 제조업에 진출하는 이슈는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두 기업을 함께 다루도록 한다.

 

 

2. 왜 서비스 플랫폼 기업은 스마트 기기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가?

 

서비스 플랫폼은 실제로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을 묶어서 제공한다. 포털(야후·다음), 검색(구글·네이버), SNS (Social Network Service, 페이스북·트위터·싸이월드)가 대표적인 서비스 플랫폼이다. 아마존은 미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며, 전자책(e-book), 음악, 동영상, 게임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장터를 가지고 있다. 한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앱스토어)가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1) 서비스 플랫폼 사업 보호

이들 서비스 플랫폼 기업이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OS 기업의 적극적인 사업영역 확장으로부터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가치사슬에서 OS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다른 기업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먼저 애플을 보자. 처음에 애플이 아이튠스나 앱스토어를 출범했을 때는 이를 기기를 팔기위한 수단 정도로 보았지만, 이젠 누가 봐도 애플은 강력한 서비스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다. 애플의 서비스 플랫폼이 힘을 갖게 된 것은 OS와의 밀접한 결합이 기여한 바 크다. 또한 강력한 OS와 서비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서 PC에서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애플과 아마존은 모든 디지털 콘텐츠(도서, 음악, 영상, 게임)와 앱스토어에서 사업영역이 완전히 겹친다. 특히 애플은 아이패드 출시를 계기로 아마존이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e-book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2011년 미국 e-book 시장은 판매량 1.75억권, 매출액 14억 달러 수준이며, 아마존의 시장점유율은 70%대로 추산된다.) 한편 애플이 SNS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페이스북과도 애플리케이션 및 디지털 콘텐츠 에서 경쟁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구글도 마찬가지이다. 구글은 서비스 플랫폼(검색) 기업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SW 플랫폼(안드로이드)을 인수하더니 이를 사업영역 확장에 잘 활용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폰에 구글 검색 바(bar)가 기본으로 노출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또한 구글이 구글 플러스라는 자사 SNS를 키우기 위해서 안드로이드 폰에서 페이스북 등 다른 SNS를 차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마존도 구글 eEooks의 존재가 무척 신경 쓰일 것이다.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은 궁극적으로 Commerce, Communication, Contents, 심지어는 검색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후보들이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애플은 서비스 플랫폼-OS-단말기기 사업을 완전히 통합하였고, 구글도 OS-서비스 플랫폼에 단말기기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아마존, 페이스북도 OS와 단말기기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2) 서비스와 단말기기의 일대일 결합

아마존의 e-reader 킨들이나 태블릿PC 킨들 파이어는, 특정 서비스와 단말기기가 일대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서비스 플랫폼 기업이 단말기기 제조에 관여하게 된, 특수한 경우이다. 온라인 서적 판매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아마존은 전자책의 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했고 그 시장에서 초기부터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피처폰의 최강자 노키아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했고 그 시장에서 초기부터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이 시장은 아주 초기 시장이었기 때문에 아직 가치사슬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 이런 경우에는 서비스와 하드웨어를 묶어서 제공하는 통합형 구조가 더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통합형 vs. 모듈형 구조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그 글을 참조할 것.) 그런데 전자책 시장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태블릿PC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e-reader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e-book과 e-reader를 주도하려던 아마존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e-reader가 완전히 태블릿에 먹히고, e-book에서도 주도권을 빼앗기는 상황을 우려해서 태블릿PC 쪽으로 진출을 시도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Move였다. 사실 아마 킨들 파이어를 구입하는 많은 소비자에게는 킨들 파이어는 다른 기능이 추가된 컬러 e-reader로 인식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전자책을 염두에 둔 많은 소비자들이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 대신에 킨들 파이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3) 신규 사업 진출

그것이 어떤 동기에서 시작되었건, 항상 성장을 고민해야 하는 기업에게는, 사업영역의 확장은 새로운 매출 및 수익원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1) 기존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조업 진출을 고민하였다 하더라도, (2) 또는 단말기기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아마존과 페이스북 같은 강력한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은 서비스 플랫폼과 시너지를 이루면 제조업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3. 아마존 e-reader, Kindle의 경우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e-book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선발자 입장에서 아마존이 e-reader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다.

