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요즘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TV 등 스마트 기기들이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기들은 포털·검색·SNS와 앱스토어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고 또 콘텐츠를 감상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완결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IT산업은 네 가지 가치사슬 구성 요소인 콘텐츠(C), 플랫폼(P), 네트워크(N), 그리고 기기(T) 기업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만들어가는 생태계이다. 그런데 최근에 생태계를 구성 기업들끼리 갈등이 유난히 많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생태계에 큰 변화가 있었고, 기업들은 여기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갈등은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 분야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단말기기 분야라고 해서 갈등 요인이 없을 리 없겠지만, 단말기기 업체들은 ‘글로벌’ 관점에서 정의된 생태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갈등이 해결될 여지가 적고, 따라서 시장에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C-P-N 기업들은 주로 ‘로컬’ 생태계에서 협력과 경쟁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영역은 전통적으로 산업정책보다는 규제정책의 영향이 더 큰 영역이다. 즉,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가 규범 제정 및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나서기 때문에, 시장에서 갈등이 해소되는 경우에 비해서는 그 갈등이 좀 더 명시적으로 드러나 보이게 된다. (IT산업 생태계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 “IT산업 생태계란 무엇인가? - 그 의미와 시사점”을 참고할 것)

지금까지 정부는 적극적인 규제정책을 통해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예가 CDMA 세계 최초 상용화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다. 또 이를 기반으로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되었고 또한 콘텐츠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최근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는 규제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필료로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들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이슈를 검토해 본다.

 

 

2.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망 중립성에 관해서는 이미 블로그의 다른 글들에서 깊이 다룬 바 있다.

KT가 친구를 사귀는 특이한 방법 또는 聲東擊西 - 규제게임의 틀에서 본 KT의 스마트TV 접속 차단

경제학자들의 ISP 일병 구하기 - 양면시장 이론, 망 중립성 그리고 통신망 이용 대가에 관한 이야기

mVoIP과 LGU+의 선택을 보는 새로운 시각 - 표면적으론 파괴적 혁신이지만 본질은 규제 게임)

 

첫 번째 이슈는 네트워크 투자비용 부담을 둘러싼 네트워크-플랫폼-이용자 간의 갈등이다. 이 이슈가 현재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는 사안이다. 스마트 기기 등장 이후 유무선 네트워크 모두 데이터 트래픽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라 네트워크 투자수요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유선인터넷은 완전 무제한 정액요금제이고, 무선인터넷 또한 무제한 또는 사실상의 무제한 정액 요금제 가입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트래픽이 늘더라도 매출액이 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트래픽과 매출액의 탈동조화(decoupling)이다. 통신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가입자 증가를 통한 매출 증대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투자비 분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데이터 트래픽을 일으키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서 실제로 돈을 벌었으니 그에 상응한 투자비 분담을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이 이미 통신요금을 냈는데 무슨 소리냐며 반발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보이스톡을 계기로 벌어진 무선인터넷 전화 허용 논란, KT의 삼성전자 스마트TV 차단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이용자 간의 잠재적인 갈등 이슈를 보면, 극소수의 다량 이용자가 대부분의 트래픽을 집중적으로 일으키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요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소량 이용자가 다량 이용자를 보조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무선에서는 약 5%의 고객이 데이터 트래픽의 60% 이상, 유선에서는 10%의 고객이 약 90%를 유발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인터넷 종량요금제 시행이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을 통한 모든 트래픽은 내용, 유형, 분량 등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취급함을 뜻한다. 즉, 무선 인터넷 전화나 스마트 TV 등 모든 서비스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사실, 자신의 데이터 요금제가 허용하는 데이터 용량 범위 내에서 그걸로 SNS를 하건, 영화를 보건, mVoIP를 하건 어차피 0 아니면 1이라는 디지털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니 막으면 안되는 게 맞다. 통신서비스산업의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정부나 특정 집단이 막아 낸 경우는 없다. 다만 허용 시기와 방법, 조건 등에 관한 힘겨루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망 중립성은 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생태계 친화적인 규제정책이다.

