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지난 9월 12일 애플의 아이폰5가 출시되자 언론과 인터넷 공간이 이에 대한 평가로 한바탕 시끄럽다. 아이폰5가 아이폰의 종전 판매기록을 갈아 치울 것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만, 아이폰5 제품의 ‘새로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듯하다.

2007년 아이폰 최초 출시 이후 4년 여간, 애플의 제품 출시와 실적 발표는 항상 산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에게 ‘놀라움’ ‘당혹스러움’ 또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사망, 올 상반기 다소 실망스러운 실적, 그리고 이번 아이폰5 출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결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변화가 느껴진다. 즉, 그전까지의 반응이 “애플은 어떻게 이렇게 잘 나가지?”였다면, 이제는 “과연 언제까지 애플이 잘 나갈까?”로 조금씩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애플의 향후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애플이 1980년대 PC를 제조할 때부터 고수하고 있는 “통합형” 구조가 애플의 발목을 잡아 앞으로 애플의 시장점유율과 이익률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이미 작년 말에 포스팅한 블로그 글, “애플의 욱일승천 시기는 이제 끝났다 - 두 번째 이야기에서 이와 유사한 결론을 내린 바 있지만, 이 글에서는 “통합형” 구조와 “모듈형” 구조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 등을 포함하였다.

 

 

2. 통합형 vs. 모듈형 구조 - 정의와 이슈

 

스마트 디바이스의 경쟁구도가 하드웨어 완제품간의 경쟁에서 하드웨어·OS·콘텐츠를 아우르는 전체 가치사슬 연합군간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기업들은 이들을 내부에서 수직적으로 결합하여 제공하는가 하면, 다른 기업들은 가치사슬 상의 기업들끼리 제휴를 통해서 해결한다. 예컨대 애플, 심비안 시절의 노키아, RIM(Research In Motion)은 자신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OS)에 직접 조달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탑재해 왔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제조업체들은 OS나 콘텐츠를 다른 기업과 제휴하여 조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시장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어느 산업이건 대개의 기업들은 수직결합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예외적’인 전략을 취한 애플이 크게 성공하고 있다. 그에 비해 노키아나 RIM은 같은 전략을 채택했는데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다. 이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당연히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애플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 수직결합 덕분인가? 만약 그렇다면 노키아와 RIM은 왜 실적이 좋지 않은가?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왜 그런 전략을 채택하지 않는 걸까? 애플의 예외적인 전략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논의를 더 진행하기 전에 먼저 용어에 대한 정의와 통일이 필요하다. 가치사슬 내의 여러 요소들을 한 기업이 묶어서 제공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수직결합(vertical integration)이라고 한다. 수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동종 기업 간 인수·합병을 의미하는 수평결합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수직결합의 반대어는 수직분화(vertical disintegration)이다. 그런데 경영학에서는 대개 크리스텐센의 이론을 따라 ‘통합화(integration)’와 ’모듈화(modularization)‘로 구분한다. 즉, 수직결합에 해당하는 것이 통합화이고, 그 반대 개념을 모듈화로 본 것이다. 모듈화란 가치사슬의 각 구성요소들이 마치 ’레고 블록‘과 같은 모듈로 존재하여, 이를 조립하면 완성품이 나올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통합화와 모듈화가 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이 표현을 쓰도록 하되, 경제학적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는 수직결합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3. 통합형 구조의 대명사, 애플 - 그들의 고집스런 원칙

 

