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2022년 2월 18일

 

[RE100, EU 분류체계, 블루 수소: 이것은 알고 가자]

 

얼마 전 있었던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전문 용어가 다수 언급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RE100, 블루 수소, EU 분류체계(Taxonomy)가 그것인데, 간혹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단어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테고,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토론회에서 이들이 언급된 것이 기후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되었지만, 제한된 시간으로 애초에 심도 있는 토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개념들은 중요하지만 어렵고 또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RE100과 넷제로의 차이점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로, 소비 전력 100%를 풍력, 수력, 태양광, 지열, 바이오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주요 에너지 소비 기업들의 자발적 이니셔티브이다. 올 2월 기준 351개 기업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 기업이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4개 기업이 가입하였다.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 0)는 RE100과 얼핏 비슷한 개념 같지만 많이 다르다. 우선 RE100은 전력 분야에서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활동이지만, 넷제로는 모든 분야에서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에서 전력 분야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2019년 기준으로 35.4%에 불과하고, 제조업, 수송, 건물, 농축산업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다른 에너지원 사용, 공정 및 원료 전환, 대체육 개발 등 다양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RE100은 기업 단위의 자발적 활동인데 비해 넷제로는 국가, 더 나아가 글로벌 목표다. 물론 넷제로 목표가 탄소배출권 할당 등을 통해 기업에게도 주어지는 셈이지만 이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강제로 할당된 것이다.

 

 

RE100과 넷제로 개념 비교 / 자료정리=조신 교수, 디자인=송민수 소셜에디터
                               
 

한편 우리나라 기업들이 RE100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은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용 탓도 크다. 유럽과 미주에서 풍력, 태양광 발전의 발전 비용은 석탄보다 저렴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생산비용은 MWh당 태양광 106달러, 육상풍력 105달러로, 각각의 세계 평균 50달러, 44달러에 비해 두 배가 넘고, 석탄 발전 62달러와 비교해도 크게 높다.

그러다 보니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7.1%에 불과한데, 이는 독일(44.5%), 영국(43.7%), 프랑스(24.3%), 미국(19.8%)뿐 아니라, 일본(20.2%), 중국(28.9%)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발전량도 적고 가격도 높은 이중고에 시달리니 RE100이 쉽게 이루어질리 없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예컨대 애플은 2016년에 RE100에 가입했고 이를 징검다리 삼아 넷제로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재작년에 애플은 2030년까지 자사와 전세계 공급망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애플 자체는 직접 생산 활동을 수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미 넷제로를 달성하였다. 따라서 이 발표는 모든 애플 기기가 생산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영(0)으로 줄일 것임을 의미한다.

이미 TSMC와 폭스콘 등 175개 납품 업체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런 방침은 애플에 많은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적용될 원칙이고 이는 애플 이외에 다른 기업으로 확대될 전망이어서, 우리나라의 전기·전자, 소재·화학 기업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넷제로 목표 달성에 동참해야 할 형편이다.

 

 

EU 분류체계와 블루 수소, 그리고 원전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들, 즉 기업, 금융(투자자),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하고, 또 각 분야별로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 분야에서 감축 활동을 전개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어떤 활동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는지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 경영, 투자 활동 및 정부 지원 정책이 이 기준에 맞춰 조율된다면 그만큼 넷제로 달성이 용이해질 수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EU 분류체계로서, 어떤 활동이 녹색 활동, 즉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활동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EU는 긴 논의 과정을 거쳐서 2022년 2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녹색기술’ 리스트를 제시했다. 한편 우리나라도 작년 말에 녹색활동 리스트를 포함한 K-분류체계를 확정 발표하였다.

 

녹색기술에 관한 쟁점은 어떤 에너지원을 포함시킬 것이냐에 집중되어 있었다. 먼저 천연가스(LNG)는 EU와 우리나라 모두 녹색기술로 인정하였다. 천연가스는 1kwh당 549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석탄(992g)보다는 적지만 원전(10g)이나 태양광(54g)보다는 훨씬 많기 때문에 녹색기술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다리’ 역할로서 천연가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원자력은 우리나라에서 제외된데 비해 EU는 이를 녹색기술로 인정하였다. 신규 원전은 2045년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고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사실 이 단서는 당연한 내용이기 때문에 장애 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배제하기로 한 것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감안할 때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정책을 실천하는데 이념적 도그마는 걸림돌이다. 탈원전 정책의 비용과 편익을 냉정하게, 과학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수소에 관해서는 생산 과정의 효율성과 활용성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긴 하지만 논쟁거리는 없다. 수소를 태워서 에너지를 생산하면 온실가스가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소는 녹색 에너지다. 그러나 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는지에 따라 그린, 그레이, 블루 수소로 나누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수소는 탄소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린 수소라고 부른다. 그에 비해 천연가스를 사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면 그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며 이를 그레이 수소라고 한다.

그레이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를 포집하여 활용·저장(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하는 과정을 거치면 블루 수소라고 부르고, 이는 녹색 에너지로 분류된다. 그런데 CCUS 기술은 블루 수소 생산 이외에도 탄소 감축을 위해 필요한 범용 기술로서 정부와 기업이 기술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넷제로를 향한 과정은 이처럼 여러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활동과 복잡한 과제들이 얽혀있다. 따라서 단편적이거나 이념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면서 현명하게 이 과제를 풀어 나가는지 여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Posted by 조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