다만 e-book이 활성화된 후에도 아마존이 e-reader를 계속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아마존의 e-book 플랫폼과 e-reader는 지금과 같은 폐쇄적, 專有的(proprietory)인 관계를 갖는 것이 좋은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일단 논의 전개의 단순함을 위해 태블릿PC는 출현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앞으로 전자책이 활성화되면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과 e-reader들이 다수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e-book 플랫폼과 e-reader간의 관계는 모듈형 구조로 바뀌게 된다. 즉 하나의 e-reader가 여러 개의 플랫폼을 지원하고, 마찬가지로 복수의 e-reader 제조업체와 제휴하는 e-book 플랫폼도 출현할 것이다. 이때, 아주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는 한, 아마존-킨들의 폐쇄적 통합형 구조를 계속해서 가지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크리스텐센의 통합형 vs. 모듈형 구조의 관계에 대한 이론에 근거한 것이며, 스마트폰에 적용한 이 블로그의 다른 글을 참고할 것.) 즉, 아마존의 킨들과 전자책 플랫폼 둘 다, 또는 적어도 하나가 아주 차별적인 경쟁력이 있다면 모를까, 킨들은 아마존 전자책만을, 아마존 전자책은 킨들만을 고집하면 둘의 시장점유율이 함께 하락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들에게 아주 차별적인 경쟁력, 즉 독점력이 있다면, 애초에 시장 자체가 모듈형으로 바뀌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다른 e-boor과 e-reader도 쓸 만한 데, 아마존만이 반드시 두 개를 묶어서 써야 한다는 제약을 가한다면 이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시장이 성숙함에 따라 다른 e-reader가 아마존 e-book을 탑재하겠다고 요청하면 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아이패드 등 다른 태블릿PC를 통해서 아마존의 -book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다.) 킨들 또한 단말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플랫폼을 탑재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킨들과 플랫폼의 전유적인 관계가 풀리면, 킨들은 더 이상 서비스 플랫폼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별도의 사업이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킨들 제조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다른 모든 사업에서와 똑같은 기준을 가지고 내리면 된다. 즉, 킨들이 일정한 시장점유율과 매출액, 그리고 이익을 내고 있다면 그 사업을 계속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4. 아마존 태블릿 PC, Kindle Fire의 경우

 

지나간 일에 대한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2007년에 전자책을 출판하기 시작했을 때 만약 이미 태블릿PC가 일반화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존은 인터넷이 막 퍼지기 시작한 1995년에 PC를 통한 온라인 서적 판매를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태블릿PC를 통한 전자책 판매를 시작하면서 킨들을 제조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순서가 반대가 되었다. 아마존은 킨들을 통한 전자책 서비스를 개시하였고, 아직 초기 시장인 상황에서 태블릿PC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태블릿PC가 e-reader를 대체, 잠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라인 서적 판매로 사업을 시작한 아마존에게는 전자 서적에서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이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 전자책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고 가치사슬의 구성요소 간 관계 또한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이 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e-book과 e-reader를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태블릿PC가 등장하여 e-reader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면, 앞으로 e-book 시장의 가치사슬 형성 등 주도권 경쟁에서 아마존의 역할이 현저하게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존은 e-reader의 연장선상에서 태블릿PC를 제조하였다. 그렇기에 이름도 킨들을 이어 킨들 파이어로 지었을 것이고...

 

e-reader와 태블릿간의 관계도 통합형과 모듈형의 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 초기에 성능이 부족할 때에는 특정 성능을 잘 발휘하기 위한 통합형 구조가 더 유리하다. 그러나 산업이 성장하여 모듈형 구조가 더 일반화되면서 이들의 성능이 오히려 통합형 기업의 성능을 추월하는 일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RIM이다. RIM은 하드웨어-UI(QWERTY 자판)-OS-이메일 서비스 시스템을 통합하여 좋은 성능의 업무용 스마트폰 블랙베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일반 스마트폰의 성능 향상이 빠르게 이루어져, 다른 수많은 기능과 함께, 블랙베리에 버금가는 수준의 업무용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서 블랙베리의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e-book 시장에서도 처음에는 통합형 기업이 전자책에 특화된 단말기기를 만들어 성능을 최적화하였다. 그러나 태블릿PC는 좀 더 모듈화, 표준화된 구조를 가지면서, e-reader의 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모바일PC로 자리 잡았다. 물론 e-reader로서의 기능만으로 국한한다면, 가독성, 무게 등에서 아직 태블릿PC보다는 특화된 e-reader가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건 RIM이 아직도 업무용 기능을 수행하는데 보안성 등이 더 뛰어난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태블릿PC가 훨씬 더 많이 보급되더라도 e-reader 시장은 독서를 많이 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틈새시장으로 남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시장은 태블릿과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은 이 틈새시장 규모에 대해서 컨센서스가 없는 듯하다.)