통합형 구조는 애플이 1984년 매킨토시를 출시할 때부터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원칙이다. 자신의 OS를 모든 제조업체에게 라이선싱해 준 마이크로소프트나, ‘IBM 클론’이라는 형태로 호환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도록 허용한 IBM의 전략과는 달리, 자신의 OS를 다른 제조업체에게 제공하지 않았고, 하드웨어의 모든 부분을 애플의 완전한 통제 하에 두었다. 그 결과 당연히 매킨토시에 탑재될 애플리케이션 SW들도 애플이 직접 조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매킨토시가 어느 정도 인기를 끌던 시기를 제외하곤, 애플 PC의 시장점유율은 2-3%에 불과했다. 아이맥이 성공하고 아이팟, 아이폰과 시너지를 거두는 상황에서도 PC 시장에서 2011년 판매대수 기준 시장점유율은 5.0%에 불과했다. 물론 애플은 하이엔드 시장에 주력하여 강력한 충성고객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고, 그 결과 2011년 매출액 기준 시장점유율은 판매대수 기준 시장점유율의 거의 두 배인 9.4%에 달한다. 하지만 성장성과 수익성이라는 기업경영 관점에서 볼 때 아이팟 이전의 애플이 성공적인 기업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통합화 전략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통합화 전략은 애플 내·외부에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Wozniak)은 개방적인 구조로 가야 한다고 잡스를 설득하다가 실패했고, 경쟁자인 빌 게이츠도 끊임없이 애플의 전략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또 뒤에서 보듯이 경제·경영학 이론도 애플의 전략에 부정적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애플이 이 전략을 계속 유지한 것은 통합형 구조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강한 신념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재무적 성과를 위해 통합형 구조를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이작슨은 잡스 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잡스는 안드로이드가 시장점유율을 늘려 가는데도 통제된 폐쇄적 환경에 대한 그의 믿음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구글은 우리가 그들보다 더 많은 통제력을 행사한다고, 우리는 폐쇄적이고 그들은 개방적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 결과를 봐요. 안드로이드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을 정도예요. 스크린 크기와 버전이 가지각색이라 100가지가 넘는 조합이 나오잖아요. 나는 사용자 경험 전체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요. 우린 돈을 벌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안드로이드 같은 쓰레기가 아닌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요.” (W. Isaacson, 스티브 잡스, pp. 806-807)

 

 

4. 통합화 vs. 모듈화 - 경제·경영 이론은 어떤 답을 주는가?

 

(1) 경제학적 관점 - 스티글러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스티글러는 수직결합이 왜 일어나는지를 산업발전 주기와 연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산업의 초기 단계에는 모든 부품, 원료 등이 시장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조달하거나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제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할 채널 또한 없는 상태여서 판매도 직접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한 기업이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활동을 수직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산업의 규모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부품, 원료, 제조장비 등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기업들이 등장하여 자연스럽게 수직분화(vertical disintegration)가 일어난다. 이 같은 수직분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전문성을 가진 upstream(부품, 원료) 기업이 수직결합 된 기업에 비해 기술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 실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downstream(최종 제품) 기업이 계속 독점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면 수직분화가 일어날 여지가 없을지 모른다. 독점 기업이 수직결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기업에게 부품이나 원료를 공급하겠다는 기업이 시장에 출현할 가능성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허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최종 제품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경쟁자의 진입이 이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upstream에서도 전문기업 간의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전 가치사슬이 경쟁적인 시장구조를 가지게 될 때, 특정 기업만이 폐쇄적인 수직 결합 구조를 고집한다면 기술적·경제적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산업의 초기 단계에는 통합형 구조가, 그 이후 단계에는 모듈형 구조가 일반적인 기업형태가 될 것이다.

 

(2) 경영학적 관점 - 크리스텐센

저명한 경영학자인 크리스텐센도 특정 산업이 언제 통합형 또는 모듈형 구조를 갖게 되는지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C. Christensen & M. Raynor, 성장과 혁신, 제5-6장)

크리스텐센에 따르면 통합형과 모듈형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를 결정짓는 것은 가치사슬 각 단계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페이스의 특성이다. 만약 한 부문의 설계와 생산방식이 다른 부문의 설계 및 생산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면 두 부문 간의 인터페이스는 상호의존적이다. 이는 아직 두 부문 간의 관계에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전에 모든 것을 표준화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이런 경우에 각 기업은 두 부문을 통합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최적의 성능을 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인터페이스는 ‘독점적’ 또는 ‘전유적(專有的, proprietary)'인 구조이다.

