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2022년 1월 8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자본시장과 기업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다. 투자자는 재무 성과뿐 아니라 ESG 성과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하고, 기업도 이윤 극대화만이 아니라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맞장구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비슷한 움직임이 여럿 있었기에, ESG는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ESG도 한 때 유행처럼 지나가는 건 아닌지 등 의문이 이어진다. 자본시장 쪽에서 보면 사회책임 투자, 지속가능 투자, 임팩트 투자 등이 진작부터 있었다. 기업들도 사회공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면 이들과 ESG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은 점은 ESG가 투자자와 자본시장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ESG 문제 해결은 궁극적으로 기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ESG 경영’이 중요하다. 그러나 투자자가 기업의 ESG 문제 개선 활동을 장려하기 때문에 ESG 경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ESG는 투자자보다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론(CSR)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CSR 연구자들은 기업이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증 분석에 따르면, 몇몇 뛰어난 기업 사례를 제외하고는, CSR이 이윤 증가를 가져왔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기업들이야 사회적 압력 때문에 CSR 활동을 해왔지만, 주주들이 이윤 감소를 좋아할 리 없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주들이 안 좋아할 일을 경영자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건 뻔한 이치다. 그러니 법에 정한 최소한의 것만 하고, 나머지는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활동을 하는데 그친다. 즉 기업의 본원적 비즈니스 활동과는 연결되지 않고 보여주기식 활동을 주로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투자자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CSR의 한계다.

투자자들이 ESG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투자활동을 전환하게 된 중요한 계기는 두 가지다. 첫째, 국제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금융시장의 민낯이 드러나게 되면서 투자자들은 현재와 같은 모습의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둘째로, 지구온난화는 ESG 투자의 보다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연금·보험 등 장기투자자들은 수십 년 후에도 연금 및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투자수익률을 올릴 방법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기관투자자들은 기업들이 ESG 이슈 해결에 앞장서라고 독려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경영진과의 대화, 공개서한, 주총에서의 주주 제안, 이사진에 대한 신임 투표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도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성 등 사회 문제, 기업지배구조 문제 등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다음으로, ESG는 투자 수익률을 중시한다. 투자자가 수익률을 중시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겠으나, ESG는 이전의 사회책임 투자나 지속가능 투자와는 결이 다르다는 뜻이다. ESG라는 용어는 2004년 UN Global Compact가 출간한 리포트인 “Who Cares Wins”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이 제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기업들이 ESG 문제를 잘 해결하면 장기적 재무 성과가 좋아진다는 실증론적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맥락에서 ESG 투자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보다 높다는 걸 보여준 많은 실증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ESG 투자가 수익률을 소홀히 해서, 운용자산의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수탁자 의무를 위반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최근까지 이어졌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사회책임 투자는 도덕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 어긋나는 산업이나 제품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러니 사회책임 투자자들은 사회적 가치 달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 재무 성과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ESG는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ESG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당신들에게도 이익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센티브 합치성(incentive compatibility)을 추구한다.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장기적 수익성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도, 특히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자산이 ESG 활동을 잘 해내는 기업에 투자되기를 희망한다.

자산 운용자들 또한 ESG 개선과 높은 수익률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는 믿음 하에 그런 방향으로 투자하고 또 기업들의 ESG 경영을 유도한다.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도 이해관계자 요구에서 시작된 CSR에 비해 주주의 ESG 장려, 특히 단기 실적 압박 완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처럼 ESG 참여자들은 투자자, 자산 운용자, 기업 모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종종 ESG를 “착한 투자자와 선한 기업의 만남”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ESG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보다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 똑똑한 투자자와 기업의 만남”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점점 많은 투자자들이 ESG 경영을 열심히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아직 ESG 투자가 대세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자본시장은 ESG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이는 ESG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청신호로 보아도 좋다.

그러나 ESG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곳곳에 널려있다. 단기 실적주의가 여전히 지배적이거나, ESG 투자 수익률이 악화될 경우, 그리고 기업의 ESG 경영 및 혁신이 지지부진하다면, ESG의 인센티브 합치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결국 지속가능성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인센티브 합치성이나 지속가능성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건강한 생태계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신 교수는

 

기업과 정책, 학계를 모두 경험한 통섭적 학자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이후 기업 현장에 뛰어들어 SK커뮤니케이션즈와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매니징 디렉터,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수석으로도 일했다. ‘ESG 바로읽기’에서는 현재 경제·경영계와 자본시장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화두로 떠오른 ESG가 실제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고, 이에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 독자의 눈높이로 전달한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