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2022년 4월 15일

 

기업 입장에서 보면 ESG 중에서 사회 문제(‘S’)가 활동 범위나 목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를 측정하기 가장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사회 문제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에는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기업 이익에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실행을 하려고 보면 근로자 인권, 다양성이나 포용성과 같은 목표들은 개념화, 지표화하기가 너무 어렵다. 또한 어떤 과제들, 예컨대 경제적 불평등 완화는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벗어난다. 소득 분배는 먼저 시장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정부가 나서서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펴기 때문에 기업은 이 과정에 수동적인 참여자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때, 기업 활동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그리고 시장이 각각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리고 그 역할 간에는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며, 이들 경제 주체 간의 긴밀한 협력도 필수적이다.

 

기업이론에서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을 주주, 근로자, 납품기업,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계약의 집합체(nexus of contracts)’로 정의하고 있다. 이 계약에 따르면 생산활동에 참여한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사전에 약속한 금액(임금, 물품 대금 등)을 받고, 주주들은 매출액에서 이들에게 지불할 금액을 다 지불하고 남는 금액, 즉 잔여재산(residual)을 이윤으로 가져간다. 이처럼 주주는 회사 경영성과에 따라 자신의 몫이 크게 변화하기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을 모니터링할 인센티브가 있으며 경영자에 대한 임면권과 주요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그럼 기업에서 근로자나 납품기업의 몫은 어떻게 결정될까? 임금은 기본적으로 그 근로자가 다른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표면적으로는 기업이 임금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시장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납품기업의 몫도 근로자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원칙적으로 계약에 의해 사전에 정해진 가격을 받고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가격은 시장 가격에 준해서, 또는 경쟁 입찰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자의 몫이 시장에서 ‘자발적’ 계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서 그 결과가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선 모든 계약은 불완전하다. 특히 주주와 다른 참여자들 간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는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와 법률을 제정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에도 있는 소비자보호법, 근로기준법, 환경보호법, 파산법 등이다. 계약이 불완전하고 당사자 간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의 균형 잡기 정도로 정부 역할이 끝나는 건 물론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확보하지 못한 계층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정부는 조세 징수와 다양한 복지 제도를 통해서 불평등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기업도 시장논리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이해관계자들과 경영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에 좀 더 전향적일 필요가 있다. 먼저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인적자본을 회사에 장기적으로 투자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인적자본 가치는 회사 성과에 따라 변화한다. 또한 근로자들이 적극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하면 기업성과도 좋아진다. 이처럼 기업성과와 인적자본 가치가 연동되는 경우에는 근로자도 장기 투자자의 성격을 가지므로, 고정 금액이 아니라 기업성과에 연동하여 보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고정급여뿐 아니라 사전에 약속된 산정 방식에 따라 성과급을 받고, 또 임금 협상이라는 의사결정 과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기업성과를 직원들과 나누는 것이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성과급 산정방식을 협의에 의해서 투명하게 결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과거에는 성과급이 기업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라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직원들의 가치 증진이 기업가치 극대화와 합치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ESG 관점에서 볼 때 그만큼 진일보한 것이다.

한편 요즘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 양상을 보면 납품기업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탄소 전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개별 기업 간의 경쟁이 가치사슬 연합군, 즉 ‘생태계’ 간의 경쟁으로 점점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소재 등의 개발 및 생산을 통해 생태계에 기여한다. 이런 생태계에서 주도 기업과 참여 기업들 간의 관계는 일반적인 납품 관계와는 많이 다르다. 참여 기업들 입장에서는 주도 기업과 장기적 관계를 맺고 또 이 생태계에 특화된 상당한 투자를 한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의 성과와 참여 기업들의 성과는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이처럼 참여 기업들이 장기 투자를 하고 두 기업 간의 성과가 연동되어 있을 때는, 참여 기업들에게 고정 금액만을 지급해서는 그들의 진심어린 협조와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도 기업이 거둘 성과와 연동하여 성과 공유를 사전에 약속하고, 공유 방식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적 불평등은 다양성 및 포용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양성은 성별,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등과 같은 개인적 특성의 차이를 의미하며, 포용성은 다름을 감싸주거나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다양성은 포용성과 한 세트다. 얼마나 다양한지보다는, 다르고 소수인데도 불구하고 차별하지 않고 어떻게 포용하는지가 더 강조된다는 점에서 방점은 포용성에 찍힌다.

그런데 다양성과 포용성은 공정성뿐 아니라 효율성 관점에서도 필요하다. 맥킨지가 조사한 결과는 다양성과 포용성이 기업성과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임원진에서 성별 다양성이 뛰어난 상위 25퍼센트 기업들은 하위 25퍼센트 기업에 비해서 수익성이 좋을 가능성이 25퍼센트 더 높았다. 그리고 인종 및 문화적 다양성이 좋은 상위 25퍼센트 기업들이 하위 25퍼센트 기업보다 수익성이 높을 가능성은 36퍼센트 더 높았다.

만약 법에서 하라고 하니 여성 이사를 선임한다거나,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려고 별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부담금으로 ‘때우겠다는’ 차원으로 다양성과 포용성에 접근한다면 ESG 활동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설사 평가 점수는 일시적으로 좋게 받았더라도 이는 기업 경쟁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 영역에서 기업의 ESG 활동을 평가하는 이유는 그 기업에 대한 소비자, 직원, 납품기업들의 만족도는 높은지, 사회 구성원 전체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지, 사회 문제에 관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는 없는지 보기 위한 것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규제 관점이 아닌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며, 시스템적으로 잘 조율된 행동을 했을 때만 그것이 좋은 기업 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