그에 비해 모듈형 인터페이스는 각 부문 사이에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없다. 따라서 각 부문의 기능과 부문 간의 결합방식에 대한 세부사항이 모두 표준화되어 있다. 이 경우엔 각 부문을 ‘레고 블록’처럼 모듈화하여 이를 조립하면 완성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가치사슬의 각 부문이 독립적으로 개발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사양이 자세히 정의되다 보면, 각 부문을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자율성이 별로 없다. 따라서 모듈형 구조는 제품 성능을 극대화하는 관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통합형 구조는 아직 제품 성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성능을 향상시키는데 유리하다. 각 기업은 여러 부문을 자신이 직접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각 부문의 성능을 동시에 신속하게 끌어올리고, 이들 간의 관계를 최적화함으로써 최고의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 그에 비해 모듈형 구조는 이미 제품 성능이 충분한 상태에서, 표준화된 부품을 여러 업체로부터 경쟁적으로 구매함으로써 가격을 낮추는데 유리하다.

 

산업의 발전단계 관점에서 보면, 한 산업이 생성하여 발전함에 따라 통합형에서 모듈형 구조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리스텐센의 설명을 빌어 이 같은 변화 과정을 살펴보자.

1) 새로운 산업의 초창기 제품은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부문 간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다. 예컨대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초창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 때 컴퓨터 설계, 운영체제, CPU, 그리고 컴퓨터 제조 등 여러 부문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이런 경우에 가치사슬의 한 부문을 외부에 맡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초창기 제품의 성능이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란 어렵다. 역시 덩치만 크고 연산 능력이 신통치 않았던 초기의 컴퓨터를 생각해 보라. 이처럼 가치사슬 내의 상호의존성과 성능 부족은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특성의 동전의 양면이다. 이 두 이슈를 해결하는데 적절한 구조가 통합형이다.

2) 초기에 통함형 구조를 가지고 성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은 아마도 독과점적 지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기업은 높은 이윤을 향유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능 개선을 이룰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 시점에 충분치 않던 제품의 기능이 고객의 기대수준을 넘어서는 ‘성능과잉’ 상태에 접어든다.

3) 그러나 향상된 성능에 대해 높은 가격을 부담하려는 고객은 점차 줄어든다. 왜냐하면 성능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시점에 원하는 제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기업들만이 이윤을 올릴 수 있다.

4) 경쟁 압박으로 인해 가능한 빨리, 낮은 가격으로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은 전유적·상호의존적 방식에서 모듈방식으로 제품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모듈화가 되면 제품 구성요소 모든 것을 재설계하는 대신에 각각의 구성요소들을 업그레이드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신제품을 빨리 출시할 수 있다. 또한 모듈방식으로 바뀌면 각각의 구성요소를 생산하는 전문기업들끼리 경쟁하는 시장구조를 갖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듈형 구조는 표준화된 구조를 강요하기 때문에 성능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고객들이 이미 원하는 수준의 성능을 도달했기 때문에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5) 모듈형 방식 덕분에 산업의 분화(disintegration)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비통합형 기업들이 통합형 기업들을 경쟁에서 밀어내게 된다. 어떤 시점에서는 통합이 경쟁의 강점이 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경쟁의 약점이 된다.

 

한편 크리스텐센에 따르면, 모듈화는 곧 범용화(commoditization)를 의미한다. 고객이 원하는 수준보다 ‘성능과잉’ 상태가 되면, 경쟁 모드가 성능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으로 바뀌게 된다. 가격경쟁에 접어들면 모든 부품을 자신이 직접 만들기보다는 모듈화 하여 외부에 맡기는 것이 유리하다. 동일한 부품을 동일한 기준에 따라 조립하는 제조업체는 제품 성능이나 비용의 차별화가 매우 힘들어진다. 이처럼 비슷한 제품을 비슷한 가격에 판매하는 제조업체가 높은 이윤을 누릴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상황이 곧 범용화이다. 따라서 성능과잉=모듈화=범용화를 뜻한다.

