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2022년 1월 14일

 

기업이 자사 제품을 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행태를 가리키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란 말은 1990년대부터 널리 쓰였다. 별 근거도 없이, 또는 일부 효능이나 원료를 과장하여 ‘클린 에너지’, ‘그린 IT’, ‘100퍼센트 천연’ 등의 표현을 제품에 붙이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그린워싱도 소비자를 현혹시킨다는 점에서 물론 문제가 있었지만, 요새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ESG 워싱의 문제점에 비하면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단기적 대응, 과장된 홍보가 넘치는 ‘ESG 경진대회’

 

ESG가 큰 트렌드로 자리를 잡으면서 투자자들은 ESG 성과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또한 지구온난화, 플라스틱 오염 같은 환경문제와 산업안전, 인권문제, 다양성·포용성 등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가 높아지고 관련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기업들도 ESG 문제를 더 이상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ESG 경영을 기치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초조함만 앞서지,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비전과 전략이 부족하고 실행 계획도 부실한 형편이다.

이 와중에 다른 기업들의 넷제로 달성 계획 같은 발표라도 접하면 더욱 조바심이 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우리도 ESG 경영에 이렇게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더욱 잘할 것이다.’라는 식의 단기적 대응이나 과장된 홍보로 맞서기 십상이다.

흔히 이사회에 ESG 위원회를 만들고 기존의 ‘사회적 책임 경영(CSR)’ 추진 조직을 ESG 경영실로 개편하는 등 손쉬운 행동이 먼저 이루어진다. 그리고 언론에는 기업들의 홍보가 넘친다. 그 중에는 ESG 경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거나, 심지어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안 하기로 했다는 등 하찮은 홍보성 기사들도 보인다. 물론 잘하는 기업들이 없는 건 아니나, 대부분 기업들은 아직 이처럼 본원적인 경영활동 따로, ESG 활동 따로 식으로 ‘무늬만 ESG 경영’을 하고 있다.

 

앞으로 ESG 경영에 대한 투자자, 이해관계자, 정부의 압박이 점점 거세질 텐데, ESG 성과가 나쁜 기업일수록 ESG 워싱에 대한 유혹 또한 커질 것이다. 그런데 과거 그린워싱이 기업의 평판에 손상을 입히는 정도였다면, ESG 워싱의 부작용은 이보다 훨씬 크다.

내부 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들은 ESG 워싱을 행한 기업이 ESG 경영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그 기업을 지지하고 더 나아가 제품 구매와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 정보로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에 손해를 입힌 기업은 평판에 손상을 입는 정도가 아니라, 주가 폭락이나 소송 등으로 말미암은 경제적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경제 전체적으로도 ESG는 그저 '말의 성찬일 뿐'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킴으로써 ESG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금융상품까지 스며든 ESG 워싱

 

ESG 투자가 늘면서 금융상품에서도 ESG 워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ESG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산운용사들은 기존 펀드에 ESG 요소를 얇게 덧칠해서 ESG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은행이나 기업들도 녹색채권, 사회적 채권 등으로 불리는 ESG 채권을 활발하게 발행하고 있다. 어떤 금융상품을 ESG 상품이라고 부를 것인지 명확한 정의나 지침이 없다보니 이처럼 ESG가 새로운 마케팅 용어로 활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금융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ESG 펀드들을 보면, 펀드에 포함된 종목들이 기존 펀드와 별로 다르지 않다. 예컨대, 우리나라 ESG ETF 상품들 중, ESG 평가 상위 종목만으로 구성한 일부 ETF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SG 펀드들은 코덱스200 펀드와 상관관계가 무려 0.96으로 나타났다. 이는 두 펀드의 구성 종목과 편입 비중이 매우 유사하여, ESG 펀드 투자가 코덱스200 펀드에 투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ESG 펀드들의 ESG 등급도 일반 펀드와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 ESG 상위 등급 기업만으로 구성한 일부 ESG ETF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SG 펀드들은 일반 펀드와 비교하여 ESG 등급이 유의미하게 높지 않았다. 펀드 가입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ESG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고 뿌듯하게 생각하면서 ESG 펀드를 선택했는데, 괜한 헛수고를 한 셈이다. 투자자들이 이런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ESG 투자를 외면할 것은 당연하다.

 

 

본원적 기업 활동-ESG의 결합, 투명한 정보 공유가 ESG 워싱을 막는 길

 

ESG 워싱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각각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기업들은 ESG가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탄소감축 압력은 앞으로 수십 년 간 계속될 것이며,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ESG 이슈에 잘 대응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하면 높은 ESG 등급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비용 지출은 커지는 데 비해 수익성 제고는 어려워지고 정작 중요한 ESG 이슈에 집중할 수 없다. 무엇보다, ESG 경영은 사회적 가치와 이윤을 동시에 창출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ESG 등급은 그 과정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ESG 경영 활동은 기업의 미션·비전, 전략 및 비즈니스 활동과 통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홍보성 활동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material)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ESG가 본원적인 비즈니스 활동과 통합되기 위해서는, ESG 활동이 전사 및 모든 조직의 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에 반영되어야 한다. KPI 설정은 평가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보상 체계에 반영되어야만 ESG 전략이 실행력을 갖추게 된다.

 

ESG 워싱이 발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과 외부인 간의 정보 비대칭성이다. 기업의 ESG 경영 성과를 외부인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기업이 거짓 정보를 외부에 알릴 여지가 없어진다. 따라서 재무 성과와 마찬가지로 ESG 성과를 공개하는 표준을 정하고, 일정 기준을 갖춘 기업에게는 ESG 성과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하고, 또한 제3자 검증을 받게 한다면 ESG 워싱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ESG 금융상품에 대해서도 이 상품에 편입된 기업들이 얼마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면,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에 자금 유입이 촉진될 수 있다.

EU를 비롯한 주요국들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ESG 정보 공개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의 기준을 정하기 위한 EU 분류체계(Taxonomy)도 제정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ESG 정보 공개를 기업 자율에 맡겨놓고 있는 상황이라 ESG 워싱의 우려가 더 높다. ESG 정착을 위해서 우리 정부도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