하지만 망 중립성을 도입한 결과 트래픽이 폭증하면 아무리 설비투자를 많이 해도 감당하기 힘들다. 플랫폼 사업자가 투자비를 분담하는 것은 망 중립성의 취지에 맞지도 않지만, 설사 그들이 비용을 분담한다 해도 그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트래픽을 유발하는 당사자가 그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여 과다한 트래픽 발생을 막는 것만이 정답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의 다량 이용자에 대해 종량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물론 이 때문에 국민의 요금부담이 증가한다면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극소수 다량 이용자의 요금부담을 늘리는 대신, 대다수 이용자는 현재 수준 요금을 유지하고, 매출 증가분만큼 소량 이용자의 요금은 인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요금 조정을 매출 중립적(revenue neutral)인 요금구조 변경(re-balancing)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망 중립성과 종량요금제가 시행되면 과다한 트래픽을 줄여줌으로써 효율성이 증대된다. 네트워크 사업자도 불필요한 투자수요가 완화됨으로써 국민 부담 증가 없이 수익성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 또한 투자비 분담 없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산업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소량 이용자가 다량 이용자를 보조함으로써 발생했던 이용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해결된다.

 

 

3. 플랫폼 중립성(Platform Neutrality)

 

스마트폰 등장 이후 네트워크 사업자 대신에 SW플랫폼 사업자들이 IT산업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SW플랫폼과 수직적으로 결합된 앱스토어 또한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사면 애플 앱스토어가 거의 유일한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구입 창구이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애플보다는 덜 폐쇄적이긴 하지만 역시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서비스 플랫폼 중에서 구글, 페이스북 역시 해당 분야에서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네트워크와 달리 플랫폼과 콘텐츠는 ‘글로벌’ 기업과 ‘로컬’ 기업이 혼재되어 경쟁하는 양상이어서 상황이 더 복잡하다. 즉, T-store, 네이버, 다음과 같은 ‘로컬’ 기업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애플 앱스토어, 구글 검색, 야후 포털 등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애플과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글로벌 생태계 관점에서 의사 결정하고, 로컬 시장의 특성과 상관없이 동일한 운영 원칙을 관철시키고 있다. 포털, 검색, SNS,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도 로컬 시장의 규범을 일정 정도 준수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운영을 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 코리아에 대한 규제권한을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글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플랫폼 사업자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이들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 남용이나 경쟁사업자 배제와 같은 불공정 행위를 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심지어는 ‘글로벌 생태계’와 ‘로컬 생태계’가 중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무엇이 공정한 것이고 무엇이 반경쟁적인 행위인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예컨대 애플이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 대해서 자사의 결제 수단만을 쓰도록 하고 있는데,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각국의 규제당국은 여기에 대해서 뾰족한 규정이나 갈등 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서는 갈등 조정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다.) 한편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하면서 자신의 검색 위젯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이에 대해 NHN과 다음은 구글이 경쟁사들의 검색 프로그램을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플랫폼 중립성(Platform Neutrality)은 망 중립성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용어이다. 네트워크가 모든 데이터 트래픽을 중립적으로 처리하듯이, 플랫폼 또한 콘텐츠/다른 플랫폼에 대해서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고 이들의 플랫폼 접근(access)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플랫폼 중립성에서 다루게 될 내용 중 상당 부분은 기존의 공정거래법 틀 내에서도 처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IT산업 특유의 이슈들도 있고, 공정거래법에서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생태계의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가이드라인을 빨리 확립함으로써, 구성원의 갈등을 조기에 조정하고 최소화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므로 규제 당국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지켜야 할 중립성(Platform Neutrality) 기준을 가능한 한 조기에 제시하고 시행에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우리나라 규제 당국의 권한이 미치지 않을 이슈들도 많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주요국의 규제 당국들과 함께 ‘플랫폼 중립성’ 이슈를 공론화하는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이미 확보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규제 공백을 이용하여 더욱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고, 로컬 플랫폼 및 콘텐츠의 경쟁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4. 기술 중립성(Technology Neutrality)

 

마지막으로, 네트워크·플랫폼에 사용하는 기술 표준과 관련된 정부 규제 이슈가 있다. 이 이슈는 과거부터 계속 논의되던 사항이긴 하지만, 최근의 상황 변화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과거에 정부는 특정 표준을 국가의 단일 표준으로 선택하여 집중 육성함으로써, 관련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을 펴왔다. 예컨대 CDMA를 디지털 이동통신망 표준으로 선택함으로써 네트워크 및 휴대폰 산업이 크게 성공하였다. 그에 비해 지상파 DMB 방송이나 와이브로를 국내 표준으로 선택하여 육성하려고 했던 정책에 대해서는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에 KT가 와이브로 용도로 할당받은 주파수 대역을 TD-LTE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적이 있다. 이 주파수 대역은 기존에 와이브로 용도로 쓰던 것인데, 올 3월에 주파수 이용대가를 내고 재배정 받았다. 재배정 받은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나서 이 주파수 대역을 TD-LTE로 용도 변경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은 KT가 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가 불거져 나온 것은, KT가 과거의 표준 설정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와이브로는 어떤 점에서 CDMA와 다른가? CDMA 상용화를 추진하던 시점에는 우리나라 휴대폰 제조업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서비스 시장이 이들 제조업체들을 일으킬 정도의 전속 시장(captive market) 규모는 되었다. 그리고 표준 관점에서 보면, 설사 CDMA가 전 세계 시장의 20% 정도 밖에 안 되더라도, 우리 제조업체가 그 중에서 반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10%는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10%를 확보한다면 그건 엄청난 것이다.