 

 

5. 통합형에서 모듈형으로의 이행 과정: 스마트폰 사례

 

(1) 노키아·RIM·애플의 ‘초기 스마트폰 삼국지’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보듯이 통합화와 모듈화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의 발전 과정과 상황에 따라서 통합화가 유리할 수도, 모듈화가 유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스마트폰 초기 시대에 노키아와 RIM이 하드웨어-OS-콘텐츠·서비스에 걸친 통합적 구조를 가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노키아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를 자기만의 OS를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오히려, 노키아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본격 상용화했기 때문에 자체 OS를 스스로 개발해서 사용하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한편 애플도 노키아, RIM보다 상당히 늦게 스마트폰을 개발하였지만, 그 전의 스마트폰과는 다른 새로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초기 기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애플이 통합형 구조를 고수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업발전 단계 관점에서도 통합형 구조를 갖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그렇다면 초기에 똑같이 통합형 구조로 출발한 노키아, RIM 그리고 애플의 운명이 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노키아와 RIM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크게 보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모두, 또는 둘 중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노키아와 RIM이 통합형 구조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합형 구조는 빠른 시일 내에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노키아가 1990년대 후반부터 스마트폰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이 출시된 2007년까지 성능 향상을 충분히 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통합형 구조를 갖춘 애플에게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아이폰 등장 이후에도 노키아는 심비안의 성능 향상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키아는 통합형 구조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측면이 크다.

노키아와 RIM이 어려움을 겪는 두 번째 이유는, 스마트폰 시장이 이미 통합형의 장점이 사라지고 모듈형 구조가 더 유리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모듈형 안드로이드 OS의 성능이 충분히 좋아져서 소비자들이 통합형 OS를 선호할 이유가 없어졌고, 게다가 무료로 제공되는 안드로이드 OS를 다수의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좋은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RIM이 겪는 어려움은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RIM은 하드웨어-UI(QWERTY 자판)-OS-이메일 서비스 시스템을 통합하여 좋은 성능의 업무용 스마트폰 블랙베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성능 향상이 빠르게 이루어짐에 따라, 일반 스마트폰이 블랙베리의 성능을 추월해 버린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RIM이 그 전에 택한 전략이 다 옳았다 하더라도 스마트폰의 성장 단계에 따라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애플의 성공 스토리는 무엇인가? 애플은 오랜 동안의 통합형 경험과 거기에 맞는 조직문화, 그리고 CEO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통합형 구조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우선, 애플은 누구보다도 OS를 잘 만들 역량이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PC를 만들어 왔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서 설립하였고 나중에 애플에 합병된 넥스트(NeXT)도 OS를 주로 개발한 회사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OS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앱스토어이다. 설사 좋은 하드웨어와 OS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즐길만한 콘텐츠와 서비스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플은 매킨토시의 실패를 통해 통합형 구조를 유지하려면 좋은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출시 때마다 외부 개발자들을 자신의 콘텐츠 장터에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애플의 이 같은 경험과 개발자와의 오랜 협력관계는 다른 기업들이 쉽사리 획득할 수 없는 자산이다.

물론 이밖에도 애플 특유의 디자인, 터치스크린 등 획기적이고 직관적인 UI, 그리고 아이맥·아이팟과의 매끄러운 연동 등 자신만의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애플은 극단적인 통합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자기만의 OS와 앱스토어, 특유의 디자인과 UI, 자사 제품 간의 연동 등, 하드웨어 부품을 제외하고는 가치사슬의 모든 것이 내부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부품 및 조립업체 몫을 제외하고는 가치사슬 내에서 창출된 수익 거의 모두를 애플이 가져가게 된다. 이것이 애플이 누리고 있는 엄청나게 높은 수익률을 설명하는 요인이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노키아·RIM·애플의 ‘초기 스마트폰 삼국지’의 스토리 라인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노키아와 RIM은 통합형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그들이 아직 충분히 성능 향상을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통합형 기업인 애플이 진입하였다. 애플은 통합형 구조에 대한 경험이 많고 경쟁력이 뛰어나서 노키아와 RIM이 애플과 경쟁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 한 모듈형 기업들의 등장이다. 애플의 등장 이후 스마트폰이 급격하게 성능향상을 이루어 모듈형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추어진 것이다. 노키아와 RIM은 애플과 새로운 모듈형 기업들의 협공에 더욱 형편이 나빠졌다. 견디다 못한 노키아는 모듈형 구조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통합형 대표 주자인 애플이 모듈형 기업들과 벌이는 결전이다. 이 싸움에서도 애플은 승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 여기에서는 모바일 기기 시장에 모듈형 구조가 등장하여 세력을 확보해가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안드로이드 OS와 모듈형 구조의 등장