 

이처럼 앞으로 e-book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접근 통로가 되는 태블릿PC에 대한 아마존의 향후 전략은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마존은 지난 9월 6일 킨들 파이어의 후속작인 Kindle Fire HD 시리즈를 출시함으로써 작년의 킨들 파이어가 일회성 시도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새로운 모델은 킨들 파이어보다 성능을 크게 업그레이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99달러라는 가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작년의 킨들 파이어 때와는 달리, WiFi 뿐만 아니라 4G 이동통신을 지원하는 모델(Kindle Fire HD 4G)도 출시함으로써 태블릿PC 시장에 보다 더 깊숙이 발을 들여 놓았다. 이런 움직임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존은 태블릿을 확장된 e-reader로 보고 있으며, e-reader 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보뿐 아니라 태블릿 시장에서도 일정한 입지를 확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전자책 시장이 아직 초기 상태여서 인지도를 높이고 사용자 경험을 많이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마존 태블릿은 전체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 및 아마존의 전자책 경쟁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1) 아마존 태블릿 자체가 경쟁력을 갖고 돈을 버는 단계에 이르게 될지, (2) 아마존 태블릿이 전자책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 있다.

작년 4분기에 출시된 킨들 파이어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올해에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2분기에는 125만대의 킨들 파이어를 판매하여 시장점유율 5%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아직 진입 초기의 성과로 보고, 앞으로 점유율이 더욱 상승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소비자들은 경쟁력 있는 스마트폰 및 PC 제조업체들의 태블릿을 마다하고 왜 킨들 파이어를 샀을까? 아마존 전자책의 충성 고객들도 일부 있겠지만, 좋은 사양의 제품을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제품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데도 불구하고 5%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앞으로 시장점유율이 아주 높게 오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볼 때 아마존이 태블릿PC 자체에서 이익을 내는 정도까지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물론 태블릿PC와 전자책 서비스가 일정 수준 결합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태블릿PC와 전자책 서비스의 이윤의 합이 극대화되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가 있다. 즉, 태블릿PC는 적자라 하더라도 그 덕분에 전자책 서비스가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있다면 태블릿PC 제조는 정당화되는 것이다. 예컨대 태블릿PC의 시장점유율이 30~40% 정도라면 분명히 아마존의 전자책 서비스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구글 안드로이드가 모바일 구글 검색 점유율 향상에 기여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러나 5~1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미 상당한 주도권을 갖고 있는 전자책 서비스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경우건, 적자를 보아가면서 태블릿PC를 제조하느니, 차라리 이 돈을 다른 태블릿 제조업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쓰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다른 태블릿 제조업체가 아마존 e-book 앱을 기본으로 설치해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자사 태블릿에서 아마존 서비스에 대한 favor를 제공하는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e-book 서비스 시장점유율을 올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태블릿PC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된 후, 지금처럼 큰 적자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이 낮은 상태로 지속된다면,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임.) e-book 서비스를 위해서 태블릿PC를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 이상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아마존의 고민은 다른 곳에도 있다. 즉, 태블릿PC를 주도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안드로이드)이 모두 전자책 서비스를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태블릿PC-OS-콘텐츠 장터를 장악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이 그 장터에서 e-book, 음악, 동영상, 게임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아마존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차별을 가할 가능성에 대해서 아마존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태블릿PC에 대한 옵션을 확보해 놓고 싶을 수 있다. 앞의 2에서 서비스 플랫폼 기업이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는데, 이 경우에는 처음에는 e-book과 e-reader의 일대일 결합 필요성 때문에 시작한 제조업이, 첫 번째 이유인 서비스 플랫폼 보호로 목적이 옮겨 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아마존의 고민은 아마존이나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에 대해서 갖고 있는 고민과 동일한 것이다. 이제 마지막 이슈로 넘어가 보자.

 

 

5. 아마존과 페이스북의 스마트폰 제조

 

서비스 플랫폼 업체들이 자신의 플랫폼을 보호하기 위해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 논리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서비스 플랫폼에서 누가 승리할 것이냐를 가지고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애플과 구글이 서비스 플랫폼-OS-단말기기 사업을 완전히 통합하였기 때문에, 오로지 서비스 플랫폼만을 가지고 있는 아마존, 페이스북이 OS와 단말기기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론은 분명하다. 즉, 서비스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모든 기기에서 이용되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 자사의 플랫폼을 우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내 놓는 것이 답은 아니다.