와이브로를 표준으로 지정하여 집중 육성하려고 할 때 와이브로가 주류(mainstream)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대체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CDMA 경우에서처럼, 얼마 안 되는 시장이라도 우리가 표준을 주도해서 우리가 다 차지하면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와이브로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우선 국내 서비스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와이브로라는 새로운 서비스 등장이 장비 및 기기 수요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조업체도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이제 국내의 전속 시장(captive market)에 연연할 단계를 넘어섰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휴대폰 판매 대수에서 국내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되지 않는다.) 역시 표준 관점에서 보면, 와이브로를 선택할 때쯤엔 이미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전체의 20%를 상회할 정도였다. 예컨대 와이브로가 전세계 시장의 20%까지 올라간다 하더라도 그 시장의 반은 10%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어차피 주류(mainstream)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가 표준을 주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가 특정 표준을 밀면 다른 나라 기업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기업들이 다 함께 뛰어들 정도로 큰 판에서는 우리 기업이 주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현상을 ‘표준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와이브로가 이런 상황에 딱 맞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제 LTE에 이르면서 우리 기업들이 완전히 주도할 수 있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메이저 플레이어로 성장하였다.

이제 우리는 메이저 시장에서 메이저 플레이어로 활동해야 한다. 비주류 표준을 따로 고집하여 거기에서 시장을 독식하려고 들면 과거에 일본의 통신제조업체들이 겪었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된다.

 

IT산업처럼 기술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하는 것도, 불확실성이 제거될 때까지 정책 결정을 미루는 것도 위험하다. 특히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추종자(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이기 때문에 기술과 관련된 결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추종자였을 때는 선진국이 한 대로 따라가면 되었기 때문에 정부 주도로 기술방식에 대한 컨센서스를 도출하는 것이 용이했다. 그리고 국내 시장을 전속 시장으로 활용해야 했기 때문에 정부 주도로 한 방향으로 힘을 모드는 것이 필요했다. 또한 후진국은 선택과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관점에서도 타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맨 앞에서 함께 암중모색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랬을 때 정부가 주도하는 기술선택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물론 선택과 집중은 여전히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유효하나, 국가 경제나 우리 기업들의 규모를 감안할 때 기업들이 어느 정도는 다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감안할 때 기술 중립적(Technology Neutrality)인 방식으로 표준을 설정하고 주파수를 배정할 필요가 있다. 즉, 기술 및 서비스 표준은 민간 주도로 복수를 선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기술개발 차원에서 특정 기술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특정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및 장비 육성을 위한 정책 드라이브는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주파수 경매제를 통해 할당된 주파수는 자신이 원하는 기술을 선택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원래 주파수 경매는 주파수를 사 가는 사람이 그것을 활용할 방법과 가치를 제일 잘 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주파수 경매의 도입은 곧 규제 관련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학 이론에 바탕을 둔 결정이다. 과거의 사업신청서 심사 방식에서는 그들의 기술방식, 영업방식까지를 꼼꼼히 따졌지만, 이제 주파수 경매 방식으로 전환한 마당에 정부가 어떤 기술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한다면 그것이 곧 규제비용이다.

 

 

5. Epilogue

 

공교롭게도 이번에 검토한 세 가지 이슈의 해결 방안은 모두 ‘중립성’ 확보로 모여진다. 즉, IT산업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방향은 생태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생태계가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이때의 규제정책은 시장 원리에 맞게, 그렇지만 시장에서의 반경쟁적인 행위로 시장 원리가 훼손되는 일이 없게 하면서, 정부 개입의 정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생태계는 자생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한편 규제정책과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에는 산업정책과 규제정책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추진되었다. 이러한 정책이 우리나라 IT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도 규제정책이 산업육성 측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과거처럼 산업정책적인 목표를 추구하는데 규제정책적 수단을 강하게 활용하는 것은 생태계 친화적이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IT산업 규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경쟁도입이나 공정경쟁 여건 확립을 일관성 있게 해 왔고, 특히 IT산업의 육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런데 한 번 성공한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개인이나 조직이나 매우 어렵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산다. 생태계에서 배우는 ‘적자생존’의 원리이다.

 

■ 이 글의 축약본은 2012년 10월 26일 조선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