스마트폰 시대에서 이미 후발 주자가 되어버린 기존의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선발 기업들이 한참 앞서서 성능향상을 이룩했는데 뒤늦게 뛰어들어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자체 OS를 개발하고 앱스토어까지 갖추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선발 기업들을 따라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그들은 모듈화된 구조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장에 좋은 OS가 없었다면 모듈형 기업들의 진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모듈형 OS의 상징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윈도우 모바일이 있었지만, 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진작부터 꾸준히 준비해 온 안드로이드 OS가 있었다.

그렇지만 통합형 구조에서 모듈형 구조로 갑자기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통합형 구조가 우세한 상황에서 윈도우 모바일이 어려움을 겪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아직은 하드웨어와 OS가 상호의존적인 구조를 갖기 때문에 제조업체와 OS 업체 간에 밀접한 협력이 필요한 데, PC라는 모듈형 구조에 익숙한 MS가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OS를 출시해 본 적이 없던 구글은 처음부터 제조업체들과 밀접하게 공동 작업을 했다. 특히 최초의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폰과 아이폰 ‘대항마’인 갤럭시 S1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각각 HTC, 삼성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모듈형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통합형에서처럼 성능 향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구글은 철저한 모듈형 지향 기업이다. 잘 알다시피 구글은 OS에서 수입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기기에서 구글 검색이 이루어지면 이를 통해 광고수입을 늘리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안드로이드 OS를 많이 보급시키기 위해 개방형 OS를 지향하였다. 모든 것이 오픈되었다는 것은 모듈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무료 OS라는 점 또한 비용절감에 민감한 후발 주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조이다.

 

이런 여러 여건들이 어우러져 모듈형 구조를 갖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등장하였다.

모듈형 기업 중에서는 삼성이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삼성의 고급형 제품은 애플의 아이폰과 함께 가장 하이엔드 제품군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 삼성의 경쟁우위 요인은 무엇인가? 통합형 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는 요인에서 삼성이 애플을 대적할 수는 없다. 즉, 대부분의 소비자에게 안드로이드 OS와 앱스토어가 ‘쓸 만한’ 수준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통합형 OS의 선두주자인 애플을 이길 수 없다. 그밖에 디자인이나 UI도 애플보다 뒤진다. 내부에 탑재되는 부품의 성능도 비슷하다. 이처럼 다른 모든 요소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하이엔드 제품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뛰어난 제조능력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스마트폰에서는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면서 제조기술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마트화에 따라 기기가 고도화되면서 제조기술의 중요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제조역량이 중요한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블로그 글을 참조할 것)

 

(3) 현재까지의 모듈화 진전 정도

스마트폰에서 모듈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 알기 위해서 가치사슬의 개별 구성요소들을 들여다보자.

