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축약본은 오늘(2012. 3. 23) 조선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글의 말미에 조선일보 컬럼을 링크하였습니다.
1. 지난 2월 27일 바르셀로나. 전세계 이동통신사업자들의 모임인 MWC(Mobile World Congress)에 페이스북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브렛 테일러가 초대받아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모바일 웹 플랫폼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발표하였다. 모든 서비스가 웹에서 이루어지는 PC와는 달리, 스마트폰에서는 주로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는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애플, 구글을 통하지 않고 웹에서 모든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동통신사업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를 발표함으로써 이들에게 함께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이다. 과연 모바일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 모바일 생태계는 5개 layer의 다양한 기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1) 우선 스마트 폰 및 태블릿 PC를 만드는 제조업체들이 있다. (2) 스마트폰을 만들면 거기에 SW 플랫폼, 즉 OS와 다양한 미들웨어가 탑재된다. 현재로는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 iOS, MS 윈도우폰 등이 대표적이다. (3) OS에는 서비스 플랫폼이 올라간다. 포털·검색·SNS가 대표적인 서비스 플랫폼인데, 모바일에서는 앱스토어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4) 또한 게임, 음악, LBS(Location Based Service), 커머스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콘텐츠, 서비스를 만들어 서비스 플랫폼에 올리는 개발자(CP)들이 있다. (5) 마지막으로 모바일 기기를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통신사업자가 있다.
이러한 가치 사슬 상에서 몇몇 기업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애플·RIM은 제조업체에서 시작하여 OS와 앱스토어를 묶어 폐쇄적인 수직결합구조를 만들었다. 삼성전자도 바다라는 OS와 앱스토어를 출범시켰으나, 아직은 시장점유율 2% 대의 미미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한편 구글은 검색 플랫폼에서 시작하여 OS(안드로이드)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끝으로 한국의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자신의 앱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3. 스마트 기기 시대가 되면서 OS와 이에 탑재된 앱스토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체들은 애플에게 이미 거의 20% 가까운 시장을 빼앗겼다. 안드로이드도 점유율이 50%를 훨씬 상회하자 제조업체들을 좌지우지하면서 사실상 하청업체화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이동통신사업자들도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는 위피(WIPI)와 같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가지고, 거기에서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콘텐츠 장터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앱스토어에게 거의 모든 것을 빼앗겨 모바일 상거래나 광고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의 기회를 잃었다.
SNS·포털 등 다른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다른 서비스 플랫폼과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 판매, 상거래 등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정면으로 충돌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활용하여 자신의 플랫폼 확장을 꾀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폰에 구글 검색 바(bar)가 기본으로 노출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구글이 구글 플러스라는 자사 SNS를 키우기 위해서 안드로이드 폰에서 페이스북을 차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4. 이처럼 OS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다른 세력들이 연합하여 OS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전세계 주요 이동통신사업자들은 WAC(Wholesale Application Community) 이라는 공동 앱스토어를 만들어 OS와 관계없이 모든 스마트폰에 올릴 계획이다.
제조업체들도 특정 OS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윈도우폰 등 여러 OS와 제휴를 강화하는 multi-OS 전략을 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인텔과 함께 웹 기반 OS인 타이젠을 개발 중이다.
페이스북이 MWC에서 발표한 전략도 궤를 같이한다. 우선 국제 표준화 기구 및 다른 기업들과 힘을 합쳐 HTML5 기반의 표준화된 웹 플랫폼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주요 이동통신사업자와 협력하여 웹 플랫폼에서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 결제 시스템은 Operator Billing, 즉 우리나라의 폰빌 결제에 해당한다. 결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앱 개발자들에게 이제는 애플·구글에 가지 말고 웹에 애플리케이션을 올리면 수익을 올리게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또한 이동통신사업자들에게 결제금액의 일부를 제공함으로써 협력 모델을 제시하였다.
5. 그럼 모바일 생태계는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장기적으로 HTML5 기반의 웹 플랫폼이 일반화되면서 OS와 앱스토어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 이유를 보면, 우선 개발자 입장에서는 OS에 구애받지 않고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쉬워지기 때문에 웹을 선호할 것이다. 이용자들도 어떤 OS를 사용하건 원하는 서비스를 쉽게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웹 기술이 발전하고 모바일 네트워크가 광대역화 됨에 따라 OS를 기반으로 한 “Native Application"의 기술적인 우위도 축소되기 때문이다. 물론 즉각적이고 많은 양방향성을 요구하는 게임과 같은 애플리케이션들은 여전히 웹 기반이 아닌 Native 애플리케이션이 더 선호될 것이다. 따라서 Native와 웹 애플리케이션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OS의 영향력 약화는 제조업체에게 긍정적인 소식이다. 어떤 OS를 쓰느냐 보다 HW 자체의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서비스 플랫폼이 승자가 될 것이다. 서비스 플랫폼은 다른 사업자들과 제휴를 통해 가입자를 늘리고 있다. 또한 개발자들에게 인프라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서비스를 계속 추가하고 있다. 이렇듯 검색, 포털, SNS 등의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들은 출발점이 무엇이건, 강력한 서비스 조합을 통해 가입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개인화된 웹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누가 더 유리한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으나, 현재로서는 SNS가 강력한 가입자 기반과 충성도를 바탕으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느 경우건 글로벌 사업자가 국내 사업자들보다 유리한 상황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서비스 플랫폼이 지역성을 띄어야할 이유는 줄어드는데 비해 글로벌 사업자는 막대한 가입자 수를 바탕으로 네트워크 외부효과와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새로운 수익원은 서비스 플랫폼에 빼앗기고 기존 매출은 모바일 메신저, 무선 인터넷전화에 잠식당해 급격하게 수익성이 나빠질 전망이다.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서비스의 수익이 서비스 플랫폼에만 간다면 이동통신망은 그야말로 멍청한 통로(dumb pipe)가 될 수도 있다.
6. 서비스 플랫폼이 진화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서비스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도권을 쥔 것은 페이스북·트위터·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고, 국내 서비스 플랫폼과 이통사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산업의 진화라는 빛이 남긴 짙은 그림자이다.
■ 조선일보 컬럼 (2012. 3. 23)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22/2012032201811.html