현재 아마존과 페이스북의 서비스 플랫폼은 모든 스마트 폰과 OS를 통해서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들이 서비스 플랫폼간 차별을 하지도 않고 있다. (물론 아직 초기 시장인 e-reader는 아마존의 킨들, Barnes & Noble의 Nook의 경우에서 보듯이 폐쇄적인 수직결합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 제조업체간의 치열한 경쟁, 웹의 진화 등을 고려할 때 서비스 플랫폼 업체에게는 개방적인 환경이 보장될 것이다. 만약 심각한 차별을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는 반독점법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에 애플이나 구글도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설사 자신만의 스마트폰을 제조하더라도 아마존과 페이스북의 서비스는 여전히 다른 기기에서도 제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자체 스마트폰의 전략적인 가치는 사실상 없다. 물론 아마존이 시장점유율 50% 이상의 스마트폰을 만들어서 거기에 자신만의 서비스를 탑재한다면, 그 기기가 갖는 전략적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렇게 높은 시장점유율을 달성할 가능성도 없거니와, 설사 달성하더라도 아마존 서비스만을 탑재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경쟁정책 당국이 방관할리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라도 서비스 플랫폼과 OS가 밀접하게 결합한 형태로 “진화”한다면, 예컨대 페이스북이 구글 플러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OS”의 시장점유율이 안드로이드를 넘어서야 하는데, 이쯤 되면 “페이스북 OS”를 채택할 메이저 스마트폰 제조업체를 인수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끝으로, 아마존이 영상, 음악, 게임 콘텐츠 유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글에서 논의한 e-book과 스마트폰은 연관성이 매우 작다는 것을 언급해야겠다. 굳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은, 아마존의 의사결정이 path dependency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2007년에 킨들을 제조하기 시작했고, 이를 고리로 2011년에 태블릿PC 시장에 진입했다. 여기까지는 e-book이 연결 고리였지만, 스마트폰과 e-book은 연결고리가 없다. 그 대신, 이제는 킨들-킨들 파이어-‘킨들 폰’이라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마존이 스마트 TV에 관심을 보인다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외부 호사가들의 추측이 이 정도까지 나간 것은, 아마존의 path dependent decision에 무리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존이 정말 ‘킨들 폰’을 만들어? 설마? 그렇다면 ‘킨들 TV'도 만들겠네? Why not?" 이런 대화들이 실리콘 밸리의 바에서 오고 가는 듯하다. 물론 나는 ‘킨들 TV'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 보다는 ’아마존 제국‘의 멸망을 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쪽에 조그마한 금액을 걸 용의가 있지만...

 

 

6. Summing Up

 

서비스 플랫폼만을 가진 기업 입장에서는 서비스 플랫폼과 제조업을 수직 통합한 기업의 행동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노골적인 차별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눈에 띄지 않는 차별을 하거나, 또는 차별이 없이도 그들의 수직적 통합이 더 유리한 결과를 나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가치 사슬 또는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는 차원에서, 그리고 게임 룰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보다 더 중요하게는 소비자에게 사업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서비스와 기기의 수직적 통합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물론 시장이 성숙한 다음에도 통합형 기업이 여전히 어느 정도 시장을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비스와 기기의 통합형 구조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를 위해서 기기 제조를 한다고 나섰다가는 도리어 기기 제조가 질곡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현재의 스마트 기기 경쟁구도나 웹 등 서비스 플랫폼 생태계를 종합해 본다면 서비스 플랫폼이 기기 제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별적인 지위에 놓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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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to the Series] - 애플 콤플렉스와 시너지에 대한 환상, 플랫폼 업체들의 공통적인 증상

 

이제  세 번에 걸친 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다.

 

Own Competitiveness First, Synergy Next

플랫폼의 종류를 막론하고 플랫폼 업체들이 제조업에 진출하였을 때 세운 당초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제조업에 진출한다고 해서 자신의 플랫폼이 더 튼튼해지지도 않고, 또 제조업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제조업과 플랫폼을 겸영하는 기업이 ‘못 살게’ 굴기 때문에 내 플랫폼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내 플랫폼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비하면 그야 말로 ‘새발의 피’다.

또한 제조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려면 그 자체의 성공 가능성을 먼저 심각하게 고민해야지, 제조업이 플랫폼에 도움을 줄 것이냐, 또는 플랫폼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것이냐 하는 것은 부차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많은 이들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한 환상 또는 남이 가진 시너지에 대한 지나친 공포를 가진 듯하다. 시너지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체 사업의 경쟁력 확보가 먼저이고 시너지에 대한 고려는 한참 뒤의 고려 사항이다.

 

Apple Complex: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애플 따라 하기’

시너지에 대한 고려는 늘상 있어 왔지만, 이처럼 시너지에 대한 지나친 환상과 공포가 플랫폼 업체들을 지배하는 직접적인 원인에는 애플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1월 아이폰 출시를 발표하면서, 한 때 애플에서 일했던 컴퓨터 공학자인 Alan Kay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형 구조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였다. "People who are really serious about software should make their own hardware.“

이러한 시각이 완벽하게 맞고, 또한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당위론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업과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다른 블로그 글에서 밝혔듯이 애플은 예외적으로 통합형 구조를 잘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많이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모듈형 구조의 장점이 더 커지면서 애플의 시장점유율과 이익률은 떨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플이 저렇게 통합형 구조를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도 똑 같은 방식으로 방어해야 하겠다.” 또는 “애플이 저렇게 통합형 구조로 재미를 보고 있으니 우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성장과 이윤을 추구해 보자.”라고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이름하여 ‘애플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에게 해롭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