물론 모듈화의 핵심은 OS이다. 안드로이드는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성능 면에서 통합형의 선두 주자인 애플에 비해 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안드로이드 OS와 부품을 조립하여 초저가의 스마트폰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 OS가 충분히 모듈 방식으로 제공 가능함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한편 콘텐츠 장터는 원래부터 그렇게 상호의존성이 강한 부분이 아니다. 콘텐츠 소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애플이 아이튠스 스토어를 개설한 이래, OS와 콘테츠 장터를 함께 묶어서 제공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을 뿐이지, 둘이 묶여 있는 것이 기술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또한 OS와 연계되지 않은 독립계 앱스토어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웹 플랫폼의 등장도 가시화 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콘텐츠 장터의 모듈화가 OS 보다 더 많이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드웨어 부품 중에서 모듈화의 관점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아이템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이다. AP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 CPU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이다. PC시대에는 이 CPU를 인텔이 거의 독점적으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역시 독점적으로 OS를 공급하는 MS와 함께 '상호 의존적'으로 PC 표준을 이끌어 왔다. 그에 비해 나머지 부품과 제조 분야는 철저하게 모듈화 되었다. 즉, PC 산업 전체는 모듈형 구조였지만, OS와 CPU는 두 회사가 ‘통합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독점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AP는 이미 모듈화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AP의 중앙처리기능(코어)은 대부분 영국 ARM이라는 회사가 제공하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 ARM은 코어에 대한 설계 및 라이선스(IP, Intellectual Property)만을 제공하고, AP 제조업체들은 이 코어를 기반으로 그래픽, 동영상 등 자사의 특징을 반영한 제품을 만든다. 현재 삼성전자, 퀄컴, 엔비디아(Nvidia),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 등 여러 업체가 이 같은 방식으로 AP를 만들고 있다. 이처럼 AP의 핵심부분 설계는 이미 모듈화 되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PC의 CPU와는 달리 특정 업체가 독점하거나 차별화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처럼 가치사슬의 두 핵심요소인 OS와 AP가 모듈 방식의 경쟁구도가 갖추어졌다는 점이 PC와 스마트폰의 차이점이다.

스마트폰 산업에서 모듈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저가형 스마트폰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모듈화의 중요한 증거이다. 즉, 수요 측면에서 성능보다는 가격에 민감한 계층들이 스마트 디바이스를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저가형 디바이스 등장의 한 요인이라면, 공급 측면에서는 ‘쓸 만한’ 성능의 저가형 디바이스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된 것이 모듈화 덕분이다.

 

그러나 아직은 통합화의 장점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모듈화가 진행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애플이 아직도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스마트폰 산업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통합형과 모듈형이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단계이다.

 

 

6. 모듈화의 진전 전망과 애플의 미래

 

그렇지만, 앞으로도 모듈화는 더욱 진전되고, 통합형 기업의 강점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1) 먼저 OS는 이미 지적하였듯이 모듈형과 통합형의 격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따라 붙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폰8을 계기로 시장점유율을 늘려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타이젠 같은 신규 OS까지 등장하면 모듈형 OS는 보다 경쟁적인 시장구조를 갖게 된다. 이는 당연히 모듈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된다.

 

(2) 콘텐츠 장터 측면에서는 앱스토어간의 경쟁력 격차도 별로 크지 않다. 콘텐츠 모듈화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HTML5 기반의 웹 플랫폼이다. 머지않아 차세대 웹 표준인 HTML5 기반의 웹 플랫폼이 일반화될 것이다. HTML5 기반의 웹 플랫폼을 사용하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OS에 구애받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이 그만큼 용이해진다. 이용자들도 지금까지는 앱스토어를 거쳐야만 이용할 수 있었던 콘텐츠와 서비스를, 어떤 OS를 사용하건 웹을 통해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한 것은, 웹 기술이 발전하고 모바일 네트워크가 광대역화 됨에 따라 개별 OS(Native OS)를 기반으로 한 ‘설치형 앱(Native Application)'의 기술적인 우위가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즉각적이고 양방향성을 많이 요구하는 게임 같은 애플리케이션은 여전히 웹 기반의 앱이 아닌 ‘설치형 앱’의 성능이 좋기 때문에 OS별로 앱스토어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 플랫폼 경쟁 및 진화 관점에서 볼 때, 통합형 OS와 앱스토어에 대한 의존성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설치형 앱은 스마트 디바이스에 설치하여 사용하며 OS의 미들웨어에 있는 소스코드를 사용한다. 그래서 OS에 종속적이다. MS 오피스 등과 같이 디바이스에 설치되는 프로그램이 좋은 예이다. 그에 비해 웹 기반의 앱은 OS 미들웨어의 소스코드를 사용하지 않고 웹에 접속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앱스토어를 통해 거래할 필요가 없다. 브라우저가 지원하기만 하면 웹 기반의 앱은 사용할 수 있다. 구글의 문서편집 SW인 구글 닥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3) 애플이 고수하는 소수 기종 전략도 통합형 구조의 특징이다. 통합형 구조는 각 구성요소들이 상호의존적으로 결합하여 최적화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좋은 성능을 내는 소수의 기종을 잘 만드는데 적합하다. 그에 비해 OS, 앱, 부품 등이 모듈화·표준화된 구조를 가지면, 다양한 종류의 기기를 지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하이엔드 시장을 타겟으로 소수 기종만을 내 놓는 애플의 전략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자 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심지어 비교적 모듈화된 LTE 기능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도, 애플은 모든 주파수 대역을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모듈형 기업들은 구조적으로 하이엔드부터 로우엔드의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데 유리하고, 확대되는 수요에 따라 새롭게 스마트폰을 장만하는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모듈형 기업들이 다양한 제품을 갖는 것은 곧 모듈화를 진전시키는 동인이 된다.

만약에 애플이 여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하이엔드 제품 시장의 상대적 크기가 줄어듦에 따라 애플의 시장점유율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모듈화의 진전으로 하이엔드와 로우엔드의 품질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익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이에 대응하여 로우엔드 제품을 출시하면 그것은 곧 모듈화로 접어드는 길이다. 즉 이제는 모듈화된 시장에서의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싸움에서 통합형 기업이 모듈형 기업들을 이길 수는 없다.

 

(4) 마지막으로, 다자인 및 UI(User Interface)는 애플이 강점을 가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분야이다. 잡스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의 표면적 모습이 아니라, 제품의 본질이다. 이처럼 애플의 철학이 디자인 및 제품 설계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표준화, 모듈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영역이다. 그러나 이 영역에서의 차별성이 범용화의 거센 파도에서 어느 정도 애플을 보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애플로부터의 학습효과 덕에, 이제는 다른 기업들도 디자인에 대해서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 심지어는 ‘짝퉁’이라는 이미지를 감수하면서도 스마트폰의 디자인이 비슷해지고 있다.

애플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을 가진 고객에게는 디자인이 여전히 구매를 계속하게 하는 요인이 되겠지만, 대다수 소비자들의 구매행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7. Epilogue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 애플의 통합형 기업 구조가 스마트폰 초기 시장을 선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산업이 성숙함에 따라 모듈형 기업에 비해 경쟁력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보였다. 머지않아 애플은 시장점유율과 이익률 둘 다, 아니면 적어도 하나는 상당한 수준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하다.

물론 애플은 여전히 브랜드 파워와 혁신 역량을 바탕으로 좋은 기업으로 남을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금만큼의 시장점유율과 예외적인 재무실적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하이엔드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 TV, 스마트 홈 등 새로운 분야에서 혁신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플의 통합형 구조는 더 이상 ‘매직’이 아니다. 시장 환경이 바뀌면 한 기업을 일으킨 원동력이 도리어 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애플의 내부 사정을 심도 있게 분석한 라신스키의 “Inside Apple"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애플은 더 이상 ‘비상식적일 정도로 훌륭한’ 회사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은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매우 천천히 일어날 것이다. ...... ‘비상식적일 정도로 훌륭하다’기 보다 그저 ‘훌륭할 뿐’인 애플은 실망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애플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기대해 온 추종자들에게만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애플에 대한 기대도 항상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훌륭할 뿐인 제품을 계속 구입할 것이다. ...” (애덤 라신스키, “Inside Apple", pp. 296-297)

 

■ 이 글의 축약본은 2012년 9월 21일 조선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